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展 My Cat, My Schrödinger
이성수, 육근병의 대화 ; 이성수의 파동으로부터 육근병의 시선까지
전 시 명 : My Cat, My Schrödinger
전시작가 : 이성수 Lee Sungsoo
내 용 : 회화, 설치, 영상 50여점
일 시 : 2023년 01월 12일(목)~02월 05일(일)
갤러리 더플럭스·갤러리 더플로우·사이아트 스페이스·사이아트 도큐먼트 | Collaboration Gallery: 아트로직 스페이스
안국동 사이아트센터에서는 록뮤지션이자 아티스트로 활동중인 이성수 작가의 초대기획전시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사이아트센터에서 기획하고 있는 <Bilingual series>의 첫 기획 전시로서 이성수 작가는 록음악 과 시각예술 언어를 사용하여 팬데믹 이후 단절된 인간 사회의 문제와 존재론적 문제를 자신의 반려묘와의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가며 새롭게 발견하게 된 애틋하고 소박한 일상적 이야기들로부터 풀어내게 된다. 그런데 이성수 작가는 이 일상적 삶의 이야기를 육근병 작가와의 예술에 대한 대화로 이어나가게 되면서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와 만남의 문제로 이야기를 확장해낸다. 그렇기에 My Cat, My Schrödinger라는 전시 주제는 이성수 작가가 반려묘 ‘꾸미’라는 고양이를 관찰하면서 존재와 세계에 대한 시각이 변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을 양자역학의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기 위해 선택한 대리적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대상 혹은 타자를 관찰하거나 바라보게 될 때 존재는 그리고 세계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그 의미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게 된다. 이번 전시는 5개 공간에서 5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드로잉, 설치, 영상 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다. 전시에서 특별히 이성수 작가의 드로잉 작업과 작가와 함께 영상작업에서 대화과정에 참여한 육근병 작가의 드로잉 작업은 원작과 에디션 방식 등을 통해 선택적으로 관객들이 소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2023년 2월5일까지 계속된다.
기획의도
록뮤지션이 반려묘와 함께 지내며 삶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일기 쓰듯 기록해 온 작업들이 이번 전시에서 왜 과학과 철학의 언어로 읽혀질 필요가 있는가의 문제는 의문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티스트 이성수의 작업 속에는 매일 반려묘를 바라보는 가운데 느끼게 된 세밀한 감각과 정서만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산다는 것,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이 밑받침되어 있다는 점은 이성수의 작업과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성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이번 전시가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게 된 것은 살아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을 상호작용과 관계로부터 찾아가고 있는 아티스트와 과학자의 태도에서 차이점과 공유점을 서로 비교하면서 이를 토대로 하여 전시를 진행하기 위함이며, 결과적으로 이 전시 공간 자체가 관객과의 상호작용하는 장소가 되고 전시 현장에서의 관계 속에서 발생될 수 있는 여러 사건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성수 작가를 최초로 발견하고 발굴해낸 이는 다름아닌 육근병 작가이다. 육근병 작가는 이성수 작가의 영상물에 출연함으로써 이성수 작가에 대한 관찰자로 관계하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게 되는데 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어떤 방식으로 이성수의 고양이의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시사하는 지점이 되고 있다.
사람의 소리는 냄새를 풍기나, 조형의 메시지는 사람을 살게 하는 코드이다.
또 하나의 숨어 있는 코드, 그의 숨 소리가 들리며... 보인다.
2022.12.10. 아티스트 육근병
작가소개
이성수는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의 리더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해 오고 있다. 이성수의 독보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과 기타를 기반으로 하는 해리빅버튼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콘서트투어 등을 통해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하드록밴드이다.
그는 뮤지션이자 동시에 과거 영국과 한국에서 그래픽디자이너 및 아트디렉터로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때로는 기획자로 때로는 액티비스트로 활동하기도 한다.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예술활동을 해 온 이성수는 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위기에 처한 공연장을 살리기 위한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라는 캠페인을 기획하여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고모락(고양이를 모시는 락커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길고양이 보호에도 앞장서기도 하는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아티스트이다.
