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호구’에 든 여자 노인을 위한 (For the elderly women in ‘Hogu’)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에서는 오는 2022년 12월 1일 부터 12월 17일까지 이영희 작가의 《‘호구’에 든 여자 노인을 위한》을 개최한다. 《‘호구’에 든 여자노인을 위한》은 쓰일 대로 다 쓰이고 껍데기만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모든 여자-노인에 대한 헌정의 전시이다. 하지만 오래된 흔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라져버리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것은 여자-노인의 또 다른 삶,잃지 않은 생명력,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껍데기 안에 아직도 생생하고 부드럽게 드러나는목화솜과 같은 속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재봉질로 하는 여성적 글쓰기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영희의 작업은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솔직함이 특징이다. 비망록 같은 작품 속에 반쯤 숨겨놓은 글자들을 찾아보면 욕도 읽힐 정도다. 이번전시 작품의 주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재봉질이라는 방식 또한 평이하다. 작가에게는 능숙한 기법이 없다. 자동화된 표현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예술가들은 늘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말한다.익숙치 않은 언어는 틈이 많기에 날 것이 더 드러날 수 있다. 작가는 ‘난 틈새에서 견뎌낸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호구’에 든 여자 노인을 위한]이라는 자조적인 전시 부제는 가부장제라는지금도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상징적 우주와 관련된다. 물론 이영희가 페미니즘 투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많은 작업에서 텍스트를 다루고 텍스트와 함께 형성되거나 해체되는 여성적 주체의 면모가 보인다는점이 중요하다. 특히 한 땀 한 땀 진행되는 재봉질과 글쓰기를 연결시킨 대목은 특이하며, 이 대목은 페미니즘을 포함한 여러 해석학적 상상력을 낳는다. 내밀한영역, 가령 비망록이나 예술적 작업에서의 언어 또한 사회적이다. 작가는언어를 통해 변화될 사회에 대해 말한다. ‘이기적’이지 않으면 ‘호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일과 작업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온 모든 여성들이 떨쳐내기 힘들었던 굴레다.
여자 노인의 대표적인 부류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영원한 자원으로 간주 되어 왔다. 정작 어머니 당사자들은 전 존재가 사용되느라 자신을 추스르거나 제대로 말할 기회는 없었다. 엘렌 식수는 여성이 여성을 써야 함을 주장한다. 실제의 죽음에 앞서서사회로부터의 빠른 물러남은 여성 노인의 것만은 아니다. 그 점이 이영희의 작업을 자기 한탄에 머물지않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한다. 한편 이영희가 호구 같은 여성의 상황을 말하는 것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아니다. 예술 자체가 무한히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그동안 해왔던 작업 또한 오래된 앨범처럼 보며 작업 자체가 자기반성이자 수행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로만귀결되지는 않는다. 글을 쓰면서 바깥으로 쏟아내고, 그마저도흩어지게 한다. 글씨 대신에 그림이 새겨진 천은 연처럼 날려버리는 방식으로 설치하기도 했다. 관객이 애써 퍼즐을 맞출 수는 있지만, 이영희의 문체는 가독성이떨어지는 조형적 언어다. 완전히 감추지는 않고, 해체주의의방식대로 ‘말소 하에’(데리다) 놓는다. 작품에 써있는 말들은 기원과 목적이 확실하지 않은 과정중의 말들이다. 예술은 완결된 주장을 하지 않는다. 예술은한탄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래서 어느 순간 슬픔이 희열로 변모하는 순간을 증거 한다.
이영희의 재봉질은 그리 섬세하지 않다. 바느질이라고해서 수놓는 여인네 같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농사 깃발의 형식을 빌어 설치한 작품 또한 광야에세워 놓은 깃발 같은 야성적인 면모가 있다. 세상일과 달리 자신의 의지에 의해 신나게 질러보는 작업의쾌감에 대해 작가는 옛 여인들의 다듬이질이나 빨래 방망이질 같은 행위와 비교한다. 솜을 품은 도톰한두 장의 천은 작가의 크고 작은 고민을 받아주는 장이 되었다. 바느질은 분열된 것을 잇고, 천은 쏟아낸 것을 받아낸다. 잉크를 직접 찍어 쓰는 펜글씨는 작가에게오래된 추억을 떠올리지만, 작품에 담긴 메시지와 연결시켜 본다면 체액을 찍어 쓴듯한 처절함도 있다. 여성적 글쓰기를 주장한 엘렌 식수는 ‘여성은 흰 잉크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모성적 육체와 텍스트의 연결이다. 작가는 1987년 이래 많은 전시에 참여해 오면서 출판의 형식을가지는 책자를 동시에 발간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그녀의 작업에서 쓰기의 비중을 가늠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쓰기의 주체로서 여성-노인을 호명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발언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라짐으로서 보다 분명해지는 정체성의 정치를 보여 준다.□
'호구'에 든 여자 노인을 위한: 이영희
2022. 12. 01. (Thu) - 12. 17. (Sat)
13:00 - 19:00 (Closed Monday)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616-4)
글: 이선영
사진: 서종현
주최 및 주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작가 소개
이영희는 1987년부터 여러 단체전(48회)에 참여하고, 개인전(15회)을 열었다.
2019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안양문화예술재단, 2018년 제20회 단원미술제, 안산문화예술재단2014년 Line up Artists in Anyang, 김중업박물관, 안양문화예술재단, 1998년 죽산국제예술제 _야외무대 주변 설치, 1994 제3회 종이미술전 은상,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선정되었고, 여섯 개의 점 여섯 개의 섬 2점이 김중업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판물로는, 2017년 251_Ellipsis (ISBN 979-11-87835-01-1), 2014, 393_Ellipsis (ISBN 978-89-966011-3-5), 2014, Line up Artists in Anyang (ISBN 979-11-953148-0-5), 2012, 틈 Crack : 12 (ISBN 978-89-966011-2-8), 2011, Lee Younghee, 마스터 카탈로그 (ISBN 978996601111 03600)가 있다.
이영희는 2000년 세종대학교 미술학 석사, 2017년 명지대학교 아동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공간 소개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는 영등포동에 위치한 아티스트-런-스페이스입니다. 전시, 작가와의 대화,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워크샵 등을 주관하며, 자발적이고 독창적인 제안을 가진 개인과 그룹에게 공간을 제공해 왔습니다. 작가의 생존과 지속을 위한 방안, 그리고 특히 경력단절, 차별, 혐오 등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문제들에 상응하는 대안을 모색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체성, 다중심적 연대를 통해 새로운 주체 의식을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는 다채로운 변질과 변신을 거듭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