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 명 : 최남진 조각전 The 4th Sculpture Solo Exhibition By CHOI NAM JIN
- 참여작가 : 최남진 (崔南鎭)
- 기 간 : 2023년 8월29일 - 9월16일
- 장 소 : 김세중미술관 제1, 2전시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70길 35)
- 관람시간 : 화~일요일, 11: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 관 람 료 : 무료
작가소개
조각가 최남진(崔南鎭)은 1946년 전라남도 광주 출생하였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1966-73)와 동 대학원(1973-77)을 졸업했다.
1968년 대학 재학 시절 ‘국전’에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조각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6년과 1981년 국전 조각 비구상 부문에서 특선 2회 수상, 입선 7회 그리고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을 수상했다. 198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다수의 국내외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여했고, 한국미술협회, 서울조각회, 성남조각회 등의 회원으로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30여 년간 동서울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코라, 또는 형태를 품은 열린 공간
-최남진의 조각
서길헌 | 미술비평, 조형예술학박사
조각가로서 최남진이 초기부터 추구하던 생명을 포용한 형태에 관한 탐구는 ‘삶을 위한 기도’라는 기독교적인 영성을 담은 작업으로 이어지다가 이후에도 최근까지 생명과 영성의 관계성을 깊이 있게 성찰한 ‘비전’ 작업 등 인간의 존재형식에 대한 내적 주제로 일관되게 점철되어 나타난다. 생명성을 반영하는 그의 이러한 작업은 안과 밖의 공간이 곡면을 통해 만나는 공간에 대한 추구로 형태화된다. 그러한 투조(透彫) 공간은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씨의 병처럼 바깥의 공간이 곧 안으로 이어지고 안의 형태가 외부로 흐르는 연속적 관계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밖의 공간을 안으로 품고 있는 형태는 객체이자 자연으로서의 영성이 내부로 들어와 주체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존재형식으로서 생명 형태학적 외적 공간뿐만 아니라 유려하고 열린 내적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기도는 현실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외부’와의 만남이다. 이러한 자세는 그의 초기 조각작업에서부터 위로 상승하거나 자라나는 형태로 등장하여 이후 안과 밖이 내부의 형태와 외부의 형태로써 맞물려 만나는 잠재적인 ‘비전(vision)’의 공간으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가 추구해온 이러한 존재형식은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성장태인 생명형태를 갖춘 형태의 ‘반형태(反形態)’ 또는 형태를 내포한 형태의 집이자 형태의 모태공간이다. 무한의 형태가 잠재적으로 잉태하는 이러한 공간은 형태의 매트릭스(matrix)이자 코라(khora, chora)의 공간이며 그가 추구해온 주제를 특징적으로 반영하는 영성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최남진의 조각작업은 형태와 공간이 전개하는 개념의 추이별로 크게 세 시기로 나뉘어 펼쳐진다. 그것은, 생명이 발아하고, 심화한 다음, 이어서 열린 형태로 확산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작가로서의 생애를 시간의 순서를 따라가며 구체적으로 나누어 구분하면, 먼저 ‘생명-의식’의 발아기(수업기~80년대)로부터, ‘생명-형태’의 심화기(90년대~2000년대)를 거쳐, ‘생명-공간’의 확산기(2000년대 이후~최근)로 이어진다.
그의 작업에서 초기의 수업기부터 ‘생명성’에 대한 모색으로 시작된 형태의 변화는, 우선 생명-형태를 배태해낸 뒤에, 그것이 형태의 긴장을 이루며 성장하고, 이어서 형태-공간의 증식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영성의 공간과 만난다. 그러한 공간은 그의 조각에서 형태를 ‘품은’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말하는 ‘비전’(vision)의 공간을 구축한다. 비전은 꿈이나 희망이 시각화되어 앞서 내다보이는 잠재적 형태로서 구원의 약속처럼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실현될 미래의 가능성으로 비어있는 영역이다. 비어있음(void)은 ‘없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것의 환영이나 여백으로서의 ‘있음’이다. 비어있는 공간은 ‘비전’의 공간이자 그의 조각이 투명하게 품고 있는 영성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형태에 대한 순수조형적 추구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살아온 작가의 종교적 염원이 내재하여 있다.
최남진의 조각에서 비어있는 공간은 이처럼 비전으로서의 형태를 ‘품은’ 동시에 ‘품는’ 공간이다. ‘품은’ 공간은 완료된 형태로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이미 설정된 형태의 공간이고, ‘품는’ 공간은 현재형의 형태로서 작가의 의지에 부가하여 발생하는 ‘가상’ 공간이다. 그가 틔워놓은 빈 가상 공간은 시간상으로 현재를 이루는 형태뿐만 아니라 거기에 연이어 파생되는 미래의 가능성으로서의 잠재적 형태까지를 아우른다. 따라서 그러한 공간은 의도된 가시적 형태를 ‘품은’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비가시적 형태까지를 ‘품는’ 공간이다. 모종의 완결된 형태를 품은 이미 결정된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현재형으로서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재와 미래를 품는 ‘열린’ 공간으로서 언제나 비어있다. 열린 공간은 문을 통해 밖의 공기를 불러들이듯이 바깥의 요소를 안으로 끌어들인다.
