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 전시 개요
전 시 명 양의숙 미학 산문 출판기념전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일 시 2023년 1월 13일 (금) ~ 1월 29일 (일)
장 소 가나아트센터 1, 2 전시장 (서울 종로구 평창 30길 28)
주 관 가나문화재단
출 품 작 총 40여점
제주반닫이, 제주문자도, 서안, 뒤주, 염주함, 다래함, 채화칠기 삼층장 外
※ 행사 안내
* 기자간담회 : 2023년 1월 12일 (목) 오후 2시 / 가나아트센터 3층 아카데미홀
* Opening : 2023년 1월 13일 (금) 오후 4시 / 가나아트센터
■ 전시 소개
가나문화재단 주관
KBS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 양의숙 출판 기념전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개최
인생 최초의 수집품 ‘너말들이 뒤주’, 친정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제주 알반닫이’를 비롯
민예품에 대한 사랑과 열의로 품은 소장품 40여점 공개
가나문화재단은 KBS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 유명한 예나르 양의숙 대표의 책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의 출판을 기념하여 전시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예나르 양의숙 대표가 인생 처음으로 구입한 전통 목가구 ‘너말들이 뒤주’, 친정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제주 알반닫이를 비롯하여 우리 민예품에 대한 열의로 발견하고 품어낸 경패와 염주함, 박천 담배합과 채화칠기장 등 소장품 40여점이 출품된다.
특히 제주가 고향인 양의숙 대표는 제주의 민속 문화를 알리는데도 열심이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태어난 뛰어난 독창성을 보여주는 제주문자도와 제주의 나무와 흙으로 빚은 여러가지 민속품들도 이번 전시에 함께 출품되는데, 육지의 문화와는 다른 투박하고 단순한 미감이 돋보인다.
이번 전시는 책에 수록된 작품들과 그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글을 읽으며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박물관의 ‘유물’로 대하며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작품들이 어느덧 삶 속의 친숙한 가구로, 일상 소품으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한다. 양의숙 대표가 평생을 바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노력이 바로 이런 ‘거리 좁히기’ 였을 것이다.
가나문화재단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 네 번째 기획
살아있는 미술 현장 기록이 목표
가나문화재단은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조형미술계 숨은 역군들의 활약상 정리를 공익사업의 하나로 여기고 진행해왔다.
2014년 우당 홍기대(고미술상) 『조선백자와 80년』,
2016년 두 번째 결과물인 표구장 이효우의 『풀 바르며 산 세월』
2020년 세 번째 기획 수집가 김용원의 『구름의 마음 돌의 얼굴』에 이어
2023년 네 번째 기획으로 민속품 감정 전문가 양의숙의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를 출판 후원했다.
가나문화재단의 출판사업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 기획은 몸으로 부딪히며 얻어낸 살아있는 미술 현장의 기록을 남기는 데 목표를 둔다. 양의숙 대표의 책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에 전문가로서 작품의 설명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그 작품 하나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에 담긴 저자의 개인사와 에피소드를 풀어서 써주기를 기대한 것도 보다 ‘살아있는’ 이야기를 붙잡기 위한 요청이었다.
나무가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큰 뿌리 옆에 작은 뿌리가 촘촘히 얽혀 내려가야 하듯이, 재단은 이러한 미시사적, 共時적 관점의 서술이 후대에 전해질 과거의 순간이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는 미술 사료가 될 것으로 믿는다. 가나문화재단은 앞으로도 우리 문화계 고수들을 찾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살아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것에 노력할 것이다.
■ 주요 출품작
풍요를 담다
너 말들이 뒤주
너 말들이 뒤주, 조선 19세기, 소나무, 39×27×27(h)cm
두 살 터울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쌀 너 말이 들어가는 뒤주가 있었다. 뒤주 중에는 좀 작은 편이다. 어느 날 아파트로 쌀을 팔러 온 아주머니에게 쌀 너 말을 샀다. 아주머니가 돌아간 직후 뒤주에 쌀을 담아보니 아뿔싸, 쌀의 양이 꽤 모자라는 게 아닌가. 쌀 뒤주는 계량이 정확해서 오차가 있을 수 없다. 허겁지겁 뒤쫓아 나가 모자라는 양을 다시 확인하고 쌀을 더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뒤주 덕분이었다.
