다시 문인화文人畵로: 토평 이평규의 근작
장준구 |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토평土坪 이평규李坪珪는 오랜 기간 현장 사생을 토대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실경산수화가 그의 작업의 근간을 이루어왔음은 물론이다.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특정 장소에서의 시각적 경험과 감흥을 한국화韓國畵의 특징적 재료인 먹과 붓의 효과를 통해 그려낸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화에서 산수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가들에게 보편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오늘날의 실경산수화는 현장에서의 풍경의 관찰과 이를 토대로 사실적으로 구도를 잡은 뒤 불균일한 선으로 그려냄으로써 수묵화의 맛을 내고 여기에 담채를 가하여 화면을 완성한다. 이를 통해 입체적인 구도와 표현적인 세부가 절충된 실경산수화가 완성된다. 이는 전통성과 현대성이 접목된 20세기 후반 이래의 온건한 실경산수화의 일반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각 작가마다의 필치, 채색, 구도 등이 더해져 개별적인 실경산수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토평은 청년시절의 학습기를 제외하면 여타 산수화 작가들과는 두드러지게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현장에서의 사생을 토대로 하면서도 이를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기 보다는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도, 필법, 채색이 모두 그러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거기에서 느껴지는 정서를 화면에 담아내려는 토평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현대라는 시점에 맞추어 작품의 방향을 조율하려고 했던 그의 실험의 과정이기도 했다.
원근법이 무시된 변형적인 구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산과 숲, 짙은 검은색이 두드러지는 커다란 먹의 면, 실제와는 다른 독특한 색이 적용된 경물들. 그의 작품에 보이는 색다른 요소들이다. 이러한 토평의 이채로운 표현방식들은 바로 그가 한국화의 현대화, 산수화의 현대화를 모색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21세기의 시점에 한국화라고 해서 전통을 계승하는 데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지론의 반영이다. 붓과 먹을 이용한 산수화로서 전통적인 표현방식과 미감을 유지하면서도 여기에 현대적인 조형성을 덧붙이는 것, 이것이 토평의 지속적인 추구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2018년 제9회 개인전 《산수山水-신형상新形象 그리고 평화전》을 통해서 이러한 작업의 방향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 전시의 출품작은 기존의 수묵채색 산수화와는 매우 다른 추상화抽象畵와 접점이 큰 것이었다. 4년 반 만에 갖는 토평의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창작에서의 방향성을 보다 심화, 다원화시킨 작업을 선보인다. 분명 풍경에 기반한 작업들이지만 이제 산수화라기보다는 ‘수묵추상水墨抽象’이라고 지칭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비구상적 측면이 커졌다. 산수화라고도 추상화라고도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독특한 작업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코로나19에 걸린 달” 시리즈는 이러한 근작의 경향을 대변한다. 화면 중앙에는 크게 달이 떠 있지만 푸근하고 따뜻한 달이 아니다. 숫자 6과 9를 겹쳐놓은 것 같은 검은 먹의 선에 의해 칭칭 동여매어진 듯 한 모습이다. 밤하늘 한줄기 빛으로 마음 한구석을 풀어주는 달. 그 달이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된 힘든 상황에 대한 은유이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리고 답답해진 일상의 한 단면을 갇혀버린 달로 그려낸 것이다. 화면 좌우로 간결한 선으로 그려낸 우리 내 터전이 있지만, 코로나19에 걸린 달은 더 이상 그곳을 비추지 못한다. 구상과 추상의 절묘한 만남이 엿보인다. 또한 토평은 한 미술사학자의 강연을 인용한 “풍경화의 진정한 매력은 그려진 세계를 자연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자연과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을 그 시대의 눈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그림이라 생각한다.”라는 제발을 씀으로써 작품의 성격을 보다 확대한다. 이 글의 내용 그대로 토평이 코로나19로 달라져버린 사람들의 정서를 자연 및 풍경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그려냈기에 이 제발은 작품의 내포에 대한 해석이자 해설이 된다.
