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연대 : The Water Drops from Paris to Korea
전시개요
기 간 23. 09. 6 수 ─ 10. 28 토 (53일간)
화 ─ 토, 오전10시 ─ 오후6시 | 일 ─ 월 및 공휴일 휴관
장 소 ACS (ART CHOSUN SPACE) 서울시 세종대로21길 30
참여작가 김창열 Kim Tschang Yeul
주 최 ART CHOSUN, TV CHOSUN
기 획 ACS
전시기획
ART CHOSUN과 TV CHOSUN이 공동 주최하고 ACS 가 기획한 김창열(1929-2021)의 《물방울 연대 : The Water Drops from Paris to Korea》가 2023년 9월 6일부터 10월 28일까지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총 회화 24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연대(年代)별로 김창열의 예술 세계 전반을 총망라하여 물방울 탄생 이후의 그 전개 과정을 유기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국내 미술계가 가장 뜨겁게 달궈지는 때는 바로 9월이다.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지난해 ‘프리즈 서울’을 론칭하며 몰고 온 파장과 한국 아트씬에 끼친 영향력은 가히 가공할 만했다. 미술 시장 규모 1조원 시대를 만들며 보란 듯 국내 미술시장에 안착했으며, 올해 역시 내심 전년도 실적을 뛰어넘는 성과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국내 갤러리는 물론 미술관까지 합세해 해외 컬렉터들과 아트 러버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전시 기획과 이벤트들로 우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9월 제1회 프리즈 서울이 열릴 동안 아트조선스페이스는 전시를 열지 않았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가 갖고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다가오는 9월, 아트조선스페이스는 ‘김창열’ 展을 연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가 아닌,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다’를 보여준 김창열은 1950년대 엥포르멜 운동을 이끌며 현대미술가협회 창립회원으로서 서양미술사조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1년 파리 비엔날레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성공적인 참여를 기회로, 이듬해 뉴욕으로 건너간 김창열은 판화 공부를 하며 당시 뉴욕 미술계의 거센 팝아트의 기세에 눌려 자신의 방향감을 상실했다고 기억한다. 이후 1969년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고 파리 근교의 작업실에서 재활용을 위해 씻어 놓은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로써 김창열은 우리가 아는 그 ‘물방울 작가’로 불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김창열은 생명의 근원인 물방울과 조부와의 기억을 환기하는 천자문,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고향의 기억 속의 모래 등을 캔버스로 가져와 자기 근원으로의 회귀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방울이 처음으로 김창열의 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한 <Water Drops>(1973)부터 화면 속 한자가 도입된 회귀Recurrence 연작, 물방울과 얼룩의 병치가 돋보이는 <Water Drops>(2003), 다양한 색과 형태의 변화를 시도한 시기에 제작된 채도 높은 노란색 바탕의 <Recurrence>(2010)까지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파리 체류 당시 시작된 물방울 초기 작품부터 빛의 반사 효과로 인한 물방울 그림자가 두드러지는 말기 작품까지 예술 세계 전반을 아우른다. 또한 쇼윈도 공간에 설치된 300호 크기의 초대형 회귀 작품도 함께 선보이는데 한자와 이미지의 대비를 너머 동양 철학을 집약한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 서문은 작가의 차남인 김오안 감독이 맡았다. 김창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2021)의 공동 감독이기도 한 김오안은 아버지 김창열에 대한 기억을 이번 전시를 위해 글로 풀어냈다. 김오안 감독은 전시 서문에서 “생전 아버지께서는 늘 품위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이런 말들의 의미가 다소 퇴색했을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작품은 여전히 그 의미를 아름답게 뒷받침해 주는 듯하다”라고 했다.