궤 이야기
반닫이
제주 알반닫이, 조선 19세기, 나무에 무쇠장석, 53.5×28.5×36(h)cm
나에게는 작고 사랑스러운 반닫이 한 점이 있다. 45년 전 친정어머니께서 딸의 산바라지를 위해서 제주에서 상경하면서 가져온 자그마한 알반닫이이다. 마흔이 넘어 나를 낳은 어머니는 나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소소한 것도 투정부릴 수 있는 대상이었다. 관절도 안좋은데 먼 곳에서부터 그 무거운 것을 힘들게 끌고 왔다며 어머니에게 오히려 역정을 냈다. 옛 것을 보면 무조건 좋아하는 딸을 위해서 어머니가 어렵게 들고 온 알반닫이는 첫 아이가 태어나자 머리맡에 두고 배냇저고리와 기저귀를 담아두는 애틋하고도 사랑스러운 작은 공간이 되었다. 이 알반닫이는 부채꼴형 경첩의 양 옆에 커다랗게 마름모형 장석을 붙여서, 전라도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장식의 미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가의 반닫이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첫아이를 키우며 사용하던 추억과 친정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결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반닫이다.
원광의 형상
염주함
염주함, 여말선초, 행자나무, 19×19.5×5(h)cm
재작년 봄이었다. 벚꽃이 만발하던 날 길을 나섰다. A 씨 댁을 찾아가는 날은 늘 설렌다. 그날, 그 집에서 색다른 함을 접했다. 일반적인 형태의 함과는 달리, 똬리 모양을 한 염주함이었다. 둥근 도넛 모양 같기도 한 이 함은 염주를 둥글게 담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는데, 앞면에 부착된 잠금장치와 경첩 등에서 격이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이었다. 형태가 흥미로워서 좀더 꼼꼼히 살펴보았다. 통나무를 둥글게 다듬어 목태木態를 만들고, 갈이틀로 깎아서 똬리 모양으로 완성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위아래를 몸체와 뚜껑 용도로 분리하고, 호비칼로 2–3mm 두께의 틀만 남겨 놓고는 속을 파냈다. 완성된 백골은 사포질로 다듬은 후, 전체를 주칠하고 다시 내부를 제외하고 흑칠을 덧입혔다.
염주함의 자물쇠와 경첩 등 모든 금속장식은 주석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못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떤 기법으로 장석을 고정시킨 것일까? 이 염주함은 금속장식을 표면에 부착하기 전에 ‘ㄷ’자형 못을 보이지 않게 속에 박고 옻칠을 쌓아 올리며 고정시키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제작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염주함 표면이 평면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서, 부착한 경첩마다 일일이 표면에 상응하도록 미세하게 굴린 것을 보면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은 장인의 정성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금구장식의 기법과 형태, 그리고 옻칠 방법으로 보아 이 염주함은 고려시대의 양식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잠금장치는 조선시대에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서 제작해 쓰던 ‘ㄷ’자형 자물쇠라는 점을 종합해볼 때,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여말선초麗末鮮初 시기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피보디 박물관에서 만난 담배합
박천 담배합
담배합, 조선 19세기, 무쇠와 금, 은, 구리, 15×15×9(h)cm
원통형으로 자그맣게 만들어져서 당당하고 묵직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품위가 있어서 좋다. 기개 있는 선비의 사랑방에 놓여서 주인의 품격을 아우르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내가 소장한 담배합의 풍모이다. 처음에는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우아한 모양새가 내가 가진 담배합들 중에서도 색달랐다. 27년 전 미국에서 한국 고미술품 수집가 로버트 무어에게서 구입한 우리 담배합이다.