이 지점에서 토평의 근작이 문인화文人畵와 접점이 생기고 있음은 흥미롭다. “코로나19에 걸린 달” 시리즈를 비롯한 근작을 보면 ‘형사形寫를 넘어선 본질의 묘사’ 추구, 시詩 · 서書 · 화畵의 결합 추구, 서예적 필법의 추구 등 그가 전통시대 문인화에서의 이상적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토평의 근작은 과거의 작품들에 비해 제발의 비중이 커졌다. 화면상에서의 비율 자체도 그렇지만 시각적으로도 작품의 조형성과 완성도에 보다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작품에 쓰여진 그의 한글 서예는 필법筆法과 장법章法에 있어서 유려한 행서行書의 미감과 상당 부분 통한다.
그는 또한 “겹의 미학. 인생은 하루하루의 겹. 천지자연도 겹, 우리의 마음도 겹, 가르침도 겹, 배움도 겹, 너도 겹, 나도 겹. 겹과 겹이 만나 태어나는 겹”이라는 제발도 적어 넣음으로써 삶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역사란, 인생이란 결국 쌓이고 또 쌓여서 누적되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밝힌 것이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고통도 하나의 축적될 하나의 경험이라는 달관적 태도의 표출인 셈이다. 문인화의 또 하나의 지향점이었던 ‘사의寫意’, 즉 ‘뜻을 그려내고 담아내는’ 면모도 담고 있는 것이다.
당대성當代性을 추구하던 그의 작품세계가 어느덧 가장 전통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문인화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형식이 아닌 본질로서의 문인화의 경우 얼마든지 당대적일 수 있고 또 현대성이라는 방향과도 함께 할 수 있음을 엿보게 된다. 이와 더불어 그의 근작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또 다른 주제로 ‘서화동원書畵同源’의 미감과 추상미를 결합한 “겹의 미학”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발랄한 이미지를 결합한 “팝과 함께한 수묵”의 경우, 문인화의 방법 및 지향과 서구 미술로부터 파생된 추상미술 그리고 팝아트의 방법과 조형성을 수렴, 절충한 것으로 한국화의 외연 확대의 산물로서 주목된다.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늘 그려오던 산수화의 점진적 전개를 통해 넘어서고 있는 토평의 추구에 찬사를 보낸다.
겹의 미학 5, 75×145cm
겹의 미학 6, 75×145cm
개인전을 열며
역시 이번 전시의 단면은 산수를 공부하면서 축출한 몇 가지 방법적인 연구의 결과물들이다. 산수의 틀에서 뽑아낸 지, 필, 묵의 체득 과정에서 얻어진 나만의 표현이다. 말처럼 무슨 거창한 것은 아니고 20대 중, 후반기에 이미 설정되어 있던 지향점을 향해 걸어가다가 건져 올린 게 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기본 루트는 산수에서 반 추상, 추상으로 나아갔다. 이미 체득되고 몸에 설정된 현장작업은 그림을 끝내는 날까지 베이스캠프로 유지되리라고 생각된다.
그 구체적인 특징을 살펴보자면
1. 팝을 수용한 수묵풍경(6점)
2. 선을 위한 앙상블(6점)
3. 면을 위한 앙상블(5점)
4. 코로나19에 걸린 달(6점)
5. 필과 기의 만남(6점)
6. 겹의 미학 등이 있다. (29점)
이 외에도 몇 가지 갈래가 더 있지만 생략한다.
늘 그렇듯이 동시대적인 사조의 변형과 의식을 또렷하게 제시해 보려고 했다. 물론 주관적인 관점은 벗어날 수 없지만 나만이 추적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조형의 세계를 원한다.
지금도 소품들은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기존의 습득한 것을 탈피하려고 노력한다. 구상具象, 추상抽象으로 가르기도 하나 그림은 매 한가지다. 우선적으로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나의 견해는 여전하다.
일상에서의 삶의 흔적은 이율배반적일 뿐만 아니라 뚜렷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 가치의 무게만큼...
돌이켜보면 후회할 일들이 잔불처럼 살아난다. 그때도 나였고 지금도 나이다. 이 지점(50대 후반)에서 ‘겹의 미학’이라는 테마가 나왔다. 우리는 몸뚱이 하나에 겹겹이 쌓인 경험의 축적 태이다.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부족함이 참 많다. 그동안도 부족함으로 가야 할 길을 찾았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료同僚 제현諸賢의 진솔한 지적을 바란다.
토평 이평규
겹의 미학 7, 75×145cm
겹의 미학 8, 75×14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