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필화로 담아낸 섬세한 제주 자연의 풍광
2023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 최미선 개인전 《제주그리멍·夢·똣똣이》展, 1월 31일 개막!
■ 전 시 명 : 2023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 최미선 개인전 《제주그리멍·夢·똣똣이》展
■ 장 소: 제주갤러리, 인사아트센터 B1 서울 종로구 인사동 41-1 인사아트센터
■ 일 시: 2024. 1. 31.(수) ~ 2024. 2. 12.(월)
■ 참여 작가 : 최미선
■ 출품작품: 약 50여 점(회화)
■ 홍보: 김유민 | 제주갤러리 큐레이터
■ 주관·주최: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사)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
최미선, 똣똣이 멀구슬나무, 장지에 채색, 135x168cm, 2023
■ 제주특별자치도와 (사)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회장 송재경)는 제주 지역에 국한되어 활동하는 작가 혹은 제주 출신 작가의 전시 기회를 확보하여 제주 미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으로, 제주갤러리 전시 대관을 공모한 바 있다. 11건의 작가·단체가 선정되었으며, 2024년 2월까지 제주갤러리에서 전시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제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최미선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 최미선은 자연을 모티브 삼아 전통 선묘와 현대적인 감각의 채색을 펼치는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은 “기존 한국화 분위기와 또 다른 여유에 문인화 느낌도 나는 독특함으로, 그만의 창작 기법을 발휘하고 현대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작가는 동덕여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천진미술대학원에서 공필화(工筆畵)를 전공하였다. 중국과 한국에서 개최한 개인전과 무등과 한라전(광주무등갤러리), 제주한국화협회 30주년 기념전(제주문예회관)을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또한, 2022년 제17회 헤럴드경제 대한민국 문화경영 공필화 부문 대상, 2019년 경기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 2018년 글로벌 국영문 월간 파워코리아 ‘이달의 작가’에 선정된 바 있다.
■ ≪제주그리멍·夢·똣똣이≫는 제주 풍광을 공필화 기법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구성된다. 전시는 3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펼쳐진다. ‘제주그리멍’은 꽃과 제주 자연 풍경을 접목한 작품이다. ‘제주그리몽(夢)’은 제주 자연과 전통 도안을 접목한 작품과 제주 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제주 풍경이다. ‘또똣한 제주’는 제주 자연을 스케치한 작품과 마천에 그린 제주의 꽃 그림(소품)으로 꾸려진다.
■ 이번 전시의 사진 촬영과 평론을 맡은 반치옥(사진작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생소한 공필화라는 회화 장르에 대해, 그리고 그 작업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최미선 작가의 생각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제주에서 공필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최미선의 개인전은 2월 12일(월) 19시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제주갤러리(인사아트센터 B1)에서 진행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최미선, 똣똣이 벛꽃제주, 장지에 채색, 135x168cm, 2023
반치옥 Mobe Ban. 사진가
# 작품사진을 좀 찍고 싶은데요.
상업사진가로서, 몇 년 전부터 이경犁坰 최미선의 작품을 촬영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공필화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다. 낯선 장르의 작품을 마주하고, 이 작품은 어떻게 찍어야 마땅한 것인지 알기 위해 그의 작업에 대해 묻고, 또 수 년간 그의 작업에 조명을 맞추고 색을 관찰한 시간이 어느새 햇수가 제법 되었다. 좋은 작업이 대부분 그렇듯, 이경의 작품은 오래 보게 된다. 촬영 하기 전에 꼼꼼하게 살펴보고, 촬영을 마친 후에도 바로 내리지 않고 가만 들여다 본다. 지난 몇 년의 작업을 지켜 본 인연으로 이번 그의 도록에 작은 이야기를 적는다. 미리 밝혀두지만 현학적인 수사나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한국에서 아직은 생소한 공필화라는 회화장르에 대해, 그리고 그 작업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이경의 생각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내가 인생을 살면서 꿈을 꾸는 시기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경이 들려준 첫 번째 단어는 꿈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것이다. 어찌나 매력적인 꿈을 꾸었던 것인지, 대군은 꿈이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 안견을 불러 자신이 꾼 꿈에 대해 묘사하고, 화가는 3일 동안 그림을 그려 대군에게 전한다.
안견의 붓으로 세상에 남은 안평대군의 꿈이 공필화의 작법이다. 뿐만 아니다.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도 공필이다. ‘공필화’라는 단어는 생소하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미술 교과서를 통해 그 그림을 접했다. 공필의 한자를 풀면 장인工의 붓筆이다. 장인은 오래 수련하고 단련하여 이루어낸 기술의 경지에 가깝다. 그 경지는 순간적인 영감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쏟아내거나 일순간 깨달아서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앞서간 자들의 기술을 차근차근 익히고 오랜 시간 수련해서 그 기술의 완숙함 위에 자신의 방식을 쌓아올려야 마침내 닿을 수 있다. 조선시대 도화서의 화원들이 그 최전선에 있었고, 그들에게 배운 양반가의 몇몇도 있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윤두서의 자화상은 장인의 붓놀림을 배우지 않고서는 그려내기 힘든 것들이라고 이경은 말한다. 하지만 정신의 깊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던 조선의 양반사회에서 갈고 닦은 기술로서 도달한 경지는 인정하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고, 공필화는 주류로 살아남지 못 하고 조선의 멸망과 함께 명맥이 끊긴다. 민화를 통해 그 흔적이 일부 남아있기는 해도 완성도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어진을 그리는 도화서 화원을 떠올려 본다. 왕의 얼굴을 그린다고 했을 때 선이 어긋나서 생김새가 달라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공필은 정확한 선에서 시작하고, 그래서 기초부터 탄탄하게, 오래 배워야 하는 것이 공필화의 선이다. 빛이 닿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선이 다르고, 흐르듯 나아가는 선과 멈추어 맺히는 부분의 선이 또 다르다. 그만큼 공력을 쏟아야 해서, 공필화에서는 선으로만 채워서 완성하는 그림도 있다.