외부로부터 오는 객체적 요소는 내부공간이 준비한 주체적 공간과 만나 더 폭넓은 공간을 포함하는 미지의 이미지로 불어난다. 확산하는 미지의 잠재적 공간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공간 이상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최남진이 추구해온 또 다른 형태-공간을 품고자 하는 매개공간의 요체로서, 그의 작업 초반기에 날렵하고 리드미컬한 곡선적 생명-형태의 구조를 통해 안과 밖의 공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선적 형태로 등장하여, 이후의 시기에 다시 유연하고 유기적인 둥근 체적으로 자라나는 생명체의 형태를 보이는 도조(ceramic sculpture)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직선과 곡선의 상호교착으로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그리고 지상에서 천상을 지향하는 형태로 심화하다가,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내부와 외부의 공간이 투명하게 개방된 투조 형태의 구조를 통해 ‘비전’을 담아내는 용기(容器)의 형상으로 탈바꿈하여 조형화되고 있다.
비전을 품어내는 용기로서의 공간은 곧 ‘코라(khora, chora)’와 같다. 코라는 내용물을 담기 위해 순수하게 비어있는 매개물이다. 그것은 자체로는 무색무취이며 무형의 그릇으로서 내용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오직 그것을 깨끗하게 담아내기 위해 준비된 ‘자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남진의 조각이 조성하는 비어있는 코라의 공간은 비전을 담아내기 위한 생성공간으로서의 모태의 곳간과 같다. 자신의 형용을 드러내거나 강요하지 않는 가장 순수한 형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근원적인 형태에 대한 그의 이러한 질문은 일찍이 그가 대학 시절 형태에 대한 조형적 문제의식을 담아 창작 노트에 적어놓은 ‘형태가 없는 형태’라는 글귀에서도 엿보이고 있는데, 그가 추구하는 이러한 순수형태는 결국 또 다른 형태를 받아들이고 품기 위한 ‘매개형태’로 귀결된다. 모태가 다른 생명을 품기에 최적의 형태를 갖추듯이 생명성으로서의 비전을 품는 형태는 자신의 형태가 최종목적이 아니라 ‘매개-틀’이자 ‘그릇’으로서의 ‘생명-형태학적(bio-morphological)’ 형태를 형성한다. 그러한 형태는 안과 밖, 멈춤과 움직임이 맞물려 관계하는 상호교착(chiasme)적 관계를 갖는 공간을 형성한다. 그 공간은 형태 내에서 내부와 외부,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의 이원적 요소가 서로 맞물리며 두 속성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뛰어넘는다.
이처럼 안과 밖이 맞물려 있는 그의 조각은 이원적 공간이 서로 얽히는(entrelacs) 동사적 형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특정의 형태를 완성함으로써 닫힌 공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이 맞물리는 가운데 끊임없이 열린 형태를 갖추어 가는 도정으로 ‘거기에’ 놓여 있다. 조각이 만드는 공간은 외부 공간의 틈입으로 절대 멈추지 않는 공간으로 바뀌어 간다. 내부공간의 보이지 않는 미지의 형태가 늘 변해가는 ‘형태 아닌 형태’, ‘형태가 없는 형태’의 초월적인 공간을 지향하는 형태로 가변적인 공간을 향해 열린 채 자리한다. 그러한 공간은 언제나 미래형으로 열려있기에 ‘비전’으로 채워지게 될 가능성이자 영성의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은 작가의 미적, 종교적 내면의 시선이 외면화하는 ‘삶을 위한 기도’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는 시간상으로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꼭 오고야 말 미래를 약속하는 구원의 공간으로서 그가 조각작업에서 꾸준하게 추구해온 열린 세계로서의 비전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이다.
조형적으로 그가 추구해온 생명-형태학적 형태는 독립된 형태 자체에 의해 스스로 고립되는 자연의 흐름에서 유리된 형태가 아니라 어떤 본질적 형태를 자연스럽게 따르기 위해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자발적이며 근원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생명을 생성하는 모태를 형성하며 그 생명태의 존재형식을 드높이기 위한 형태의 가변적 열림을 통해 영성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가진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업은 이원적 요소의 만남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공간, 서로 다른 구조의 두 형태가 만나 간섭하고 얽히는 상호교착(entrelacs)적 형태와 공간으로 구현된다. 그것은 직선적 구조와 곡선적 구조의 교차나, 부동의 무기물과 동적인 생명력을 가진 유기물의 융합 등과 같이 서로의 이질적 공간구성요소를 나누고 교착시켜 새로운 통합의 형태를 낳는다. 그러한 통합의 형태는 사각의 틀 속에서 둥근 형태가 자라나는 등의 방식으로 딱딱한 형태가 부드러운 형태를 받아들여 교착적 형태로 얽히거나, 예리한 선과 면이 리듬을 이루며 만나고 자라나는 무한형태가 형성하는 투조 공간 안에 투명한 존재를 해방하는 공간을 이루며 이를 통해 그가 탐색해온 생명성을 띠는 형태는 열린 공간으로 더욱 확산한다. 이로써 최남진이 추구해온 존재형식으로서의 생명성은 마침내 투명한 공간에 담기는 비가시적 형태를 품은 공간이자, 영성을 담는 비전의 공간에 열린 형태로 빛처럼 자리한다.
비전 - 사랑, Bronze, 45 x 25 x 65 cm, 2010
비전 - 존재 S, Aluminium Plate, 30x10x60cm, 2023
비전-존재S, stainless steel, 45x45x45cm, 2023
삶과 기도 - 고통, Ceramic, 40 x 25 x 50 cm, 2000
의식 - 혼돈 A, Bronze, 48 x 25 x 52 cm,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