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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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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랑은 3월 6일부터 4월 7일까지 김종학작가의 개인전 《김종학: 사람이 꽃이다》를 개최한다. ‘설악산의화가’, ‘꽃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진 김종학은 풍경뿐만아니라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쉬지 않고 인물을 그려왔다. 작가의 60여 년의 화업 기간 중 그가 그린 ‘인물’을 특별히 조명하는 전시로, 공개되는 143점의 작품 대부분이 처음으로 대중과 만나게 된다.


전시는 김종학의 초기 인물 작품과 아카이브로부터 출발한다. 3개의 전시장으로구성된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전시장은 종이 작업과 유화 작품 등 총 2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 활동 초기에 추상화, 판화,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김종학은 인물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보여왔다. 그는 1977년부터 2년동안 미국에서 거주하며 풍경, 정물, 인물화 등 다양한 장르를접하면서 구체적인 형상에 대해 탐구했다. 이와 같은 그의 탐구는 특히'인물'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길에서스쳐 지나가는 사람, 지하철에서 마주 보고 서 있었던 사람 중 내 기억에 남은 사람들을 집에 와서 그리곤했다. 다양한 인종의 얼굴과 모습이 흥미로웠다. 같은 인종이더라도피부색, 머리 모양, 옷차림이 다 달랐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됐다.”


<남자>(1978)는 김종학이 미국에서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공부하던 1978년에 당시 그린 그림이다. 뉴욕에서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김종학이 뉴욕 화단에서 새롭게 접한 회화 경향에 대한 충격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당시 그가 직접 접한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 1922 – 2011) 작품에 담긴 강렬한 에너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표현하고자 한 시도를엿볼 수 있다. 전시장의 중앙에 설치된 종이에 그려진 인물 1970년대‘드로잉’, 1970년대 신문에 인쇄된 ‘삽화’ 등에서도 발견되는 김종학의 인물 아카이브는 그의 다양한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 최초로 전시되어 공개되는 것들이다. 


두 번째 전시장은 김종학의 종이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이 그에게 흥미로웠던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인물 작업은드로잉과 판화, 습작 등 종이작업으로 그칠 뿐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김종학은 연필과 수채, 수묵 등 다양한 재료로 수많은 인물 드로잉을 시도했다. 특히 김종학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억한 후에 그 얼굴들을 그림으로 옮겼다. ‘곰보 얼굴을 한 운전기사’의 얼굴은 김종학에게 흥미로운 소재였으며, 이번 전시에도 자주 등장한다. 또한 설악산에 살면서 보고 싶었던가족이나 친구들의 얼굴도 김종학의 소재가 되었다. 


 “내(김종학)가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40여 년을 살다 보니 자연의 구성 요소들을 많이 그리게 된다. 아무래도 눈에 들어오는것이 마음에 오래 남고 붓끝으로 옮겨지는 탓이다. 자연을 잘 살펴보면 그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마당에서 매년 피는 꽃도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는않지만 인물은 꾸준히 그리고 있다. 내게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다. 사람을 보면, 가족이라 해도 제각각 생김새가 다르다. 같은 사람도 다른 환경 속에서는 다르게 보인다.”

세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김종학의 8미터 대작<Pandemonium>을 마주하게 된다. 설악 야생화를모두 한군데 모아놓은 것처럼, 8미터 길이의 캔버스가 다양한 꽃으로 가득 담겨 있다. 작품을 채운 꽃들은 실제로는 크기가 아주 작은 설악산의 야생화이기 때문에 실제 자연은 김종학이담은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작품을 마주하며 자연의 넘치는 생명력을직접 체험하게 된다. 


김종학에게 인간은 꽃처럼 ‘아름다움’이나 ‘추함’이 존재하지않는다. 각기 다른 얼굴만이 존재할 뿐이다. 미술사가 김인혜는김종학의 인물화는 김종학이 야생화를 바라볼 때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초상의 대상과 화가 사이에 상호작용이나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방적인 관계지만, 작가의 연민과 사랑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같은 전시장에 함께 소개되는 작품 <Faces>(1990)는물감 상자 뒷면에 99명의 서로 다른 인물들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인종과성별, 나이 등을 불문한 채, 작가에게 흥미롭게 생긴 인물이모두 같은 크기로 김종학의 작품을 꽃처럼 구성하고 있다. 

 “꽃도꽃이고, 사람도 꽃이고, 새도 날아다니는 꽃이며, 사람이 꽃이다”

 

작가에 관하여

김종학은 1937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즐겨 그렸으며, 해방 후에는 온 가족이 흩어지는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남하하여 재동 국민학교와 경기중 · 고교를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 1962년에 졸업하였다. 1962년에 당시의 조형 모험을 한 몸에지녔던 <악튀엘 미협전>에 참가해서 작품 세계를구축하고, 1963년에는 당시 새로운 미술관을 집합시킨 <세계문화자유회의초대전>, 조선일보 주최의 <현대 작가초대전> 등에 참여함으로써 화업을 추진하였다. 1963년에는 한국 최초의 <판화 5인전>에초대되어서 판화 제작에도 힘썼으며, 같은 해 신문회관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 그는 고식적인 화단의 중압과 미니멀 아트의 획일성에 회의를 느끼고 1977년 미국으로 가서 79년까지 뉴욕에 머물면서 서구미술의 흐름을체험할 수 있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 그는 ‘추상에기초를 둔 구상’으로 설악의 사계를 그리기 시작했고, 설악산에들어가 살면서 꽃을 주로 그리기 시작했기에 ‘설악의 화가’ ‘꽃의화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김종학은 인사동을 비롯한골동가를 돌아다니며 골동품 수집에 골몰하였다. 이 같은 체험을 통해서 그는 서양문화에 대한 동양문화의훌륭함을 깨달았다. 김종학은 1982~85년까지 만 4년간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는1960년대 후반 홍익대 공예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고, 1989년시간 강사로 있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으로부터 교수 제안도 받았지만, 작가로서의 삶에 집중하고자 사양했다. 이후 김종학은 어떤 단체나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교육자로도활동하지 않았다. 작업 역시 줄곧 홀로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크고 작은 전시를 통해 호의적 평가를 받았다. 박여숙 화랑, 예화랑, 갤러리현대, 가나아트센터 등에서 열린 개인전은 늘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2002년 대구에서 주최하는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하고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1960년대말의 판화부터 90년대의 회화 작품까지 김종학의 미술 세계를 아우르는 전시였다. 


2011년 김종학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상업성이 강한생존 작가에 대해 미술계가 품고 있던 편견을 극복했다. 또한 2015년 7월 서울특별시립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김종학 컬렉션_창작의 열쇠전>을 개최하며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목기 수집품 300여 점을 기증한 이후 30여 년간 모은 목공예품과 민예품 300여 점을 공개했다. 이는 옛 민예품에 담긴 조상의 미감과 예술성이 김종학에게 영감의 원천이었음을 대외적으로 알린 전시였다. 특히 목기에서 발견하는 빼어난 조형미와 수예품이 드러내는 색채미는 설악에서 홀로 작업하는 그에게 살아 있는교본과 다름없었다.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960년부터60여 년간의 화업을 보여주는 210여 점으로 구성된 역대최대 규모의 전시를 열었다. 60여 년 화업이 채워짐으로써 그간 규명되지 않았던 작업 형성의 경로와김종학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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