담배합은 궐련이 발달하지 않던 시기에 다듬은 잎담배를 담아서 집 안에 보관하던 합의 일종이다. 밀폐된 합은 담배 향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담배 향을 숙성시켜주는 역할도 했다. 철판을 두들겨서 합을 만들고, 그 표면에 금, 은, 구리 등으로 문양을 새겼다. 이 담배합은 서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평안도 박천 지방의 담배합이다. 박천 지방은 장석을 섬세하게 투각한 숭숭이 반닫이로도 유명하다. 무쇠 소재의 만듦새에 익숙한 박천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단지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외국의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의 반쪽은 북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먹는 것에도 의미를 담다
약과판
약과판, 조선 19세기, 박달나무, 33×33×6(h)cm
정사각 나무판에 한자가 선명한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혹 장기판이 아닌가 싶은 이것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진품명품」에 처음으로 출연한 지 어느새 26년이 지났다. 1995년 3월 5일, 첫 방송 이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오랫동안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보면 희귀한 유물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이 약과판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약과판과 다식판, 떡살에는 통상 부귀와 다손을 상징하는 물고기나 장수를 의미하는 국화문 등의 새겨져 있으면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형태는 대부분 기다란 직사각형이다. 그런데 이날 소개된 약과판은 정사각형의 나무판 전면에 스물다섯 개의 글자가 새겨진,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진품명품」에 출연한 의뢰인에게 약과판의 출처를 물어보았다. 고미술에는 출처와 용도도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유물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경북 안동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하여 구입했다고 했다.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뒤집어보니 손잡이가 있었다. 문양을 파낸 부분에 재료를 채운 후 손으로 누르는 보통의 약과판 방식이 아니라, 판을 누르기 쉽도록 잡는 손잡이가 있는 것이다. 글자가 새겨진 부분은 살짝 볼록하게 만들어서 약과를 찍었을 때 글자가 선명하게 찍히도록 제작되었다. 15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약과판이 방송에서 소개된 후에 1년 가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초대받은 어느 전시회에서 나는 우연히 이 물건을 다시 만났다. 「진품명품」에 출연했던 그 출품자는 나에게 구매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결국 안동의 어느 양반가에서 집안의 번영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아서 정성스레 찍어냈던 약과판은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 나에게 오게 되었다. 참으로 인연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극한의 미학
제주문자도
제주문자도, 19세기 말~ 20세기 초, 종이에 채색, 46×107cm (8폭 병풍)
제주문자도는 육지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육지의 문자도가 주로 중국의 고사에 얽힌 그림을 담아냈다면, 제주문자도는 내용이나 화면 구성부터가 매우 독보적이다. 화면을 위에서부터 세 면으로 분할한 3단 구성이 주류를 이루며, 3등분으로 나뉜 화면에는 각각 별도의 장면을 설정했다. 제주문자도에만 있는 독특한 구성이다.
화면의 상단에는 꽃이나 누각을 표현한 천상의 이미지와 이른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넝쿨 식물들이 등장하며, 중단에는 유교의 여덟 덕목이 담긴 글자가 배치된다. 그리고 하단에는 현실의 생업을 반영하는 바다와 물고기(옥돔), 섬의 여러 식물들이 자리한다. 또한 문자도에 얽힌 상징적인 도상들은 사라지고,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인 화조가 중심이 되어 화면을 채운다는 점도 특이하다. 도구에도 차이가 있다. 글자의 외곽선을 먹으로 그리고, 외곽선 내부에 꽃, 단청, 파도무늬 등을 넣었는데 못이나 대나무 꼬챙이, 돗자리를 짜던 풀을 사용해서 표현했다.
모필이 아닌 띠를 붓으로 삼은 비백飛白 효과도 제주문자도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현대 미술의 조형미를 방불케 한다. 비백이란 털붓 대신에 딱딱한 붓을 빠르게 움직여 먹이 종이에 골고루 묻지 않고 군데군데 스치게 함으로써 자잘한 선묘 모양의 흰 색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운필법을 말한다. 제주문자도가 보여주는 담백하고 맑은 채색과 절제된 표현, 그리고 비백 효과는 제주에 재료가 부족한 탓에 고안해낸 일종의 자구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른바 “극한의 미학”인 셈이다.
