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23-09-01 ~ 2023-09-23
심홍 이소영
무료
010-3766-8280
- 제목; 심홍 이소영의 <오묘한 수묵 애니메이션전>
- 기간; 2023.9.1 ~ 9.23 | 개관시간 11:00A.M. ~ 5:00P.M. /월, 화 휴관
- 장소; 마리나갤러리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호수로 817 레이킨스몰 2층 260호
전 세계가 K-culture에 주목하지만 정작 한국은 국적불명의 외래어가 난무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그림과 글씨의 경계를 아우른 한글문자도에 조선시대 유교사상에서 벗어나 현대 우리의 가치관을 담고, 민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려 시도하였다. 또한 한글의 하늘, 땅, 사람을 잊는 창제 사상과 과학적 디자인의 아름다움, 라틴어처럼 소리 나는 대로 쓰는 효율성 등 정 많고 자연을 사랑했던 선조들의 정신도 전하려 한다. 자주 볼 수 있어야 익숙해지고 관심이 생기듯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수묵화와 한글문자도처럼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수묵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만들 계획이다.
한글, 환경문제, 진리에 대한 탐구는 오랫동안 관심 있던 주제로써 대부분 자연과 교감, 치유를 소재로 한 영상이다. 특히 한글의 창제원리를 주제로 한 2007년 작 <낯선 여행>과 더불어 2023년 작 현대 시대상을 담은 한 음절 글자로 만든 <걍 –그냥>등 7편의 수묵애니메이션 원화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걍 –그냥>, 수묵애니메이션, 8분38초, 2023년
<동짓날의 꽃잠>, 수묵애니메이션, 4분40초, 2022년
<그림자표류기>, 수묵애니메이션, 약6분, 2021년
<수묵애니메이션 만들기>, 수묵애니메이션, 9분, 2021년
<낯선 여행>, 수묵애니메이션, 6분, 2007년
<뒤돌아 본 낯빛>, 수묵애니메이션, 3분, 2008년
<극락강1.5>, 수묵애니메이션, 7분, 2005년
<오묘한 수묵애니메이션전>은 다년간 홀로 만든 수묵애니메이션과 원화를 모아 선보이는 전시로 3D 애니메이션이 대세인 현 시대에 느리고 여백이 많은 영상이 낯설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기를 기대합니다.
전시기획 홍희기 | 서울디지털대학교 전시기획담당 겸임교수
한국화가 심홍 이소영은 평면 회화의 정통성에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데 관심이 있다. 임팩트있는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수행된 이미지들은 일상을 반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연과의 교감과 치유에 그 의미를 담는다.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방관자적 역사의식 안에서 불안과 갈등이 조장되고 개인의 소외와 고립을 자초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콘크리트 벽처럼 단단해 져 소통의 장애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소영의 온기 있는 작업들은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지난 2002년부터 선보인 수묵애니메이션과 이에 수용된 원화들을 한자리에 모아 현대적인 기법으로 한국화를 계승하는 매체성에 주목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어원은 ‘살아있는’을 뜻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 근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만화로 인식하지만 사실 동화(動畫)다. 애니메이션의 종주국인 미국의 경우 재현(mimesis)의 개념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소영의 수묵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2022년 성남시의 창작지원금으로 탄생한 <동짓날의 꽃잠>에서는 느티나무가 등장한다. 1970년, 급증하는 서울시의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마련한 이주대책으로 형성된 신도시가 성남시이다. 이곳에는 150~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보호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킨 이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단순하게 그네를 매어주는 놀이터나 그늘을 내어주는 정자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던 신목(神木)이자 한 해 농사를 점치는 지표목이었다.
그 느티나무가 이소영의 화폭에 담겨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었을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를 품어 줄 수 있는 소망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소영은 현실 풍자적 문자도를 제작하여 오묘한 수묵애니메이션 <걍>을 이번 전시를 통해 발표한다. 기존 문자도의 틀을 깨는 신박한 아이디어는 신선함을 더하고 어디에도 없는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자신만의 장르로 일관한 수묵애니메이션의 표현은 흥미롭다.
앞으로도 그가 더욱 당당하게 너무 세련되지 않게 따뜻한 시선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여정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그의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소영, 새-샘, new-spring, 57☓39cm. 요철지 수묵담채, 2023
어린 왕자의 환타지, 그 윤리적 바름을 위하여
-이소영의 수묵애니메이션전에 부쳐
박응주 | 미술비평가
한국화가 이소영. 수묵애니메이션 영상감독 이소영.