작가약력
현,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 리더 및 레이블 하드보일드뮤직 대표
고려대학교경제학과졸업
UAL(University of Arts London) Digital Media, Sound & Music Design Technologies 수료
Central Saint Martin Hand drawn animation 수료
1988-1994 밴드 Deaden의기타리스트로활동
1994-1998 밴드크래쉬(Crash), 스푼(sPoON)의기타리스트로활동
2000-2003 영국 TWI/IMG 그래픽디자이너로활동
2004-2007 아트디렉터및 IT 기획자로활동
2011-현재 밴드 해리빅버튼 리더이자 레이블 하드보일드뮤직 대표
[주요활동]
1985-1994 다수의공연활동
1995 크래쉬정규 2집<To be or not to be>참여
1997 크래쉬정규 3집<Experimental state of fear>발매
1997 컴필레이션앨범<Am I Metallica>참여
1998 스푼 1집<Wake Up>발매
1998-99영화<질주>, <닥터 K> OST 참여
2000 단편영화<Fish & Chips>테마음악작곡
2012 해리빅버튼정규 1집<King’s Life>발매
2015 해리빅버튼EP <Perfect Strom>발매
2017 해리빅버튼정규 2집<Man of Spirit>발매
2017-2019 러시아투어및단독공연
2019 대만아이언로즈페스티벌참가
2020 해리빅버튼정규 3집시즌 1 <Dirty Harry>발매
2021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캠페인기획
2022 독일콘서트투어
2022 이성수솔로앨범<Only Lovers Left Alive>발매
작가노트: 이성수 작가
“고양이 꾸미와 집사 이성수의 코로나 팬데믹 생존기”
팬데믹과 셧다운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예정되어 있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뮤지션이자 공연예술가인 나의 일상은 순식간에 일시 정지상태가 되어 버렸다. 음악이 멈추고 조명은 꺼졌다. 무대에서 만나던 관객들 그리고 동료들과도 이별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막이 내려져버렸다. 미처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기약도없이.
독 안에 든 쥐
칩거 생활이 하루하루 늘어날수록 무기력과 불안감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도돌이표처럼 똑같은 하루의 반복 속에서, 신곡 작업에 집중하자던 애초의 파이팅도 어느새 시들해졌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동거묘 꾸미는 그 어느 때보다 호시절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독 안에 든 집사와 고양이
내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지던 무렵, 극성스럽게 나를 깨우는 꾸미의 눈망울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공간에서 살아온 고양이가 어째서 매일 아침이 저리도 반가운지 그리고 어떻게 매 순간을 저토록 큰 기대와 놀라움을 가지고 맞이할 수 있는지. 하늘, 아니 지붕아래 뭐 그리 새로운 것이 있다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새롭다
내 궁금증은 꾸미를 온종일 지켜보고 또 꾸미처럼 보고 느끼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좁은 창틀 속의 하늘은 넷플릭스보다 더 자주 업데이트가 되었고, 끝없이 꽃이 피고지는 작은 화분 속의 장미 나무는 마법의 숲이었다. 꾸미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고 사라져버린 레이디버그의 미스터리는 또 어떻고. 매일 매 순간이 새롭고 놀라운 경험으로 가득했다.
닳지않는마음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웠던 것은 꾸미의 좀처럼 닳지 않는 마음이었는데, 나는 그 닳지 않는 마음이 몹시 부러웠고 또 슬그머니 부끄러워졌다.
뭉뚝해진 채쳐 박혀있던 연필 한 자루를 찾아낸 나는 사각사각 그 끝을 다듬은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일 새롭게 찾아올 순간들을 온전히 맞이하기 위해, 닳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이 우리 인생의 첫 번째 날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1월1일부터 매일 아침 한 장씩 그린 그림들이 어느새 천장을 훌쩍 넘어간다. 지난 3년 동안 꾸미는 나에게 좋은 친구였고 변화무쌍한 풍경이자 흥미진진한 관찰 대상이기도 했다. 바라건대, 나 역시 꾸미에게 좋은 친구이자 충실한 집사였기를. 그리고 지루한 관찰대상이 아니었기를.
전시서문: 이승훈 | 미술비평
타자를 바라본다는 것, 또는 그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관계가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이번 전시는 이성수 작가와 그의 반려묘 ‘꾸미’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뮤지션이자 공연예술가로서 살아왔던 작가의 삶에서 관객과의 만남, 동료들과의 만남 등은 단절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 되면서 작가는 혼란스러움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 외부 생활을 유지하게 해 주었던 관계가 무너져 내리고 집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게 되자 집에서 반려묘를 바라보는 시간은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십여 년 이상 같이 살아왔는데도 반려묘 ‘꾸미’는 한결같이 자신을 반겨주고 있었고 그것은 매일마다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성수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이렇게 반겨주는 반려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어떻게 ‘꾸미’가 그렇게 매일 반갑게 자신을 맞이할 수 있는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많은 여가 시간이 생기게 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꾸미’가 자신을 바라봐 왔던 것처럼 자신이 반려묘 ‘꾸미’를 오랜 시간 바라보게 되면서 이 궁금증은 곧 풀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냥 지나치며 보는 것이 아니라 ‘꾸미’를 주목하며 오랫동안 바라보게 되자 작가가 그의 작가노트에 기록해 둔 것처럼 반려묘를 바라보는 동안 “창틀 속의 하늘은 넷플릭스보다 더 자주 업데이트가 되었고, 끝없이 꽃이 피고지는 작은 화분 속의 장미 나무는 마법의 숲이었다.”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무엇인가 내면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반려묘를 단지 주목하여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을 뿐임에도 작가의 삶 전체는 매일 매 순간이 새롭고 놀라운 경험으로 바뀌게 되었고 결국 작가는 이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글로 기록하게 되었던 것이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특별한 행위가 된 바라봄이라는 사건은 작가에게는 자신과 반려묘라는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고 다시 바라보도록 만드는 동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간 공동체에 불어 닥친 팬데믹이라는 사건과 그로부터 기인한 작가 개인의 삶과 인간 관계에서의 커다란 변화, 그리고 결과적으로 반려묘와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으로부터 그의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지만 그의 작업과 그가 경험한 사건의 중심에는 인간이 하나의 존재로서 타자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역설적으로 그 무너져 버린 그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의미였는가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갖는 