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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진 전: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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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진의 <평원>

박기진은 여행이나 체류의 경험을 문화적, 지리적, 인류학적 가상 스토리로 구성해서 그 풍경을 시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태평양상의 마리아나 해연과 카이코라, 갈라파고스를 배경으로 <카이코라 빠져들기>, <향유고래와의 유영>을 시작으로 탕기니카와 말라위에 관한 <발견>, <말라위>시리즈를 작업해 왔다. 근래에는 DMZ에서 근무했던 시절의 일기와 베를린에 머물며 조사했던 독일의 분단과 통일 그 이후의 소통, 그리고 남극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시 공간이 교차하는 이야기 <통로>, <만감>, <진동>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레드밀 갤러리(버몬트, 미국), 공간화랑(서울), 퀸스틀러 하우스 베타니엔(베를린, 독일)등에서 1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파워 하우스 뮤지엄(시드니, 호주)등에서 많은 기획전에 참여했다. 고양 레지던시와 난지 스튜디오, 버몬트 스튜디오 센타(미국), 인스티튜토 사카타(브라질), 퀸스틀러 하우스 베타니엔(독일)에서 작업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평원>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결합하여 구성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공간과 존재, 기억에 관한 연구이다. <통로>, <만감>, <진동>시리즈에서 연결되지만 다른 시점으로 전개된다. 영상과 소리 그리고 움직임이 있는 관객이 감각할 수 있는 조각과 영상 회화 등 5점의 신작이 설치된다.   

<평원>은 더 소소(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172-1 4-5층)에서 2023년 8월 18일~9월 15일까지 전시된다. 







작업노트

나는 포병 관측장교로 DMZ에서 근무했었다. 내가 매일 보았던 철책의 내부에 수목과 능선, 구릉과 개울이 미묘한 감동과 슬픔을 주었던 기억이 가지고 있었다. 이 느낌이 너무나 생소해서 나중에 언젠간 작업으로 풀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곳의 관한 기억을 존재와 시간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손바닥에 땀이 날 만큼 두려움과 숨이 먿을 것 같은 적막함과 요동치는 이 동시에 떠오르는 마치, 초겨울에 시작되는 북서풍을 맞는 것, 폭풍이 치는 바닷가에서의 파도 소리, 폭풍전의 고요함, 눈이 내릴 때의 아늑함이 동시에 몰려오는 미묘한 감정이 느꼈다. 이것은 연애 시작의 설렘과 실연의 아픔을 동시에 느껴지는 것과 같은 상반되는 다중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지는 특이한 형태의 감정이다. 작업을 해가면 해갈수록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이제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비무장 지대에서의 느낌은 너무나 경이롭고, 무거우며,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오랫동안 감히 표현이나 해석하지 못하고 있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독일의 통일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가 되었다. 냉전과 분단의 흔적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2015년 베를린에서 머물며 여러 가지를 관찰했다. 베를린은 분단의 단절과 통일의 소통 그리고 통합과 치유의 과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 간다라기보단 늘 사건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 이였다. 지금도 분단의 상흔과 통일의 흥분 이 도시의 곳곳에 현존하고 치유 과정이 묻어난다. 중장년층의 사람들에게도 여지없이 이 세 가지의 냄새가 동시에 난다. 그러나 세대를 거침에 따라 그 냄새는 희미해져 간다. 사건이나 상황이 깨끗하게 다음 국면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도 함께 전개되고 있는 현실을 느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 

남극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남극에서 여러 가지 생소한 풍경들은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그 중에서 '빙하 코어' 연구는 내게 상당한 생각의 시간을 안겨 주었다. 빙하 코어는 드릴을 이용해 빙하를 뚫어 나온 원기둥 모양의 얼음 덩어리 이다. 코어 자체도 경이롭지만 빙하코어를 발굴하기 위해 생긴 구멍은 내게 더 큰 감동의 지점을 주었다. 이 구멍은 공룡이 살고 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류의 출현이 후의 시공간과 현제가 켜켜이 쌓여서 맞닿아 있다. 구멍을 통해 올라오는 공기는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공된 구멍은 과거의 시간으로 연결된 통로 즉 타임머신 인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블랙홀이 공간의 밀도를 구분하는 것처럼 시공간을 넘나드는 특별한 사물 인 것이다. 줄 베른의 땅속 여행처럼 얼어붙은 남극의 빙원을 뚫어 과거를 여행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작가 박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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