오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두 아이덴티티 사이의 여정과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의 출발점인 개인전 1-3회 기간, 1997-99년 사이, 그는 억새꽃 춤사위를 가르는 바람이나 묵묵히 대지를 지키는 바위나 돌들의 숨결을 그리고자 했다. 아직 그 이름을 얻지 못한 황무지, 주목하지 않는 땅의 풍경 같은 것 그 어디에든 숨어있는 신(神), 그 생명력과 정신을 만나고자 했다고 말해본다. 물아일체요 주객합일 천인상응이라는 자연관과 그 미적 인식의 충직한 수행자였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없는 천상 동양화가였던 것이다. 과연 그가 우직한 체험과 관찰을 통해 그려냈던 자연 속 신의 형상은 <꿈꾸는 대지>에 <들풀들의 대화>에 <나무-바람신>, <산신-숨결>(1998년작)들에 은밀하게 혹은 몽환적으로 현현(顯現)하곤 했다.
그런데, 이때 이미 그는 동양화의 색다른 방법론, 수묵애니메이션을 고안하고 있었다. 그 첫 단초가 <이소영 그림영화전-음의 빛깔>전(한국문예진흥원, 2000)이었다. 그는 이 전시에 23미터 길이의 두루마리 한지에 국립국악원 수석상쇠 김용배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절대음(音) 경지를 갈구하다 비운을 맞이한 김용배의 신(神)을 표현하고자 했던 전신사조(傳神寫照) 인물초상화(<음의 빛깔-음의 구도자>2000)를 그려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비가시적인 음의 빛깔을 그려내 보려는 시도, 그렇기에 인위적 꾸밈을 최소화하려 필선을 간결하게 표현한 감필법(減筆法)에 의한 함축적인 묘사가 되어야 했다. 한마디로 먼지 자욱한 이 현세 간에서 두 발을 굳건히 딛고서 선(禪)을 구현해보려는 지향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경우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영상으로서의 명실상부한 것으로서 <수묵화가 도전기>(2002년 미술회관 기획공모전 당선작)로부터 오늘의 개인전까지의 이소영 수묵애니메이션의 저류를 관통하는 것은 ‘선리(禪理)의 깨달음’과도 같은 것이라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이미 초기의 산수화에도 내장해 있던 유전자적 형질, 즉 초인간적이고 초월적인 신비감, 생명성의 본질 추구, 어떤 애니미즘(animism)의 후기적 발현일 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듯 이소영의 그림과 애니메이션은 연장선상의 계열에 위치한다. 그가 ‘수묵애니메이션으로 문인화를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는 소이다. 그러나 이 말은 즉각 난이한 목표가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하게 한다. 정적(靜的)인 문인화가 활력 있게(애니메이트animate) 된다는 일은 언뜻 형용모순처럼 들리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라 하여 디즈니의 <뮬란>이나 <포카혼타스>같은, 혹은 테웨이(特偉)의 <피리 부는 목동>과 같은 감동적인 스토리를 통해 관객의 몰입을 목표로 했을 거라는 기대가 애초부터 무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토리 없고 몰입 없는 애니메이트된 문인화라... 우리는 그 난이한 목표를 정조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의 내면에 보다 더 근접해 보아야겠다.
이번 전시는 ‘오묘한 수묵애니메이션전’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전형적인 애니메이션에서와 같은 주인공 캐릭터나 스펙타클한 서사구조가 없다. 물론 이전의 몇 작품들(<동짓날의꽃잠>2022, <그림자 표류기>2021, <극락강>2005)에서는 약간의 기승전결을 암시받을 내러티브가 있긴 하다(이번 전시에는 이 영상물을 포함해 5~6편을 선별해 함께 상영하고 있다). 아마도 ‘문인화를 수묵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목표를 가졌던 이번의 신작에게는 그런 서사마저도 방해물이 될 것을 염려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고 생각해본다. 확실히 이번 신작은 그냥 부드러운 애잔한 감정이거나 주인공의 고뇌와 번민에 감정이입해 따라가야만 하는 인력(引力)으로부터 놓여나 있다. 어딘가 교육적이고 감성보다는 이성을 작동시켜야 하는 쪽인 것이다. ‘한글’. 그 당연했고 친밀해 도대체 거리라고는 느끼지 못해 왔던 한글 창제의 원리를 우리 시대 한국인 관객을 대상으로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걍-그냥>과 <걍 2>는 이번 영상물의 제목이면서 첫머리에 등장하는 그림들이다. 지구 혹은 땅을 상징한 듯 꽃잎처럼 둥글게 배치한 ‘산-지구’ 위에 (머플러를 휘날려 모음 ‘ㅑ‘를 만들고 있는) 한 인간이 개기일식되어 자음 ‘ㄱ’자처럼 남겨진 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걍>). 또한 이번엔 ‘산-지구’대신 둥근 눈동자 안에 (그의 명명으로) ‘메탈양’이 등장해 있어 자음 ‘ㅇ’으로 대체되어있는 <걍 2>도 함께 보고 가자. 비둘기-성령이 ‘ㅈ’으로, 전봇대가 모음 ‘ㅓ’로, 웅크린 고양이가 ‘ㅇ’으로 현신한 <정(精)>. 인체를 ‘ㅂ’과 ‘ㅏ’로, 밥사발을 ‘ㅂ’으로 한 <밥>. ㅅ자의 산능선 아래 분청사기와 이를 마주한 인간을 그려 숨 혹은 쉼자를 표상하려는 그림 등등.
