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 프랑스 대표 추상화가 올리비에 드브레의 국내 최초·최대 규모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 개최
“나는 풍경이 아니라 풍경 앞에 서 있는 내 안의 감정을 그린다.”
◯ 프랑스 서정 추상의 대가 올리비에 드브레Olivier Debré(1920~1999)
◯ 풍경 앞에 서 있는 감정을 담아내는 작가 올리비에 드브레 개인전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 컬렉션 및 작가 유족의 개인 소장품 등 회화, 드로잉 및 영상 등 대표작 70여 점 전시
- 르 코르뷔지에, 피카소와 교류하며 건축, 무용 등 장르 간 협업을 통해 예술 세계 확장
- 각 3M 길이의 <루아르의 연보라>(1985), <검은 얼룩과 루아르의 황토빛 분홍>(1985-86), <루아르의 흘러내리는 황토색과 붉은 얼룩>(1987)을 감상할 수 있는 ‘루아르의 방’ 조성
- 오감을 통해 마음에 새겨둔 색채와 구성으로 자연풍경의 깊은 울림 전달
- 프랑스의 고도(古都) 투르(Tours)시(市) 소재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와 협력으로 전시 추진
상하이에서 올리비에 드브레 1998 ⓒ Marc Deville
상하이에서 올리비에 드브레 1988
경기도 수원시립미술관은 프랑스 대표 추상화가 올리비에 드브레Olivier Debré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를 7월 9일(화)부터 10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올리비에 드브레Olivier Debré((1920~1999)는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전후 유럽의 서정 추상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드브레의 6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다루며,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약 70여 점의 대표 작품과 영상, 사진 등의 아카이브를 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올리비에 드브레는 실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의 오감을 통해 마음에 새겨둔 색채와 구성으로 자연풍경의 깊은 울림을 전하고자 하였다. 예술 장르 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그의 회화도 다른 매체들로 확장되고, 조각과 설치처럼 공간을 점유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 대해 “나는 풍경화가이기를 거부한다. 나는 풍경이 아니라 풍경 앞에 서 있는 내 안의 감정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의 캔버스에는 실제 풍경의 형태가 사라지고, 내면화된 공간과 정서만이 남아 있다.
올리비에 드브레_ 살인자, 죽은 자와 그의 영혼_1946_종이에목탄_50 x 65 cm,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_© CCC OD - Tours © Adagp, Paris
- 1부 만남, 추상으로 -
1부 《만남, 추상으로》는 드브레의 학창 시절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의 활동 초기 작품들을 살펴본다. 올리비에 드브레는 17세에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한 후, 현대 건축의 선구자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업실을 다녔다. 건축 공부와 회화작업을 병행하던 드브레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의 만남으로 입체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상주의에서 파생된 구상 방식의 그림은 <풀밭 위의 소녀>(1940)의 흐릿한 얼굴과 뭉개진 윤곽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올리비에 드브레가 전쟁기에 투렌 지방에 머물며 제작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가족이 흩어지면서 그는 혼란과 외로움을 느꼈다. 전쟁기 동안 드브레는 투렌 지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고, <풀밭 위의 소녀> 또한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또한 드브레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잔혹 행위에 대한 공포심을 강제수용소의 인질과 희생자, 나치, 살인자 등의 모티프를 자신만의 독특한 상징적 기호로 나타냈다.
특히, <살인자, 죽은 자와 그의 영혼>(1946), <거울 속의 검은 추상화>(1946) 등의 작품이 그 시대를 담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장면을 추측할 수 있지만, 검은색으로 표현된 각진 형태, 날카로운 선, 음영이 잔혹함을 증언한다.
1950년대에는 사각 형태의 두꺼운 붓터치를 수직으로 배열한 <기호 인물> 연작이 등장하였고, 생의 마지막까지 드로잉과 판화로 이 연작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1부에서는 작가의 완숙한 전형이 완성되기까지의 일련의 탐색 과정을 전시한다.