우여곡절을 담은 선의 그림이 그 자체로 매력적이라지만 선은 태생적으로 나누고 경계짓는다. 살아보면,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 경계를 스미듯이 넘나드는 것이 공필의 색이다. 선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짧게는 열 번에서 길게는 스무 번에 이른다. 옅고 묽은 색을 여러 번 칠해가면 하나의 색에 깊이가 생긴다. 이를 분염分染이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깊이를 가진 단색을 묽어서 점점 번져나가고 서로 다른 단색의 영역을 물들이면서 새로운 색을 만든다. 이것은 조염造染이다. 세밀한 선과 분염, 그리고 조염의 삼박자를 맞춰서 공필화의 화폭이 채워진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은 이경의 꿈인 듯해서 그 과정 속에서 작품은 처음과 조금씩 달라진다.
제주 억새를 그리다 땅에 박혀 있는 억새를 날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제가 하늘에 꽃도 내리고 있고 억새풀도 날리고 있던데요. 그런 게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내가 그림을 통해서 꿈을 꾸는구나 싶은 거죠. 내가 보고 그리는 꽃을 제주의 어떤 풍경들과 섞어 놓기도 하는데, 요새는 그런 돌집 같은 걸 사실적으로 대비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다시 그림으로 재창조된 느낌을 알 수 있겠더라고요.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장인의 붓으로 그려냈듯이, 이경은 지금 제주의 풍경 속에서 꿈꾸듯 살며 그렇게 만난 장면들을 공필화로 담아낸다.
최미선, 제주그리멍 수산리 동백, 장지에 채색, 130x160cm, 2021
#호우시절好雨時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그가 쓰촨성 청두에 머물 때 지은 시, 春夜喜雨에서 제때에 내리는 봄날의 단비를 묘사하고 있다. 소리도 없이 밤중에 스미듯 내려서隨風潛入夜 땅을 적셔둔 봄비에게 보내는 안부인사같다. 파란만장한 젊은 날을 보내고 난 후, 제갈공명의 사당 근처에 작은 초당을 짓고 직접 농사짓던 시인에게, 기다렸다는 듯 때를 맞춰 내리는 봄비는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어찌나 반가웠을까. 그리고 밤사이 내린 비로 하루 사이에 바뀐 풍경은 또 얼마나 시인의 마음을 흔들어 댔을까.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이경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한참의 간격을 두고 중국 톈진대학교에서 공필화를 배웠다. 옅은 색을 한 겹씩 올려가며 분염하는 공필화는 그가 배웠던 서양화의 색과 달라서, 지아광지엔贾广健 교수는
너는 이렇게 색을 칠한 게 아니고 물감을 갖다 들이부었구나. 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긋기부터 시작해서 공필화의 규칙을 하나씩 배우고 익혀가면서 점차 기술을 연마했고, 그 뒤로 조금씩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중국에서 배운 공필화지만 이경은 마냥 따르기 어려웠다. 화초그림을 임모할 때가 많았는데, 중국 꽃은 한국 것과 모양은 닮았지만 색이 너무 달랐다. 한국 들판에 피는 민들레, 할미꽃 따위의 풀꽃들이 너무 그리웠다.중국 그림을 배우고 익힌 다음에는 한국에 있는 야생 꽃을 주로 그리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이 그림은 아무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표현이 안 돼요. 반대로 기술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면 그림이 안 나왔을 거예요.
이어지고 끊어지는, 만나고 헤어지는, 쌓이고 허물어지는 모든 것들이 적당한 때가 있다. 노력으로 조금 당길 수 있고, 외면으로 잠시 밀어낼 수는 있어도 적당한 때는 도도한 강물처럼 온다. 그가 배우고 익힌 장인의 붓질과 제주에서 마주한 온갖 풍경이 마침내 적당한 때에 만난 것은 아닐까.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지금에 이르러서. 그의 작업은 밤중에 가만히 내려서 땅을 적시고 풍경을 바꾸는 봄비 같겠다.
최미선, 제주그리멍 한라산II, 장지 ·마천에 채색, 130x160cm, 2020
# 제주그리몽
세밀한 작업이 많은 만큼 하고싶다고 언제까지고 계속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공필화를 가르쳐준 중국의 선생님들도 50세가 넘어가면 한 명 두 명 손에서 공필을 내려놓는다. 이경 역시 이제 밤에는 작업하기 어렵고 해가 떠서 질 때까지만 작업한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공필화를 붙잡는다. 눈이 버텨주고 체력이 받쳐주는 동안에 이런 저런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다. 개인적 성취 외에 다른 의도도 있다. 우선은 공필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고, 중국 그림의 한 분류로 취급되는 것이 너무 아쉽다. 한국에 공필을 더 소개하고, 한국의 공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었다. 그것이 이경이 그의 공필화를 통해 꾸고 싶은 다음 꿈이다.
그 속에서 저는 계속 꿈을 꿀 것 같아요. 제주가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어요.
최미선, 제주그리夢 오름, 한지에 채색, 66x116cm,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