섬이라는 고립되고 한정된 지역 환경과 문화 속에서 발전한 제주문자도. 육지로부터 떨어진 지리적 여건만큼이나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훌쩍 벗어난 일탈과 파격의 미는 제주문자도만의 매력일 것이다. 창조적인 문화는 이처럼 늘 변방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 책 소개
1) 책 개요
서 명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 4; 양의숙 미학 산문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글 쓴 이 양 의 숙
출판 후원 가나문화재단
발 행 처 까치글방
발 행 일 2023. 1. 12
2) 목 차
시작글 | 나의 길, 나의 삶
1부 일상을 빛내다
언제나 보름달 ― 달항아리
풍요를 담다 ― 너 말들이 뒤주
때로는 하늘의 별처럼 ― 목등잔
조선의 카펫, 모담 ― 조선철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작은 빛 ― 조족등
경전의 이름표 ― 경패
조선 왕실의 품격 ― 주칠삼층탁자장
원광의 형상 ― 염주함
승려의 애달픈 철제 상 ― 저승효행상
단상 1 ― 감정,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다
단상 2 ― 나의 스승 예용해 선생님
2부 품격을 높이다
선비의 야외활동 필수품 ― 화약통과 화살통
피보디 박물관에서 만난 담배합 ― 박천 담배합
낮잠의 동반자 ― 목침
한국의 미가 담긴 관복의 문장 ― 조선 흉배
남자도 비녀를? ― 탕건과 망건
임금이 내린 영광의 꽃 ― 어사화
청빈한 삶을 담다 ― 서안
극한의 미학 ― 제주문자도
투박한 쇠뿔의 화려한 변신 ― 화각
단상 3 ― “닮음과 다름”의 미학
단상 4 ― 제주에 떨어진 물방울, 김창열 화백
3부 맵시를 더하다
조선시대에도 가발을? ― 다래함
먹는 것에도 의미를 담다 ― 약과판
여인을 더욱 기품 있게 ― 머리꽂이
세계 유일의 혼수품 ― 열쇠패
여인의 소망을 담다 ― 노리개
가장 아름다운 옷 ― 원삼과 활옷
새로운 미의 탄생 ― 백자개함
궤 이야기 ― 반닫이
중용의 미학 ― 채화칠기 삼층장
단상 5 ― 제주의 품격을 높인 두 여인, 만덕과 홍랑
단상 6 ― 두 분의 사랑, 어머니와 어머님
맺음말
(전체 267p)
■ 저자 소개
“예술을 나르는 여자” 양의숙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민예품에 관심이 많아서 ‘예쁜 것’이라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위해서 동네방네 다니며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을 구해서 딸에게 ‘대령시켰다’. 미적 감성은 그렇게 키워졌다.
제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잘 나가는 여자아이들의 코스인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어서 대학원(홍익대학교)에 진학하여 미술공예를 전공했다. 예용해 선생은 그 열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졸업 후에는 20여 년간 홍익대학교, 경희대학교, 건국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들에서 두루두루 강의했지만, 외국 박사만 존중하던 시절이라 대학에는 더 이상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술을 나르다”라는 뜻을 가진 화랑 “예나르”를 열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많은 예인(藝人)들과 좋은 물건들을 접하며 안목을 다졌다. 이 이력으로 〈TV쇼 진품명품〉 감정위원을 26년간 맡았다. 현재는 (사)고미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학력 및 약력
• 197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목공예학과 졸업
(석사논문 「제주도 궤(櫃)에 대한 연구: 장식문양(裝飾文樣)을 중심(中心)으로」, 예용해 선생 사사)
• 1973년 고미술화랑 예나르 대표
• 1995년 KBS 「TV쇼 진품명품」 민속품 감정위원
