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구천에서 어반 아트(Urban Art)로 -
From Bangucheon to Urban Art
울산시립미술관은 울산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며《반구천에서 어반 아트(Urban Art)로》 전시를 개최한다. 포모나(POMONA)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를 통해 어반 아트의 시원으로 간주되는 고대 암각화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함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예술도시를 꿈꾸는 울산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런데 왜 지금 ‘어반 아트’를 말하는가?
어반 아트는 1970년대 뉴욕 사우스 브롱스(Bronx) 지역의 그라피티(Graffiti)에서 시작되었다. 낙서화, 거리예술, 혹은 공공예술 등으로 불린 그라피티는 이 단어들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심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예술형식이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그라피티는 당시 미적 자율성을 옹호하던 미국의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벽을 무너뜨리고, 대중들의 삶 속에 침투한 미술로 자리하게 되었다.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으로부터 미술의 고유한 형식으로 인정받게 된 그라피티는 팝아트의 출현과 더불어 형식주의 모더니즘 이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옹호한 추상표현주의의 ‘순수한’ 미술의 성역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린버그는 사회정치적 환경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예술을 사회적 ‘오염’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역설을 내놓았다. 하지만 추상표현주의는 평면화 또는 모노크롬 회화로 귀결되었고, 결국 미술은 일상과 소원한 행위로 간주되었으며, 당시 미술관 또한 ‘미의 상아탑’으로 성역화된 이른바 큐빅 갤러리의 모던 미술관으로 형성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미술관은 모더니즘 미술관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장소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의 절대적 순수성에 반기를 든 팝아트의 대두는 미술을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커뮤니티에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팝아트의 한 형식인 그라피티는 예술과 일상의 연결을 가속화시켰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라피티 작가들은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과감한 붓질을 시도하는 크래쉬(CRASH)와 존원(JonOne)의 작품은 추상표현주의 대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의 무작위적 선긋기 형식과 유사한 점을 보인다) 그라피티는 그 태생적 속성에서 알 수 있듯이 1960~70년대 전후 다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사회의 소외와 차별 현상에 대한 저항 정신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힙합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그라피티는 어반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형태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어반 아트는 그라피티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미디어파사드,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 등 도시에서 이뤄지는 모든 형태의 예술을 포괄한다. 어반 아트는 도시 지하철이나 건물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협소한 개념의 표면적인 미술행위를 넘어 지구환경의 위기를 다차원적으로 함께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려는 실천적 행위를 지향한다. 세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Obey)), 제우스(JEVS) 등 어반 아트 작가들은 자본과 정치가 역학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도시 삶의 구조를 폭로하기도 한다. 빌스(Vhils)는 스프레이 작업의 평면성을 뛰어넘고, 도시의 오래된 건물과 낡은 나무문이나 철문에 조각적 행위를 가함으로 그 도시의 역사성을 각인한다. 축적된 삶의 여러 층위들과 호흡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반 아트 작가들은 기후 위기, 도시 생태계 파괴 등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적 문제와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회정치적 이슈들을 작품 속에 다루고 있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와 국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세퍼드 페어리와 제우스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도 좀 더 열려있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폐쇄적인 곳에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부재하기 마련이다.
이번 어반 아트 전시는 커뮤니티와 도시의 개방성이 갖는 힘을 일깨우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일 뿐만 아니라 삶의 맥락에 근거하지 않은 예술은 그 힘을 쉽게 상실할 수도 있다는 미술사의 교훈을 다시 한번 환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어반 아트의 시원으로 간주되는 고대 암각화를 품고 있는 유구한 역사문화도시 울산의 저력이 이번 전시를 통해 산업단지의 회색 공간을 아름다운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예술도시로 재탄생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바로 이것이 지금 어반 아트를 말하는 이유이며, 어반 아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