올리비에 드브레_루아르의 흘러내리는 황토색과 붉은 얼룩 _1987_캔버스에 유채_180 x 310.5 cm_개인소장
- 2부 심상 풍경의 구축 -
2부 《심상 풍경의 구축》은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작가의 전성기 표현 방식이 확립된 시기를 조명한다. 드브레는 미국 여행 중 대형 회화 작업을 하던 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만난 후 회화적 행위와 색채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미국 색면회화와 달리 투르의 루아르 강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에서 추출한 감각을 주로 작품에 재현하는 특징을 보인다. <거대한 엷은 검정>(1962), <연노랑색 기호 인물>(1965) 등에서 작가의 색 표현의 실험을 엿볼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풍경과 빛을 발견하기 위해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그중 가장 큰 영감을 준 곳을 프랑스 투르(Tours)의 루아르 강변이었고 변화하는 루아르 강의 모습에서 받은 심상을 작품에 옮겼다. <폭풍우치는 루아르강의 진보라와 흰색>(1981)은 올리비에 드브레가 투렌 지방에 위치한 레 마데르(Les Madères)의 아틀리에 가까이에 있는 루아르강을 주제로 그린 작품이다. 그는 액체처럼 묽은 안료가 캔버스를 흐르도록 하면서 투렌의 투명한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루아르강을 보고 느낀 심상을 담아냈다. 이 작품 윗부분에 거칠게 발린 두터운 물감 덩어리는 격정적인 폭풍우에 출렁이는 검푸른 루아르강에 대한 심상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길이가 각 3m에 달하는 <루아르의 연보라>(1985), <검은 얼룩과 루아르의 황토빛 분홍>(1985-86), <루아르의 흘러내리는 황토색과 붉은 얼룩>(1987)이 있으며, 이 작품들은 별도의 ‘루아르의 방’에서 감상할 수 있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드브레는 파리의 코미디 프랑세즈와 홍콩 오페라 하우스 등의 대형 무대 가림막 제작으로 작업 범위를 넓히며 초대형 캔버스를 활용하는 새로운 장으로 나아갔다.
올리비에 드브레_풀밭 위의 소녀_1940_캔버스에 유채_46,5 x 61,5 cm, _개인소장_© CCC OD - Tours © Adagp, Paris
- 3부 여행의 프리즘 -
3부 《여행의 프리즘》은 작가가 노르웨이, 미국, 멕시코, 일본 등을 여행하며 그곳의 풍경과 정서를 내면화해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1966년 노르웨이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종종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청청한 자연풍경을 담백하게 표현한 <길고 푸른 선들(스바뇌위, 노르웨이)>(1974), <겨울 슬레톨렌의 흰색 1, 2>(1988) 등을 선보인다. 드브레는 겨울에 여러 차례 노르웨이를 여행했다. 그중 1979년 옵달(Oppdal)에서, 1988년 슬레탈렌(Sletthallen)에서 그린 하얀 회화 연작 <겨울 슬레톨렌의 흰색 1, 2>(1988)은 북유럽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당시 드브레가 실험했던 다양한 흰색의 조합을 살펴볼 수 있다. 섬세하게 다루어진 흰색의 변화는 마치 은밀한 표시처럼 눈 덮인 언덕과 산의 실루엣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전시전경
이 전시의 피날레는 드브레의 붓 터치로 가득한 무대 배경과 의상을 두른 무용수의 손짓이 관람객을 배웅하며 마무리한다. 1997년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초연한 공연 <사인 Signes>은 올리비에 드브레와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의 현대무용가 캐롤린 칼슨(Carolyn Carlson)이 감독을 맡았다. 드브레는 이 무대미술과 의상디자인을 담당하며 장르 간 협업으로 확장되는 예술 세계를 보여주었다.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국내 최대규모로 선보이는 올리비에 드브레의 개인전을 통해 자신의 오감을 통해 마음에 새겨둔 색채와 구성으로 자연풍경의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가의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