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라는 세계
예술은 세상에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는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세상에 질문을 하는 자’이다.
본인이 경험하고 충돌하고 유기적으로 발생하는 감각을 그만의 조형 언어로 창작한다. 그렇기에 창작자는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place)와 공간(space)의 장(場)이다. 창작자가 펼쳐내는 장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각기 다른 장이 만나서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고, 또 다른 질문을 도출할지 보고자 한다.
전시 작가들은 '창작자'라는 주체로서 각자가 겪는 사건을 자기만의 특수한 조형 세계로 표현한다. 또한 '작가들이 지닌 예술관에서의 연결성'을 고려했다. '여성', '개인 서사', '스토리텔링'이라는 키워드에서, 작가와 그의 작업이 지닌 주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하였다. 이번 전시 세 명의 작가는 각자의 상황이 다르며, 기혼 여성, 기혼 여성이자 어머니, 미혼 여성이라는 개인적 삶의 패턴과 변수로서 '여성'과 '개인 서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였다.
전시 제목 ‘unfamiliar, monologue. room’은 ‘이질적인 독백의 방’ 이라는 의미로, 작가 세 명이 각자의 작업에서 단어를 꺼내고, 그 단어가 셋의 작업에 작용하는 지점을 관찰하며 도출된 제목이다. 여기서 ‘이질적이다’는 것은 충돌과 충동으로 인해 또 다른 생성의 의미와 연결된다. 또한 독백은 ‘혼자 하는 말, 대화’로서 누구의 시선과 반응에 영향 받지 않는 가장 솔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단어인 ‘방’은 앞의 이질적인 독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場)이다. 앞서 ’이질적인‘, ’독백‘이라는 키워드의 충돌과 섬세한 감각을 마주하며, 이것들을 담을 터전을 마련하고 싶었다. 들여다봐야 하기에 ’집‘보다 내밀하고 그 모습이 다를 수 있는 ’방‘. 또한 방은 문과 창문의 여닫음을 통해 연결과 차단이 유연한 공간이다.
또한 ‘unfamiliar, monologue. room’ 이란 단어 사이의 콤마와 마침표를 넣어,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면서, 다음 단어에 또 다른 시작과 전환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
unfamiliar
민경 Minkyung
“작업 시리즈 <unfamiliar>는 구성 사진의 맥락과 맞닿은 가운데, 조각 오브제와 인물, 공간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징조적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징조적 서사란 사적공간이 의미하는 일상성과 인물이 경험하는 감정적 드라마, 수행해야 하는 제스처가 부딪히며 창출된다.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기보다는 사소한 상태가 발생하는 순간,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찰나, 그러한 찰나들로 이어진 하루, 나에게 있어 사진 작업은 이러한 일상성이 드러나는 방과 같다.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작은 무대, 끊임없이 옮겨 다녀야 하는 직육면체 상자와 같은 시공간,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의 징조를 담은 장소를 상징한다.“ -민경
작가 민경은 개인의 내밀한 서사를 사진, 오브제, 아티스트 북, 내레이션(narration)으로 진행해 오고 있다. 그녀의 작업에서 주로 다루는 ‘종이’라는 매체는 얇고 섬세하지만, 한없이 날카로워 베이기 쉽고, 쌓였을 때 무엇보다 묵직하고 강인한 존재처럼 다가왔다. 가깝지만 타인인 그들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서사가 조각적 오브제로 표현됐을 때, 오브제를 본인이 연출하며 작업에 대한 내레이션을 읊조릴 때, 움직임으로 말을 할 때, 그녀의 작업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고 한 걸음 더 가늠해 볼 수 있다. 민경 작가의 작업은 그다음 무슨 말을 할지, 단어 하나와 문장 하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녀의 작업은 말을 시작해 마칠 때까지 기꺼이 듣고 싶게 만드는 유연하며 단단한 힘이 동시에 존재한다.
monologue
서정배 Seo Jeongbae
“회화를 통해 삶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불안과 우울, 외로움과 고독을 상징하는 상황을 인물들의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통해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하는 회화로 묘사한다. 이번 전시에는 2021년 여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이제야 완성한 회화와 키키의 관점과 함께 그린 드로잉 그리고 드로잉-애니메이션을 함께 전시한다. 키키, 그리고 ‘나’와 ‘나를’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아직은 밝히고 싶지 않은, 하지만 언젠가는 개인인 내가 불안과 우울,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이유에 관해 설명해야 할, 언어로 아직 정리할 수 없는 이미지(image)로 그려낸 ‘독백(monologue)’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정배
서정배 작가는 본인에게 “글은 드로잉과 같다.” 라고 표현하였는데,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이야기가 되었을 때 이것을 통틀어 드로잉’이라고 일컫는다.
그녀는 ‘키키(Kiki)’ 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작업에 등장시켜왔다. 작가는 “오랫동안 수첩에 일기를 써오며 1인칭 시점에서 3인칭으로 바꿨을 때, 예전의 일들에 대해 또 다른 시선에서 사건과 감정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작품 속 키키는 ‘작가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자 또 다른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지닌 내밀한 정서를 글부터 시작하여 회화, 설치, 애니메이션으로 찬찬히 그리고 진득하게 이어오고 있다. 서정배의 작업 기저에 은은하게 깔려 맴도는 우울은 깊고 매혹적인 호흡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room
황지현 Hwang Jihyun
황지현은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충돌과 향유의 순간’을 소재로 작업한다. 자연스럽게 감응하거나 이질적으로 충돌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회화, 드로잉, 벽화로 시각화한다. 이것은 스쳐 지나가기 쉬운 감각과 감정들을 마주하며 특수한 조형 세계를 구축해가는 과정이다. 붕괴되고 와해되는 집, 벽을 뚫고 뻗어나가는 식물과 인체, 자궁과 꽃의 혼합, 캔버스를 벗어나 벽으로 이어지는 길의 형상은 견고한 체제와 사회적 틀을 깨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황지현의 작업은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는 경험을 통해 삶을 인식하는 존재의 기록이며, 다각적 측면에서 바라본 여성상의 탐색이다.
민경과 서정배의 작업은 ‘멜랑콜리’, ‘우울’, ‘불안’, ‘슬픔’, ‘찰나의 기쁨’ 이란 단어로 연결된다. 두 작가의 삶의 경험과 조형적 표현은 매우 다를 것인데, 작업에서 뿜어내는 정서의 결은 통하는 지점이 있다. 여기에 황지현의 작업은 우울과 불안의 정서가 바로 읽히지는 않지만, 화려한 색과 소재들로 슬픔과 불안을 가리고 장식하며 본인의 결핍을 승화하고 극복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돼 있다.
세 명의 작업은 저마다의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다가오는 사건과 상처에 흔들리고 찢기기도 하며, 강렬하게 때론 묵묵하게 끊이지 않는 노래를 들려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unfamiliar, monologue. room>은 개인 주체로서 빛을 발하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창작자가 지닌 세계의 현현(顯顯)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다층적인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2023년, 그녀(들)을 바라보며
황 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