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너머_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
2023.3.16 – 6.4 *연장
성곡미술관
성곡미술관, 원계홍(元桂泓, 1923–1980) 탄생 100주년 기념전 개최
성곡미술관은 올해로 원계홍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원계홍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나 흐릿하게 지워져 가는 그의 업적들을 다시 복원하여 알리기 위한 《그 너머_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개최한다. 1940년대 초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로 건너간 원계홍은 경제학보다는 미술이 좋아 사설 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아틀리에에 홀로 파묻혀 그림을 그리고, 일본에서 보고 배운 세잔, 클레, 칸딘스키 같은 작가들의 미술이론 등 서양의 현대미술론을 스스로 파고들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일구기 위한 고독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원계홍은 마침내 1978년 11월 공간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이어서 화가로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인 1979년 공간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열었고, 1980년 제3회 중앙미술대전에 초대작가로 작품을 출품했다. 이후 원계홍은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해 12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원계홍의 나이 고작 57세 되던 해이다. 그의 안타까운 타계 이후 1984년 6월 서울의 공창화랑에서 원계홍 유작전이, 1989년 7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원계홍 회고전이, 이어서 1990년 12월 공간 화랑에서 유작전이 열렸으며, 이어서 오늘 성곡미술관에서 그의 전작을 아우르는 회고전을 연다.
원계홍 화백의 작품은 주로 1970년대에 작업한 10호 내외의 유화이다. 이 작품들은 골목 풍경과 정물화가 주를 이루며, 나머지는 인물화와 추상화, 그리고 드로잉 등이다. 그중에서도 1970년대 말 작업한 ‘골목 풍경 연작’은 한국의 경제개발 이전 서울 변두리의 뒷골목을 단순하고 명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때 텅 빈 골목길은 사실 묘사에 충실하기보다는 원계홍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세잔의 풍경화처럼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과 명료하고 순도 높은 색채로 담아내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다가서 보면, 그의 전 작품에 스며들어 있는 회색 조와 머뭇거리는 붓 자국들은 아직 무엇인가 더 그려야 할지, 아니면 그만 멈추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미완성인양 캔버스 전체를 배회한다. 이러한 원계홍의 의도적 배회가 세잔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바로 원계홍 회화의 고유성일 것이리라.
그것은 순수하고 우직하게 창작에만 몰두했던 한국의 초기 서양화가들처럼 원계홍 역시 오직 예술을 위한 예술에만 매진했던 데서 오는 예술혼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 모더니즘 미술은 그 태동기에 새로운 문물인 서양화를 만나며 재료와 기법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과 관심을 보였지만,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은 작가의 예술적 역량과 열정을 일깨우는 것으로 끝나고, 결국 어떤 사조에도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들의 고유성을 창조해냈다.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0도(롤랑 바르트)’, 혹은 탈 신화화한 미술 덕분에 우리가 본래 알고 있던, 혹은 잃어버린 예술의 본질이 원계홍의 캔버스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덕분에 우리가 원계홍의 회화를 대면하며 어떤 특정 사조나 시대와 정치, 혹은 선전이나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진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현대미술의 사라짐의 위기에서 그의 예술은 결코 그러한 잡다한 시대적 상황들에 종속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원계홍 화백을 이렇게 다시 마주할 수 있게 해준 공로는 역시 일찌감치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깊은 공감력을 가졌던 두 분의 소장가 김태섭과 윤영주에게 돌려야 할 것 같다. 미술 애호가였던 두 분은 탁월한 안목으로 일찍이 원계홍 작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작품들을 수집하고, 소장함으로써 이름 없이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뻔했던 작가와 작품을 보호했다. 어떤 작품을 가치 있는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은 작가의 수준 높은 창작 활동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작품의 예술성을 평가하고 인정함으로써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주는 소장가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 어떤 사심도 없던 미술계의 기인이자 외골수였던 원계홍은 이 두 예술 애호가의 관심 덕분에 다시 세상에 나와 빛을 발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못다 핀 작가의 작품을 보듬은 소장가의 마음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길 바라며, 이 두 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 전시 개요
· 전 시 명 : 《그 너머_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
· 주 최 : 성곡미술문화재단, 원계홍 기념사업회
· 주 관 : 성곡미술관
· 기 획 : 성곡미술관
· 전시기간 : 2023년 3월 16일(목) ~ 5월 21일(일)
· 전시장소 : 성곡미술관 1관 전관
· 전시작품 : 회화 100여 점과 아카이브
◆ 전시 연계 프로그램
1
윤해원 첼로 연주회
바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2023.3.16. (Thu)
5pm, 성곡미술관
2
김현숙 한국현대미술사학자 특별 강연
«잊혀진 화가, 원계홍의 발견»
2023.4.8. (Sat)
2pm, 성곡미술관
3
첼로 연주회
2023.4.15. (Sat)
2pm, 성곡미술관
4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특임연구관 특별 강연
«한국 근대 컬렉터와 컬렉션의 문화사»
2023.4.22. (Sat)
2pm, 성곡미술관
5
첼로 연주회
2023.5,13. (Sat)
2pm, 성곡미술관
◆ 작가연보
원계홍
1923. 10. 출생
19XX. 배재고보 졸업
1942. 일본 동경대 경제학과 입학 (중퇴)
1944. 일본에서 귀국, 2년간 폐결핵으로 인한 투병 생활
1948. 이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민현식과 결혼
1950년대 후반 낙원동 김순배의 집에서 이경성과 만남
1978. 12. 제1회 개인전 개최 (공간화랑, 1978. 12. 11. ~ 12. 17.)
1979. 10. 제2회 개인전 개최 (공간화랑, 1979. 10. 17. ~ 10. 23.)
1980. 제3회 중앙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선정 및 출품
1980. 12. 미국으로 떠남
1980. 12. 미국으로 떠난 지 20일 만에 심장마비로 타계(향년 57세)
1984. 6. 첫 유작전 개최 (공창화랑, 1984. 6. 21. ~ 6. 27.)
1989. 7. 제2회 유작전 개최 (국립현대미술관. 1989. 7. 6. ~ 7. 25.)
1990. 12. 제3회 유작전(10주기 회고전) 개최 (공간화랑, 1990. 12. 3. ~ 12. 9.)
수색역, 1979, 캔버스에 유채, 45.5×53.2cm, 개인 소장
골목(까치집), 1979, 캔버스에 유채, 45×53cm, 개인 소장
설악산, 1978, 캔버스에 유채, 37 x 47 cm
산동네, 1979, 캔버스에 유채, 43×51cm, 개인 소장
기와지붕(구름), 1978, 캔버스에 유채, 53 x 45.5 cm
꽃(튤립), 1978, 캔버스에 유채, 32.8×23.3cm,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