아울러 VIP 오프닝에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특별 상영회를 개최한다. 김창열의 예술과 삶을 진솔하게 풀어낸 다큐멘터리를 김창열의 화화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물방울 연대 : The Water Drops from Paris to Korea》는 다채로운 볼거리나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가 없이 고요하며 평온한 자리다. 그러나 화면에 맺힌 물방울이 눈물방울과도 같이 다가오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전시서문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남자: 아버지에 대한 사색
김오안 Oan Kim
나는 80년대에 파리에서 성장했고, 그 무렵 그곳에서 나의 아버지는 유난히도 진지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부모로서 연로한 편이었던 아버지는(내가 태어난 것은 아버지가 45세 때였다) 혹독한 일제 강점기에 전기도 수도도 없는 지금의 북한 땅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반면에 나는 문화적 반항과 경조부박의 전통을 가진 부유한 서구 국가인 프랑스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품위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고 또 그 모범을 보이셨다. 안타깝게도 요즘에는 별로 통용되지 않는 단어지만, 아버지의 작품은 여전히 품위라는 말에 대한 아름다운 옹호라 할 수 있다. 그분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균형감과 고결함으로 의해 내 영혼이 진정되고 가다듬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아버지의 작품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대개 물방울 얘기를 한다. 사람들은 종종 물방울의 반복과 또 물방울 모티프 배후에 함축된 다양한 의미에 매료되는데, 바로 그것이 아버지의 작품의 다른 요소들을 모두 무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실, 아버지는 사람들이 당신을 ‘미스터 물방울’과 같은 별명으로 부르면 짜증을 내곤 했다. 그분의 작품에 보이는 독창성과 시정(詩情), 고결함과 심오함은 그분이 선택한 물방울 모티프만으로 전부 설명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단순하고 차분해서 그 정교함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작품들을 만든 것이야말로 그분의 천재성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처럼 진지한 분이었지만 아버지에게도 유머러스 한 면이 있었고,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가끔씩 예리한 위트가 있는 분이었다. 상당한 독서가였던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한때 문필가가 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그분의 작품에서도 그러한 점을 볼 수 있으면 한다. 착시화(錯視畫, trompe-l’œil)란 본질적으로 장난스러운 것이며, 관람자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려는 트릭이며, 그 트릭 속에서 밑 칠하지 않은 캔버스나 컬러패치, 혹은 한자 위에 나란히 놓인 물방울들은 또 다른 층의 무미건조한 아이러니를 겹겹이 더해준다. 아버지는 종종 의도적으로 터무니없는 내용을 담은 선(禪)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셨는데, 그분의 그림도 말하자면 시각적 역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 나름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어진 부조리한 수수께끼라 할 수 있다.
내가 브리짓 부이요(Brigitte Bouillot)와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를 제작하기 위해서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다다이즘과 도교 및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다. 도교와 불교와 나란히 다다이즘을 언급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서양 미술이 동양 정신, 특히 부조리한 수단을 통해 이성과 논리를 거부하는 선불교와 만나는 접점으로서 부친이 다다이즘을 발견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루이스 브뉘엘(Luis Bunūel)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아버지는 정말 좋아하셨다. 거기에는 자기가 피우고 있던 담배를 아들이 장난스럽게 홱 잡아당겼다고 해서 소총으로 자신의 어린 아들을 쏘는 아버지가 나온다. 보리달마의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며 자신의 팔을 잘랐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선승의 이야기도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폭력과 부조리함인데, 그것은 일종의 예술적, 영적 또는 기타 해방을 지향하는 것이다.
절제의 삶을 산 부친은 나쁜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싫어했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불평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폭력과 세상의 모든 불행을 비웃곤 하셨다. 그것이 부친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온갖 트라우마에 대한 카타르시스였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웃음은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진심을 담고 있었다.
전쟁의 비극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는 그분의 작품과 그분 자신에게서 풍겨 나오는 우울함 너머, 그 엄숙한 성품 넘어, 그분의 깊은 속마음에는 언제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단순한 순수함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분의 내면에서 빛나는 빛은 거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었다. 그처럼 말수가 적은 사람이 주위에 그렇게 많은 친구와 숭배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묻지 않은 깊은 속마음은 그의 주변에 순수한 빛을 비추었고, 부드러운 중력장과도 같은 그 마음을 사람들은 지금도 그의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아마 어떤 외국어에는 슬픔과 평온함, 강인함과 연약함,
순진함과 깊이를 모순 없이 조화시켜 줄 단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런 단어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는 우리는 그저 그가 그린 작품들을 바라볼 뿐이다.
Water Drops, 1973, Oil on linen, 99.5ⅹ99cm
Water Drops SA1983-2000, 1983-2000, Oil on hemp cloth, 181ⅹ227.2cm
Recurrence, 1993, Ink and oil on canvas, 193ⅹ300cm
Recurrence PA96029, 1993-1996, Ink and oil on canvas, 162ⅹ130cm
Water Drops, 2003, Oil and acrylic on hemp cloth, 79ⅹ116cm
Recurrence SH08001, 2008, Oil and acrylic on hemp cloth, 162.2ⅹ130.3cm
Recurrence SH100022, 2010, Oil and acrylic on hemp cloth, 181.5×227cm
Water Drops, 2018, Oil on hemp cloth, 162.2ⅹ130.3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