자, 과연 한국인 일반을 관람자라 상정했을 때 이들 그림을 대면할 감상방식의 양태는 어떠할까를 생각해본다. 작가의 기대대로 이루어질까? ‘미술이란 3초의 예술’이란 흔한 속설처럼 대개의 사람들은 한글 ‘걍’자로군!, ‘정답’을 맞추곤 이내 (그림)보기를 완료하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재미있군! 또 혹자는 고운 심성으로 그린 동화같은 세계이군! 할지도 모른다. 이 상투적인 읽기. 여기가 전투가 벌어지는 가장 핵심적인 장소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비단 이소영 작가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문제라기 보다는 진지한 예술 모두에게 봉착되는 지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너무 교양화되어 있다는 사실, 즉 지식이라는 밀교의 공범자들로서 매 상황에 대처할 답변 혹은 반응이 완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여기에서 자라난 오만, 상투화된 인지(認知)의 그물망을 벗어날 용의가 없는 메마름이다. 예컨대 이소영의 작품, <정>, <밥>, <쉼>과 같은 작품이 말하려 하는 것은 너의 정, 너의 밥, 너의 쉼과 같은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대한 당부)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어느 해 어느 골목을 지나다 허약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에게 다가서 그 존재의 가여움을 연민해 본 적은 있느냐”고 묻고 있는 셈인데, 그 질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한글 문자도가 문제가 아닌 저 바깥세상에 대한 제소(提訴)라 할 만한 작품들에 대해서라면 어떨까. 예컨대 쓰레기와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신천옹)를 받침 ‘ㅇ’으로, 바코드를 붙인 쓰레기통을 ‘ㅁ’으로 삼은 <멍>. 지구온난화로 위기에 내몰린 북극곰과 삶터를 잃어 전쟁난민처럼 내몰린 펭귄, 그러나 영상을 소비하는 현대인은 ‘좋아요’를 클릭하는 부조리를 그린 <방관의 괴리>, <공존의 시간>과 같은 작품들 경우 말이다. 소용없다. 이미 그런다고 ‘멍’해지지 않기로 했기 때문일 테다. ‘좋아요’를 누른다고 비통해하는 그림을 아무리 그려도 ‘그 그림이 좋아요’를 눌러 소비해버린다는 것이다. 그 어떤 시도도 무망해 보인다. 이소영이 싸워야 할 전투의 목록이다. 이 딱딱해진 더께와, ‘도구적 이성이 타성화되어 어느덧 잊혀 망각되어진 자연성과의 껄끄러운 대면’(아도르노)이라는 전투다.
물론 이소영은 이곳을 격전장으로 여기는지,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싶은 건지, 자신의 야심은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의연히 ‘결론’을 지을 뿐이다. ‘그림자를 직면하라’고. 자신의 부정적 모습조차 나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빛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그림자를 직면하라>). 스스로 자신을 가둔 울타리를 넘어(<너머>), 자신을 성찰하는 외유내강의 자세로(<메탈양>), 지금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로 살라(<그냥 나야>), 긍정적 마음으로 밝은 빛의 세계로(<빛>), 각자의 별에서 그냥 살아가라(<그냥>). 그렇게 그림자 인간과 메탈양은 신과 함께 그냥 오늘을 산다(<걍 2>)는 것.
