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물러선 대지 The land of standing aside
작가 이영희
전시기간 2023. 03. 21(화) – 06. 20(화)
비평글 이선영
사진 배진환
전시장소 대안공간 NAH 설악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27-17)
주최/주관/진행 NAH 작가회의
후원 바움아트스페이스, 한림유화㈜, 여원㈜
물러선 대지 The land of standing aside
이영희 Lee Young Hee
물러선 대지 The land of standing aside, youngheelee, 2023, mixed media, installation , R1_2
모태의 양면성과 생명
이선영(미술평론가)
[자연(Nature) 예술(Art) 사람(Human) 설악산 현대미술 프로젝트 2023 : 재탄생 설악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전시는 작가 12명이 각각의 공간을 정해서 열린 개인전의 성격을 가진다. 모텔처럼 공간이 칸칸이 나뉜 건물은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전시 장소로 적합하다. 연결은 단절을 전제하고, 이는 개인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건물의 여러 곳 중에서도 낡음의 기운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반지하 공간을 선택했다. 작가는 10년 넘게 굳게 닫혀 있었을 반지하의 창문을 열자 쏟아진 먼지에서 그 공간의 숨통을 틔워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일은 꽁꽁 포장해 놓았던 자신의 작품에서도 일어났다. 작업은 삶에 포함된 죽음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한다. 하지만 심연으로의 가라앉음의 비상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물러선 대지 The land of standing aside, youngheelee, 2023, mixed media, installation , R1
땅/살은 부풀어오름과 찢어짐 사이에 생명의 씨앗을 품는다. 씨앗들은 생태적 조건을 따라서 위아래로 줄기를 뻗는다. 이영희는 유사 이래, 의미심장한 상징이었던 땅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든다. 작품들은 재현적으로 구성되는 평면이기보다는 야생의 대지같은 면모를 띈다. 평면 형식의 작품들은 생성의 장이며, 설치작품을 통해 프레임 바깥으로 나온다. 대지는 생명을 낳고 보살피는 여성의 노동을 상징하는 단편들이다. 단편들은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동질이상(同質異像)의 형태 때문에 분리와 융합을 거듭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 자체로도 물활론적인 대상으로 나타난다. 생명의 모태를 연상시키는 대지들은 신비하면서도 기괴하다. 모태는 삶과 죽음 양극단을 뫼비우스 띠처럼 활주한다. 이영희의 작품 속 자연-대지-몸-식물성이라는 연결망은 여성적 상징과 밀접하다. 특히 이번 전시와 관련돼서는 ‘더러움’이라는 속성이 가지는 이중성을 파고든다. 프레임 바깥으로 부풀어 오르는 듯한 대지의 형태는 한도를 넘어선 욕망 즉 탐욕스러운 육체가 향하는 몸 또한 떠올린다. 하지만 더러움은 생명의 조건이며, 크리스테바가 말하듯이 아름다움과 죽음의 결합이야말로 글쓰기의 조건이다. 주체는 지배적 질서인 상징계에 속하기 위해 어머니로부터 분리를 강제당한다.
물러선 대지 The land of standing aside, youngheelee, 2023, mixed media, installation , R2
물러선 대지 The land of standing aside, youngheelee, 2023, mixed media, installation , R1_Detail
무엇인가 흙화(化) 됨은 죽음과 생명이 연결을 알리는 지점이다. ‘순수가 오염됨’(메리 더글러스, 줄리아 크리스테바)으로서 생겨나는 불경함과 신성함은 자율적 주체의 반대편에 자리한 모성적 존재의 특성이다.
이영희에게 이번 전시작품에서도 선명한 경계의 침식은 모성의 특징을 나타낸다. 작가는 보이지 않게 서서히 진행되는 자연의 움직임으로 극적으로 표현한다. 대지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상징, 요컨대 안정감 있는 삶의 터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지는 들쑤셔지며, 생명의 힘에 의해 들썩거리고 입자는 부스러지거나 다시 뭉쳐지는 중이다. 그러나 ‘대지’가 생명을 품고 있는 모태라는 점은 연속적이다. 이영희는 작품 또한 이러한 자연의 양태와 중첩시킨다. 이영희에게 생명은 삶 뿐 아니라 죽음까지 포함한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사라짐에 대한 담담한 애도’이기도 하다. 존재가 아닌 과정인 주체는 자명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 그것은 예술이 단순한 현실 반영이 아님과도 같다.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는 어두운 방의 이미지, 즉 어둡고 축축한 반지하 공간은 마치 무의식으로 하강하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반지하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다는 작가에게 오랫동안 굳게 닫힌 문을 여는 행위는 작품의 시작이자 자아 탐사의 시작이다. 자신은 출발이 아니라 목적이다. 결정되지 않은 과정은 실험을 요구한다. 실험은 무균의 실험실같은 화이트 큐브만이 아니라 자연에서도 일어난다. 그러한 실험은 이번 전시 공간처럼 야생화되는 과도적 공간에서 더욱 활발하게 펼쳐진다.
물러선 대지 The land of standing aside, youngheelee, 2023, mixed media, installation , R2_Detail
■작가 소개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영희는 1987년부터 여러 단체전(48회)에 참여하고, 개인전(16회)을 열었다.
2023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 2019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_안양문화예술재단, 2018년 제20회 단원미술제_안산문화예술재단, 2014년 Line up Artists in Anyang_김중업박물관, 안양문화예술재단, 1998년 죽산국제예술제_야외무대 주변 설치, 1994 제3회 종이미술전 은상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선정되었고, 여섯 개의 점 여섯 개의 섬 2점이 김중업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판물로는, 2017년 251_Ellipsis (ISBN 979-11-87835-01-1), 2014, 393_Ellipsis (ISBN 978-89-966011-3-5), 2014, Line up Artists in Anyang (ISBN 979-11-953148-0-5), 2012, 틈 Crack : 12 (ISBN 978-89-966011-2-8), 2011, Lee Younghee, 마스터 카탈로그 (ISBN 978996601111 03600)가 있다.
이영희
서울교육대학(1980), 덕성여자대학교(응용미술 1984), 서울대학교사범대학원(미술교육수료 1988), 세종대학교대학원(미술학석사 2000), 명지대학교대학원(아동학박사 2017)
Hi5younghee@gmail.com
■공간 소개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대안공간 NAH 설악
설악산 입구, 속초시 설악동 27-17에 위치한 폐모텔 옛 ‘하늘공원’이 예술을 품는 살아있는 공간, 예술가와 관객의 놀이의 장이 되고자 ‘대안공간 NAH 설악’의 이름으로 2023년 3월 새롭게 태어났다. 개관전으로 ‘자연(Nature), 예술(Art), 사람(Human) 설악산 현대미술 프로젝트 2023’_재탄생 설악의 봄은12명의 작가 (강승주, 김혜성, 다나박, 박용일, 아령, 이성구, 이영희, 이해성, 임미라, 장은주, 정규리, 정문경, NAH공동작업)가 각각의 방을 정하여 설치 예술 방식의 개인전 형식으로 전시(2023.3.21-6.20) 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작품 안에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시도 하고자 한다. 또한 모텔에서 사용되었던 물품들을 재활용하여 버려진 것, 죽어 있던 공간들을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다. 대안공간 NAH 설악 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주된 주제로 다양한 예술표현의 방식 등을 통해 현대 예술의 대안을 모색하고 사람과 사람이 예술로 소통되는 공간으로 꾸준히 확장 되는 다채로운 변신을 거듭해 나가고자 한다.
대안공간 NAH 설악│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27-17 │대표 이호영 010-6228-7037 │artlee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