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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자 회고전 -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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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전준자 회고전 - 축제” 
●전시장소: 미광화랑
●전시기간: 2022. 11. 11(금) ~ 11. 30(수)
●전시개막: 2022. 11. 11. 오후6시
●전시관람: 오전11시 ~ 오후6시 | *점심시간(12시~1시) *일요일휴관: 전화예약관람
●전시문의: 051-758-2247
●전시소개:   

미광화랑에서는 11월11일부터 30일까지 전준자(全俊子,1944~)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전준자는 송혜수 미술연구소를 거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총 26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창작미술협회전, 구상전 등 다양한 단체전을 통하여 활동해 온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원로작가입니다. 그리고 국전 서양화 비구상부문 여성유일의 추천작가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2009년 부산대학교 정년퇴임기념전 이후 1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약 60여년에 걸친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시기별로 엄선된 작품 20여점을 선보이는 회고전 성격의 전시회입니다. 갤러리의 좁은 공간의 한계로 전준자 작업의 전체적인 면모를 다 보여 줄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전시 출품작중 <좌상B>는 1964년 국전에서 입선한 작가의 공식적인 첫 데뷔작으로, 오랫동안 국전도록에 실린 흑백도판으로만 전해졌으나 이번 전시를 계기로 수복을 거쳐 58년 만에 대중들에게 다시 공개가 됩니다.

전준자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978년 미국방문을 계기로 인디언 등 뉴욕 맨하탄의 각양각색 인물들이 물결치는 모습에서 축제에 영감을 얻어 휴머니즘적 관점으로 추상을 재해석한 <축제> 연작이 시작되어 2022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80년대부터 2022년대까지 <축제> 연작의 변모를 한 데 망라하여 볼 수 있는데, 특히 1980년대 이후 자유분방하고 힘찬 선묘를 살려 인간을 하나의 흐름처럼 재구성 해 축제가 인간의 유대를 되살리는 현장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처럼 미광화랑에서 부산미술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획, 개최되는, <<“전준자 회고전- 축제”>>에 부산시민과 미술관계자와 후학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축제, 65×130.3cm, oil on canvas, 2003



음악축제, 130.3x194cm, oil on canvas, 2008






화합과 의지: 전준자 회고전에 부쳐


안태연 | 前 예술부산 객원기자

 화가 전준자(全俊子, 1944-). 지금까지 26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창작미술협회전, 구상전 등 다양한 단체전을 통해 작품 발표를 이어왔고, 부산대학교의 교수로도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쓴 작가는 이제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원로 미술인으로 우뚝 섰다. 마침 화단 데뷔 60주년을 앞둔 올해 미광화랑의 초대로 마련한 개인전을 통하여 작가는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에 걸친 자신의 화업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을 오랜만에 골라 펼쳐 보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전준자의 작품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이제 작가가 추구한 예술 세계를 간략하게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전준자가 화가를 지망한 건 부평동에 자리했던 송혜수(宋惠秀, 1913-2005)의 미술연구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가 홍익대학교 졸업생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보고 마침 그 장소가 미술연구소라는 것을 알고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1) 이후 196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해 지도교수 이봉상(李鳳商, 1916-1970) 등의 가르침을 받으며 학사 과정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보존처리를 거쳐 58년 만에 일반 공개되는 <좌상 B>는 1964년 제13회 국전에 처녀 출품해 입선한 실질적인 데뷔작이다. 실내를 배경으로 앉은 모델은 당시 국전에서 흔히 다루어진 소재였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서부터 사실적인 묘사를 완강히 거부한 채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들인 과격한 붓질로 저돌적인 자의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전쟁 직후의 빈곤했던 사회상을 투영한 듯 어두운 색채로 연출된 암울한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준자의 작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1960년대 후반부터는 자연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고향인 부산의 아름다운 풍토에서 영감을 얻은 회화 작업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점차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대담한 행위는 다채로운 색채와 결합하면서 풍부한 서정성을 보여주는 특유의 화풍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1970년 제15회 창작미술협회전에 출품한 <내일>(이후 <작품 18>로 개칭)과 제16회 창작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시의 조형>(이후 <작품 1>로 개칭) 등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자연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래의 모티브를 암시하는 기호 정도로만 활용될 뿐 주된 표현은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생명력을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후 1978년 미국 방문을 계기로 전준자의 작품 세계는 다시 전환기를 맞이한다. 당시 작가는 인디언들이 추는 춤과 더불어 뉴욕 맨하탄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물결치듯 흘러가는 움직임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이를 <축제> 연작으로 구체화하였다. 하지만 작가는 축제를 단순히 기쁨으로 가득 찬 현장으로 생각하지만은 않았는데, “저는 그게 즐거워서 그린 건 아니에요. 그 많은 군상 속에서 인디언의 그 모습이 아련하고 가련하면서도 굉장히 우뚝 솟더라고요.” 2) 라는 발언은 이러한 의도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초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의 <축제> 연작은 대체로 푸른색 위주의 제한된 색채를 사용하여 인간의 비애를 암시하였으나, 수많은 인간의 실루엣을 마치 합쳐진 존재처럼 이어나가듯 재구성해 축제가 인간의 유대를 되살리는 현장임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전준자의 작품 세계에서 축제는 곧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공존하는 현장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 접어들면 화면 위에 풍부한 색채가 돌아옴과 더불어 자유분방하게 그어나간 선묘의 난무(亂舞)가 더해지며 축제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이즈음부터 전준자는 축제를 단순한 공동체의 행사가 아닌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힘을 모으는 한 마당, 즉 화합의 현장으로서 구현하였다. 거기에서는 휴머니즘적 시선으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과정과 목표에 영성을 투사한 믿음이 발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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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준자와의 1차 인터뷰. 2021년 10월 9일. 
2) 전준자와의 2차 인터뷰. 2022년 5월 27일. 



꽃, 39.3x27.2cm, oil on paper, 1963


좌상b, 159.7×128.6cm, oil on canvas, 1964


축제, 31.1x16.1cm, oil on canvas, 1982


얼굴, 41×31.8cm, mixed media on paper, 1984


축제, 27.3×22cm, oil on canvas, 1988


축제, 112×145.5cm, oil on canvas, 1990


축제, 91×72.7cm, oil on canvas, 1993


축제, 73×53cm, oil on canva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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