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 명 : 임창준 개인전_ 삶의 유희 Nothing Permanent, but ....
▪ 전시장소 : 갤러리 도올
▪ 전시일시 : 2023. 1. 6 (금) - 2023. 1. 19 (목) (총 14일, 휴무일 없음)
▪ 관람시간 : [매일] 11:00 - 18:00
▪ 입 장 료 : 무 료
▪ 전시장르 : 사 진
▪ 전시취지 :
임창준의 사진작업은 자연을 전제로 한다. 삶의 유희를 찾는 여정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진들은 어두운 공간이 대부분이며 분명하지만 추상적인 성격의 형태이다.
▪ 전시개요 :
임창준의 사진 작업에서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 피사체로서 자체가 완벽하여 힘을 얻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화면에 다 담아낼 수 없기에 관찰할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으로 무한 소재로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 본다는 것에 중점을 두면 관찰은 단순히 외형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상상이 시작되고 감성이 들어간 느낌은 어떠한 형상이 된다. 여기서 관찰된 대상은 사진의 성격상 기록적인 면이 부각되지만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변화가 거듭된다. 미묘하게 던져진 작가의 시선 처리를 통해 자연은 본래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좀 더 자유로운 형상이 된다. 채도를 낮추고 콜라주 된 대상은 무의식의 세계처럼 신비롭다. 수평적 구도에서 대상을 화면 중심에 두고 풍경만 있거나 인물이 들어간 공간 안은 연출이 되기도 한다. 본인이 직접 사진 속 모델이 되어보는 장면도 있다. 아름답지만 어두운 면도 있는 진지한 느낌에서 이성적으로 바라본 자연을 은유시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고 자연과 인간 혹은 자연의 일부로 일상을 연결시켜 표현한다. 곳곳을 누비는 공간으로 관계지향적인 면에서 평면은 명확하지만 불분명한 추상화된 성격이다. 그곳에서 ‘삶의 유희’를 찾는 작가의 바람은 예술작품이 되었고 사진 안은 소통의 장으로 자연은 아름답지만 거친 양상이다. 평면 안에서 원형 안에 나무를 중심으로 밤하늘이 보인다. 특히나 어두운 화면 처리로 대상은 본래의 속성을 지닌체 그곳에 놓여 있을 뿐이다. 탄생과 소멸의 어떤 지점에 생명체를 보여 주듯이 조형은 찰나의 기록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려는지도 모르겠다.
압축적인 이야기로 종교적 성찰도 포함된 이곳은 보이지 않는 신념으로 열심히 살자는 다짐이 엿보인다. 메마른 땅으로 거친 풍파도 있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 낡은 듯한 화면은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상징이 환영임을 알면서도 쫓아가는 인간이 보인다. 왜라는 물음으로 고뇌하며 감정을 느끼는 라캉의 주이상스Jouissance를 묻는 의미론적 조형이다. 이 물음은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 근대로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에 세계 이후부터 알아가기 시작한다. 플라톤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안과 밖, 선과 악, 육체와 정신으로 여기던 것을 어느 순간 설명되지 않은 현실들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트라우마 일 수도 있지만 느낀다는 것은 결국 해결됨, 변화와 발전을 이룩하는 원동력이지 않나. 얼마 전까지 우리의 일상은 힘들었다.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일상은 마비되었었고 서서히 다시 찾아온 일상은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했다. 결론내고 싶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작가의 사진이 있다. 빛바랜 듯한 자연 안에 수도사가 연상되는 인물. 장면을 떠올리면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을 살지만 조금은 다른 시선에 머무르는 사람들 소위 얘기하는 세속적 욕망이 아닌 신을 섬기는 인물로 이성과 감정이 잘 조절되는 사람이 아닌가. 세속적 잣대에서 벗어난 종교인이 바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란다는 것은 타인을 두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술가 또한 다른 시선 속에 있는 사람이다. 세상 속에 일부이지만 한 사람으로 일상을 주저 없이 확인해 느끼며 작품을 만들어내니 평범함 속에 솔직함을 꺼내 드는 사람들이겠다. 그러한 면에서 작가의 작업은 아이러니하다. 순간 너머로 보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밤처럼 표현된 공간 안에서 들여다보려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속단하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보길 원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긍정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은 세상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이루고자 하는 것과 나와의 간극을 잘 알고 현실을 인정해야 삶이 지속되기에 사진은 그래서 사실적이면서 어디인지 모를 알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 현장을 관찰한 결과로 실험하며 결실을 맺어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 노트
삶의 유희 ( Nothing Permanent, but .... )
현대 사회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원적이다. 사회적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못 견디는 이들도 적지 않아 생각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유명을 달리 하기까지 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우리 삶의 여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살아가며 여러 질곡들을 겪다가 재생하고, 또 다시 시련에 빠졌다가 환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숨겨놓음으로써, 관람자들이 언젠가 겪었을 상황들과 그때의 심정들을 떠올리며 꺾이지 않는 새로운 힘을 주고자 했다.
사진들의 몽타주
몽타주란 영화에서 차용되는 기법으로 이질적 요소들의 병치 원리이며, 통일 원리이다. 이질적인 것을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상이한 것들이 서로 교차하며 의외성을 창출할 수 있어서, 임의의 샷이 그 뒤의 샷과 대비되며 제3의 의미가 파생될 수 있다.
피사체 혹은 사진 속 풍경들은 실제 삶 속의 세계이지만, 각 사진들은 도상적 텍스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 각 사진들은 몽타주 기법으로 이어지며 개별성을 극복하게 되고, 관람자들이 더욱 높은 의미의 스토리로 해석할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
기억, 시간, 공간의 삼위일체
흔히 볼 수 있는 사진 속 형상들은 관람자의 경험과 오버랩 되는 순간 직관의 장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과거, 현실, 그리고 미래의 몽환처럼 진동하며 다가와서 현실 세계의 피막에 기억 파편들이 붙고, 그 피막들이 서로 굴절되며 모이면, 파편 조각들은 서로 합쳐지며 사유의 바다 속에서 출렁인다. 즉, 사진은 피사체들과 인간과 카메라와의 교집합이며, 시각적인 외부의 풍경과 사진가의 내부 감성이 에피파니처럼 교감으로 연결되는 삼위일체의 결과이다.
이런 현상은 자연계에서도 볼 수 있다. 물은 하늘과 땅 위와 땅 속 세계를 순환하며 관통한다. 대지와 공기 속의 물은 인간은 물론 나무 등 이 세상 모든 자연 속의 피조물들에게 전달된다.
무한한 생명수로 목을 적시고 삶을 영위하라, 고난으로 삶이 피폐해지더라도,
파 한 뿌리라도 놓치지 말라, 큰 불행과 절망이 우리를 엄습하더라도…
각 인간에게는 존재 의미가 있고, 자유 의지가 주어졌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 갇힌다 해도, 더 침잠하며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과거를 되새기며, 스스로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 바람의 인도로 옛 길을 거닐다 보면 상처가 치유되고, 재생과 환생을 거치며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 마침내 내면의 조화를 되찾으며 삼위일체가 완성되면, 새로이 원초적 생명이 잉태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또 다른 생명들과의 교감을 위해 온 우주로 울려 퍼져 나간다.
“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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