이 결론은 다시 한번 시험지이다. 이 결론이 마치 달관한 도사인듯하여 동의할 수 없든, 자포자기의 밑바닥에 닿은 이후에 다시금 솟아나는 생의 의지가 기탁하는 동의이든, 이렇게 열거된 각각의 화두들에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1. 그림자를 직면하라-그림자, 그것은 피할 수 있는 것인가? 2. 자신을 가둔 울타리를 넘어-생의 의지는 물음의 대상이 아니지 않을까? 3. 지금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로 살라-이 삶의 주인과 종도, 이 삶의 군주와 신하도 모두 나이지 않은가? 4. 각자의 별에서 그냥 살아가라-자긍, 내 삶의 원천!…
그는 많은 말을 했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이 느낌은 뭘까…. 그는 드라마틱한 예술의 소재가 되기에는 가장 불리한, 가장 무심한, 가장 비가시적인, 가장 논쟁적인 불씨를 내장한 한글창제의 시원에 대해, 삶의 최상위 위계인 말에 대해, 행위에 대해, 사유에 대해 화두를 꺼내들었다. 이것이 그의 문인화였다면 가장 적확한 선택일 수 있겠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예술은 물신주의라는 자기목적이 되어버린 현혹의 예술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침묵은 삶을 일깨운다. 질문이 내게로 향하는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나는 ‘미술’이라는 역사적 개념 안에서 그 그릇에 온전히 담길만한 내용물만을 미술로 인정해오고 있으며 그 밖으로는 좀체로 건너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선과 악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먼 법정에서 다뤄져야 할 것임을. 새벽에 홀로 깨어 기도하는 자의 영(靈)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이상이 작품 원화들을 따로따로 감상했을 때의 인상이다. 작품 원화들 아니라 이번에는 영상을 보았다. 별먼지가 쏟아지며 명멸하는 영상을 통해 확실히 2차원 평면 문인화에서는 담아낼 수 없는 무수함과 무한함을 본다. 생각해보면 충, 효, 예, 신, 의, 제, 염, 치와 같은 유교적 덕목을 대체한 삶, 밥, 복, 싹, 멋, 정, 해, 맘과몸, 영, 숨과쉼, 꿈, 빛, 껄, 걍, ...들은 얼마나 절실한 것들인가. 그의 말처럼 스마트폰에 시선을 박고 그림자들로 살아가는, 그리하여 삶, 복, 밥, 싹, 멋...들과 같은 것이 ‘없는’, 망각된, 부박한 삶 아닌가. 매우 흐릿하게 된 가장 명료한 것들. 이를 잃고 사는 그림자 삶, 그런 삶들에 축복처럼 써 내보인 ‘한글가훈’들인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에 던져진 이유를 묻고 있다. 영상의 처음과 끝은 이렇게 흐른다. “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처럼 그냥 살아도 될까? 어린 왕자처럼 하늘을 본다.” 그 어디와 어디 사이가 감성과 이성 사이다. 부드럽기 한없는 한지의 수용성(受容性)과 독일식 동화의 움칫거릴 무서움 사이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의 동화는 무서운 얘기다. 자, 지금부터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보기를 시작할 때다.
숨 쉼, relax, 60☓50cm, 요철지 수묵담채, 2022
작가 약력
심홍 이소영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동양화전공 미술학 박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현재; 대학 강사, 동방미술문화학회,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홍익서화회, 홍익여성한국화회, 한글사랑운동본부 회원, 일러스트레이터, 수묵애니메이션 영상 감독
-저서: [산에 올라 마음의 붓을 들었네], [옛 그림 속 우리 얼굴], [옛 그림 속 우리 동물], [꽃 속에 마음 담은 우리 옛그림], [심홍 이소영의 수묵일러스트레이션], [우리에게도 예쁜 것들이 있다]
-개인전 21회 및 기획전, 단체전 다수 참여
-영상제작
2002 : 수묵화가 도전기 (미술회관 기획공모전 당선작) - 생(生)의 찬미
2005 : 7회 개인전 이소영 수묵애니메이션전 (갤러리 라메르) – 극락강(極樂江)
2005 : 교육용 애니메이션 (예술의 전당) - 달마이야기, 설중매 그리기, 해와 달 이야기
2007 : GHETTO -비선형적도시공간과단편들 (GalleryTheSpace) - 영혼의 게토
2007 : 교육용 애니메이션 (아모레 미술관) - 심향 박승무 산 넘고 물 건너
2007 : 9회 개인전 이소영 수묵애니메이션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낯선 여행
2008 : 미술의 표정(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뒤돌아 본 낯빛
2014 : 15회 개인전 심홍 이소영의 투명의자 (평화화랑) - 투명의자
2014 : 화통(畵通)콘서트 영상감독 (국립극장)
2021 : 대전산업단지관리공단 창립50주년 기념영상 (대전산업단지관리공단)
2021 : 19회 개인전 (갤러리 H) – 그림자 표류기
2021 :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목포문화예술회관) - 수묵애니메이션 만들기
2022 : 성남시 지역예술인 장작지원금 선정작 - 동짓날의 꽃잠
2023 : 21회 초대개인전 오묘한 수묵애니메이션전 (마리나 갤러리) - 한글문자도 걍-그냥 외
멍, bruise, 54☓39cm. 요철지 수묵담채, 콜라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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