• 2018년 (사)한국고미술협회 부회장
• 2020년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장
• 2022년 (사)한국고미술협회 회장
활동
• 경희대학교, 건국대학교, 홍익대학교 등 출강
•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 삼성인력개발원 신입사원 대상 강연, 공정거래위원회 실, 국장 간부 대상 강연 등 다수 진행
• 제주문화재위원회 위원, 농업박물관 자문 운영위원, 제주자연사박물관 자문 운영위원,
정부미술품 자문위원, 경찰청박물관 자문위원, 경기도 공예품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등 역임
전시 등
• 고미술 화랑 예나르에서 〈고운 옛 옷과 치장들전〉(1991), 〈불그릇전〉(1992),
〈조선의 목공예전〉(1994), 〈옛 공예 명품전〉(2002), 〈꿈과 사랑: 옛날 베개전〉(2003),
〈꼭두야, 꼭두야: 옛 상여 장식전〉(2004), 〈자물쇠와 연초함전〉(2005), 〈팔도 반닫이전〉(2006) 등 개최
• 2001–2002년 충청북도, 충청남도 청사 내 사랑방 조성사업 수행
• 2005년 김해 한옥체험관 조성, 남한산성 행궁 실내 작품 설치,
청와대 한옥 영빈관, 국회 한옥 사랑채 조성
• 2009년 제주 컨벤션 센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미술품 설치
• 2019년 부산 벡스코 전시장 미술품 설치
• 2020년 제주 저지예술인마을에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 설립,
개관 기념전 〈제주실경도와 제주문자도〉 개최
수상
• 2009년 문화부 장관상, 「제주신보」 문화상 수상
■ 서 평
실사구시 민예통의 우리 미학 산문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
여기 사랑으로 우리 민예품을 찾아 그 가치를 캐고 닦고 엮어낸 사람이 있다. 제주 비바리 출신 양의숙이 바로 그이.
우리 미학의 증거물로 단柦 위로 높이 올려놓은 청자·백자의 완성미에 못지않게 생활용품의 손때 흔적에서도 찾았던 혜안이 있었다. 우현 고유섭이 전자에 착안했다면, 근원 김용준은 후자 쪽이었다. 이 두 갈래를 하나로 모은 이가 우현의 고제高弟이면서 근원과도 어울렸던 혜곡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다.
혜곡은 이전에 고물로 버림받기 일쑤였던 민예품 사랑을 집대성해서 박물관 전시(『한국민예미술대전』, 1975)로 엮었던가 하면, 주위 인사들에게 공부를 권면한 노릇에서 단연 제일인 자였다. 이를테면 민예품 가운데 덩치로 보아 목기가 그 대표주자이겠는데 서양화가 김종학에겐 그 수집을, 양의숙 등에겐 그 공부 또는 그 사랑 실천을 종용했다. 결과로 김종학의 수집품은 돌아서 국립중앙박물관 중요 기증품으로 자리잡았고, 이제 양의숙은 ‘실전’을 통해 쌓은 안목을 여기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 사이 양의숙이 ‘진품명품’을 찾아 나섰던 도정은 동학들 사이의 상호 배움이기도 했다. 민예품이 거개가 집안의 용품이었던 만큼 여성들의 손길 영역이기 쉬웠는데, 과연 이 방면으로 여류들의 탐구도 돋보였다. 배만실은 대학 쪽이고, 김삼대자는 박물관 쪽이었다. 견주어 양의숙은 현장의 여전사였다. 현장의 사실에서 아름다움 식별에 진력했으니 실사구시인 것이다.
양의숙은 지방성이 유별난 제주 풍물의 전국화에도 선봉이었다. 민화 가운데 제주 민화가 특이함을 가려 뽑아 책자(『제주문자도』, 제주공예박물관, 2020)도 내고 전시도 열었다. 뿐인가, 조각가 한용진을 청해 구멍이 숭숭한 화산석으로 현대 미니멀 조각품을 만들게 했는가 하면, 초상화에도 정통한 동양화가 송영방을 부추겨 몽고쪽 골격도 비친다는 제주 인물들의 얼굴을 그리게도 했다.
가나문화재단은 우리 민예품 아름다움의 발굴과 그 현창에 앞장섰던 혜곡의 안목을 기려 그의 탄생 백 년이던 해에 전시와 함께 도록(『조선공예의 아름다움』, 가나문화재단, 2016)을 발간한 바 있다. 이번에 양의숙의 미학 산문을 펴내는 것도 그런 관심과 노력의 일단이다.
책은 사람이다. 이 책은 양의숙이 바로 우리 공영방송의 오랜 주말 문화프로그램 타이틀이던 ‘진품명품’임을 웅변해준다고 우리 재단은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