경험을 중층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에게는 이 이중적 경험이 존재로서 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작가에게는 평소 존재했던 주변 사람들이 부재한 바로 그 시점과 바로 그 지점에서 반려묘 ‘꾸미’를 하나의 존재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인식하는 주체인 자신이 존재와 존재로서 서로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인식하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다른 모든 것보다 이 경험만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방식이 변화 되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인식하게 된 것들과 그 내용까지 바꿔 놓을 수 있음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작가가 이번 전시를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연결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경험한 이중적 경험, 즉 바라봄과 만남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사건이 갖는 의미를 한 차원 더 확장시키거나 부각시키기 위한 수사법적 변환일 수 있다고 본다. 혹은 양자역학에서 관찰자 효과에 따라 파동이 입자로 관찰될 수 있는 것처럼 중첩된 영역, 즉 죽음과 생명, 부재와 존재가 이중적으로 관찰되는 지점에서 드러나게 되는 질적 변환을 실제로 일종의 관찰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작업을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 직설적 표현일 수도 있다. 그 외에 전시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사건, 환경, 상황, 그리고 주체와 대상 사이를 여러 차원의 겹으로 중첩시킴으로써 ‘관계’ 그리고 ‘존재’라는 것의 의미를 확장적으로 환기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가 그려낸 작업들을 다시 살펴보면 이성수 작가에게 있어서 바라본다는 것, 관찰한다는 것, 주목하며 지켜본다는 것은 단지 시선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생각,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반려묘 ‘꾸미’와 작가 이성수는 서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이 호흡하고, 같이 느끼는 일을 해왔다는 것을 작가가 그려낸 그림과 작업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특히 설치 작업이 있는 전시 공간에서는 작가가 기타소리로 만들어낸 심장 박동이 들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반려묘 꾸미의 심장 소리이자 작가 이성수의 심장 소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읽혀진다. 아마도 작가에게는 시선을 통해 주체와 타자가 연결된다는 것은 감각 기관과 신경세포가 연결된 것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결국 타자이며 다른 개체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사실상 뇌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심장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어서, 결국은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마치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울려오는 것 같은 심장 박동이 울리는 소리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고 이 심장(Heart) 소리가 꾸미와의 만남에 대한 상징이 되고 파동이 되어 영원히 남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파동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되고 누군가와 만남으로 인해 누군가와 관계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다시 사건이 되고 존재가 되어 새로운 심장 소리와 같은 또 다른 파동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영상작업에서 볼 수 있는 작가 이성수와 작가 육근병의 만남 역시 그러한 사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육근병의 시선이 이성수의 파동을 발견하고 관찰하고 알아보게 된 이 사건을 영상작업으로 만든 작가는 이 자체가 다시 새로운 파동이 되어서 이 사건을 발견해낼 관객들을 향해 퍼져가게 되리라고 보았던 것 같다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비로소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고 말한다. 레비나스의 사유방식에 의하면 주체가 타자를 본다는 것, 만난다는 것은 타자의 얼굴을 보는 행위이며 ‘나’를 통해서가 아닌 ‘너’를 통해 진정한 주체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레비나스에 있어서 타자는 자아에 통합시킬 수 없는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이며 절대적인 타자성을 갖는다. 그에게 있어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인 존재가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그대로의 상태로 존재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름을 근거로 한 존재자들 사이의 간극, 즉 그 다름의 관계가 바로 그 존재를 확인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랑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것을 초월하여 서로 관계하고 연결되며 그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 이성수는 반려묘 ‘꾸미’와의 관계에서 이러한 지점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그로부터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하는 가운데 관객과 만나오면서 만남이라는 사건의 의미와 그 사건이 전해주는 에너지가 어떠한 것인지 이미 경험해 왔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꾸미’라는 존재로 인해 작가가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던 것은 그 에너지가 가져온 변화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명확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파동은 관찰자에 의해 발견될 때 입자가 된다고 하지만 레비나스는 인식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다시 말해 인식 대상을 감지하게 되었을 때 그것의 반향으로, 즉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인식 주체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와 존재가 마주치게 되고 그럼에도 서로 바라보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수많은 비밀과 의미가 간직되어있는 거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성수 작가는 이와 같은 사건들을 그저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사건의 이면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강력한 에너지를 담아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자신과 다른 타자와 또 다른 새로운 관계들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온 우주를 향해 파동을 일으키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