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전 시 명: 제23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윤석남》
ㅇ전시기간: 2023. 9. 26.(화) ~ 12. 31.(일)
ㅇ전시장소: 대구미술관 2, 3전시실, 선큰가든
ㅇ참여작가: 윤석남(Yun Suknam, 1939~, 만주
ㅇ전시구성: 회화, 드로잉 100여점, 조각, 설치
대구미술관은 제23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윤석남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인성미술상은 서양화가 이인성 화백의 작품세계를 기리고 한국 미술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대구시가 1999년 제정한 상으로 2014년부터 대구미술관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23회 수상자로 선정된 윤석남 작가는 여성, 생태, 역사 등의 주제를 통해 국내 문화예술의 유산을 현대미술 매체와 결합하는 유연성과 독창성을 높이 인정받았다. 심사위원회는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영역을 개척했으며, 회화와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이뤄가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윤석남 작가의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윤석남(1939~, 만주출생)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과 현실을 담은 작품으로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작가이다. 마흔이 넘어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그는 1982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 40여 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윤석남은 어머니와 모성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초기 예술의 뿌리로 삼고 이후 정체성, 생명과 돌봄, 자연, 여성사로 주제를 확장하여 최근 역사 속 여성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또한 여성문화 운동을 주도하고 90년대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if)>를 발행하는 등 여성문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80년대부터 여성 문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여성주의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작업 관에 중요한 자극과 원천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기간 다루어온 여성사라는 큰 주제 아래 투쟁과 헌신, 돌봄의 가치 등을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조명한다. 특히 한국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채색 초상화 20여 점을 신작으로 선보인다. 윤석남은 일제강점기에 남성 못지않은 열정과 희생정신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이름 없이 사라진 여성들의 존재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밝힌다. 이로서 무명의 희생자로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는’ 존재로 복원시키고자 한다. 20점의 초상화는 각각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가진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25마리의 유기견을 나무로 조각한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는 모성과 돌봄, 인간애를 아우르는 대규모 조각 작품이다. 작가는 버려진 유기견을 보살피는 이애신 할머니의 사연을 우연히 접하고 그의 삶에서 받은 충격과 감동, 고마움으로부터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사람과 함께였지만 어느 새 사람 없이 떠돌이 신세가 된 유기견들은 1,025개의 작품이 되어 다시 사람 곁에 돌아와 우리를 바라본다. 사랑스러운 표정과 몸짓 속에는 버려진 존재들의 고통 또한 짐작케 한다. 작품은 인간의 이기심과 생명경시, 버림 문화에 대해 꼬집고, 동시에 그럼에도 결국 인간애와 돌봄,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한다. 약 5년이라는 제작기간이 걸린 1,025개의 조각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전시공간의 창 너머 자연과 어우러져,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일부이며, 동물과 인간은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작품은 <핑크 룸> 설치와 드로잉 연작이다. 2전시실과 3전시실 사이의 로비 공간인 선큰가든에 조성되는 설치 <핑크 룸>은 90년대 중반부터 이어온 윤석남의 룸 연작 가운데 하나로, 다양한 색상과 오브제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작가는 선큰가든의 두 벽에 핑크색 드로잉을 벽면 가득 붙이고 거울과 구슬을 함께 연출한다. 핑크는 여성성과 성 역할을 대변하는 일종의 ‘아름다운’ 색이지만, 작가는 여기 형광을 더해 과장된 밝기와 두드러진 형광 핑크를 사용했다. 겉으로 화려해보이지만 그 속에 불안하고 불편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는 사회적 기대와 현실적인 갈등 속에서 가정 내 여성 혹은 주부가 겪는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윤석남은 2001년에서 2003년까지 수백 점의 드로잉을 제작했다. 마치 일기를 써내려가듯 그린 그림에는 당시 작가의 내면과 여성의 삶에 대한 소외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 드로잉의 제목이나 문학적 글귀는 윤석남의 작품세계에 깊게 내제된 문학성을 발견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번 전시는 치열하고 용기 있는 삶의 이야기를 윤석남의 시선을 따라가며 마주하는 여정이다. 소외되고 잊혀진 존재들을 다시금 조명하고, 여성의 삶과 투쟁이라는 페미니즘의 실천을 넘어, 휴머니즘의 실천으로 확장된 차원에서 윤석남 작가의 예술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전시를 통해 가슴 한편에 따뜻한 마음을 품는 시간이 되기를, 그런 우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