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기획 이정민 ‘느린 환절기’
2022. 12. 28 (수) ~ 2023. 1. 3 (화)
1. 전시개요
■ 전 시 명: 갤러리 도스 기획 이정민 ‘느린 환절기’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B1)
■ 전시기간: 2022. 12. 28 (수) ~ 2023. 1. 3 (화)
2. 전시서문
시간 채집
김민영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우리는 삶을 통해 경험을 얻고 경험을 통해 감정을 얻는 순환의 과정을 겪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삶은 끊임없이 행동하고 상호작용하는 경험 전체이며, 그 경험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감정들은 시간의 지층으로 쌓여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성장시킨다. 이렇듯 시간은 우리의 경험을 구성해나가는 중요한 부분으로 한 순간도 정지되어 있지 않고 여러 층위로 지속 축적된다. 시간에 있어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흔적이 아니며 미래 또한 아직 경험되지 않은 다가올 현재가 아니다. 예컨대 과거의 경험이 갖는 감정이 어떠한 자극에 의해 현재로서 의미를 갖게 되면 또 다시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미래에서는 과거의 경험과 관련된 무언가를 만나게 될 때 우리의 태도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처럼 시간의 지층 속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유연하고 탄력적인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정민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함과 동시에 내재된 감정에서 비롯된 마음의 그림자를 드러내어 삶의 균형을 얻고자 한다. 시간의 시각화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서 자연이라는 공간으로 환원시켜 표현된다. 이러한 추상적인 시간은 구체적인 어떠한 물체의 변화로서 형상화되는데 작가의 경우 시간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생태의 변화를 매개로 표현한다. 자연이 보여주는 변화의 과정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시간으로서 생성과 소멸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이에 작가의 작업은 주로 인간의 목적과 취향으로 분류되어 외면 받는 들풀들을 소재로 하여 과거의 흔적을 통해 미래를 꿈꾸며 그 찰나에 있는 우리의 존재를 화폭 위에 표현한다. 작업에서 나타나듯이 시간을 탐구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과의 만남을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작업은 주로 회화와 대안적 사진 과정의 형식을 혼용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자연으로부터 채집한 재료를 사용하고 환경에 따라 반응하는 사진 매체를 빛에 노출시키는 과정을 통해 들풀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이는 시간의 흐름이자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목격하는 순간으로 일상의 동일성에 파묻혀 숨겨져 있던 일상을 환기시킨다. 차분한 모노톤의 들풀 줄기는 지나온 시간의 결과와 흔적을 표상한다. 이때 먹이 번져나가 만든 면을 가로지르며 색채가 더욱 선명해지는데 이는 소멸의 경계에서 다시 생성하기 위한 에너지를 응축한 듯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힘 있게 더 많은 갈레로 뻗어나간다. 뻗어나가는 들풀의 줄기로 인해 마음의 그림자로 여러 차례 중첩된 먹의 번짐은 더 이상 불완전함의 잔상이 아닌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작가에게 삶은 계절이 바뀌는 구간에서 어김없이 맞이하는 환절기로 표현된다. 인간의 삶 또한 환절기처럼 생성과 소멸의 경계에 자리한 시간의 변화를 느끼는 자연 그 안에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개인이 삶을 극복하고 미래를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움츠러든 내면을 치유한다. 작품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머무는 내면의 심상을 포착하여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삶을 반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성과 소멸이란 시간의 법칙 아래 인간의 삶은 자연과 같다. 바삐 스쳐가는 삶 속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차분히 각자의 시간을 채집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느린 환절기>
sunprinting, oriental ink, natural dyed, botanic emulsion on paper_162x336cm_2022
<사소한 이동>
sunprinting, natural dyed, botanic emulsion on paper_162x112cm_2022
<사소한 이동>
sunprinting, natural dyed, botanic emulsion on paper_162x112cm_2022
<사소한 이동>
sunprinting, oriental ink, natural dyed, botanic emulsion on paper_162x112cm_2022
3. 작가노트
나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며, 주로 인간의 목적과 취향으로 분류되어 외면받는 들풀을 소재로 한다. 화면 속 과거의 흔적을 통해 그 대칭점에 있을법한 미래를 꿈꾸며 우리는 그 찰나에 있음을 담고 있다. 자연과 밀착되어 생활하며 보았던 들풀의 생태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작업의 근간이 되었다. 자연 속 들풀은 어두운 땅속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모든 에너지를 응축시킨 씨앗을 만든다. 일시적 온기에 쓸데없이 기뻐하지 않고 조용히 겨울의 혹독함을 기다리는데, 이 과정을 극복한 씨앗만이 싹을 틔운다. 자신만의 전략으로 역경과 시련을 오히려 기회로 만드는 모습을 보자면, 성장기를 거쳐 인간관계 속 다양한 경험을 가지며 성숙해지는 우리의 모습이 반추되기도 한다.
삶에서의 느닷없는 사건과 사고, 사람들과의 관계성에서의 문제 등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경험이 되어 주기도 하는데, 실제로 체감되는 과정은 짧지 않다. 오히려 삶 전체가 완성되기 위한 과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담기 위해 환경에 의해 색과 성질이 변화되거나 변질되는 유기물질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이러한 사용은 물질 자체가 갖고 있던 본래의 색이 점차 흑색에 가까워지기도 하는데,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색이자 자연으로 귀의하는 색이기에, 거듭된 변화로 중첩된 톤들은 천천히 자연의 품을 닮아간다. 또한, 빛에 드러난 시간만큼 서서히 소멸되기도 하여 새로운 시작을 품은 순환성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작품들 전반에서 보여지는 단색조는 한국의 전통 수묵에서 발색된 듯한 모노톤의 선염과 번짐이 연상되기도 하며, 회화적 구성과 더불어 번짐, 중첩, 미디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점차 이미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의도하지 않은 우연성을 동반한다. 이것은 나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경험의 축적, 고통을 통한 깨달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마음의 그림자를 대신하고 있다. 가라앉은 톤들의 레이어에 안착된 희미한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꾸준한 미시적 움직임 또한 확인이 가능하게 하였다.
시공간의 한 단면처럼 나타난 화면은, 긴 가로나 세로 형식의 단일 구도를 사용하여 드러난 듯 드러나지 않은 듯, 움직임의 가능성을 품은 찰나의 모습이다. 변화의 속도를 달리하며 보여지는 색의 대비 또한 시간의 이행을 품고 있다.
이 현상은, 어떤 대상이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한 지점에 정착이 가능한, 빛을 이용하는 매체인 사진의 일부 과정을 혼용하여 시각화시킨다. 식물이 생태에 필요한 요소를 만들기 위해 빛을 이용하는 방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최종적으로 불안정한 이미지의 안착을 위한 염색과정은 또 다른 변질을 가져오기도 한다. 화면 내에서의 끊임없는 변화는 우리 삶에서의 예측 불가능함과도 유사하다. 신작 외에 다수의 정방형 작품들에서 이러한 시간에 따른 변화의 객관적 확인이 가능하다.
식물생태를 통해 본 시간의 흐름은, 유동적이며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인간의 목적에 의해 분류된 식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일이어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 무심히 변하며 흐르는 자연이 그렇듯,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희망이라는 꽃을 피워 나갈 것이다. 삶이라는 환절기를 통해.
4. 작가학력
이정민 (Lee Jeong Min / 李貞敏)
email : 1004vitamin1004@gmail.com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 석사 졸업
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 졸업
한남대학교 회화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