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온도가 올라가는 서울의 여름을 식혀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화가 안혜경의 <춤추는 땅>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늘근 호박 시리즈의 그림으로 잘 알려진 화가 안혜경은 충남 공주, 깊은 숲에 작업실이 있다. 자신의 작업실을 두고도 수년째 남도의 자연과 사람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안혜경 화가의 <춤추는 땅> 전시에는 오롯이 화가 안혜경만의 시각과 조형으로 표현된 지난 10년의 결과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전시된 작품 중 <춤추는 땅>은 봄의 거칠고 붉은 대지에 힘차게 물을 뿜어내는 스프링클러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여타 대가의 작품들이 그렇듯 여타 조형적 군더더기나 설명 없이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븕은 땅, 꿈틀대고 역동적인 생명이 충만한 대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짙은 초록의 공간을 돌아가는 스프링클러는 겨울에도 따뜻한 남쪽 바닷가 파밭을 그렸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바닷가 섬마을에는 온종일 한가롭게 스프링클러가 돌아간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파밭이라는 것을 알아채지만 멀리서 보면 기이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찬바람 부는 한겨울에 초록색 밭이 펼쳐진 것도 기이한데, 한여름에나 볼법한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더욱 기이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초록은 더욱 짙은 초록으로 젖어들고 흩어지는 물은 무지개마저 띄운다. 하늘은 맑고 파랗고, 바람은 차갑고 상쾌하다. 드넓은 대파밭이 물 흩어지는 소리를 내며 춤춘다.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해서 한 눈 한번 판 적 없는 화가 안혜경에게 화가로서 특별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다름 아닌 호박, 크고 투박하고 다정하고 때로는 경이롭기도 한 늘근 호박이었다. 10년 전 푸른 바닷가 호박밭에서 시작된 그녀의 새로운 여정, 호박과의 만남은 전남 신안의 22개 섬을 다니며 진솔하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섬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우물처럼 깊어졌다. 섬을 오가는 길에 마주한 경이로운 초록의 대파 밭에 뿌려지는 스프링클러, 그리고 봄을 맞은 농부가 밭을 정비하고 이제 막 씨앗을 뿌린 거대한 붉은 밭이 화가 안혜경에게 새로운 조형적 경험으로 이어졌다.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 때로는 검고 때로는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 유영하는 물고기들, 줄지어 하늘을 나는 겨울 철새 떼와 이름 모를 야생화, 그리고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자연과 함께 한 10년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안혜경의 캔버스로, 그림이 되어 돌아 온 작품 중 21점이 전시되었다.
전시가 열리는 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는 인사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천정이 높고 넓은 공간을 가진 전시장이다. 그 넓은 전시장이 안혜경 작가의 붉은 대지와 초록의 섬, 바닷가를 굴러다니는 늘근 호박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 되어 주었다.
모든 이름 있는 화가에게는 문제작 혹은 문제전시가 있게 마련이다. 화가 안혜경에게는 이번 <춤추는 땅> 전시가 화가 안혜경의 그동안의 화업의 전환이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은 또한 화가로서의 삶을 살아낸 안혜경이 인생 한 바퀴 돌아 다시 새로운 갑자를 시작하는 해이기도 하여 의미가 있다.
예술가라면, 화가라면, 언제나 세상을 향해 열린 감성으로 미세한 자연의 변화에도 반응한다. 진정 이 땅에 땅의 가치와 땅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화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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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
어정칠월 둥둥팔월,
어정칠월 건들팔월.
처음 듣는 속담인데도 안좌도 할머니들은 자주 쓴다.
땀 뻘뻘 흘리며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고 “벌써 칠월이 다 갔네~”하며.
섬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풍경이 따라온다. 육지 것인 내가 보는 섬 풍경은 그곳의 말 만큼이나 낯설고 신기하다. 해남 송지 바닷가에 호박밭을 보며 ‘건강원 호박은 다 여기서 나는구나!’ 했는데, 신안 자은도 파밭을 보고 또 한 번 입이 딱 벌어졌다. ‘이렇게 많은 대파를 누가 다 먹을까?’
눈 뜨면 초록이 넘실대는 공주 산골에 살다, 한달살이하듯 여행 가방을 들고 섬을 건너다니며 사람에 반하고 풍경에 반한다.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밭은 어느새 춤을 춘다.
쿵 짝짝 쿵 짝짝, 스프링클러 박자에 맞춰 대파, 호박, 배추, 고구마 콜라비⋯ 춤을 추며 물을 맞는다.
화가의 여행가방 프로젝트를 하며 섬에서 만난 풍경.
'춤추는 땅'
곧, 어정칠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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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안혜경 An Hye-kyung (b.1964, 경기도 안양)
2016년 해남 행촌문화재단 입주작가로 임하도에서 섬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고마운 호박> 작업을 했다. 2017년 해남 땅끝마을 ㄱ미술관에서 <해남 붉은 땅, 고마운 호박>展을 하며 한 달간 ‘안식당’을 열어 관객과 만나 음식을 나누고, 2018년 전남수묵비엔날레 레지던시, 수묵수다방 안식당으로 국내외 작가들과 교류했다. 그림과 밥을 교환하고, 음식을 나누며 관람객과 만나 작업하는 색다른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받았다.
2019년 태국에서 보낸 90일을 기록한 <타일랜드 일기>에 이어 2020년부터 신안 자은도를 시작으로 안좌도, 선도, 병풍도, 장산도, 암태도, 흑산도까지 20여 개 섬을 여행하며 섬사람을 인터뷰하고 그림과 글로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 작업은 섬 안의 공간에서 <화가의 여행가방>으로 전시되고 KBS 다큐온, EBS 한국기행에도 소개된 바 있다.
2023년에는 알츠하이머인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다시, 소녀>展으로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우리 사회 노인에 대한 담론을 만들었다.
학력
1991 덕성여자대학교 미술학 석사
1989 덕성여자대학교 서양화 학사
개인전
2019 타일랜드 일기, 라자망갈라 대학교, 탄야부리, 태국/수윤 아트스페이스, 해남/오픈스튜디오, 공주
멀구슬오동나무다방 보고전, 수윤 아트스페이스, 해남
2017 해남 붉은땅, 고마운 호박 전, 땅끝ㄱ미술관, 공룡박물관, 해남/2018 오픈스튜디오, 공주
2016 고마운호박 (행촌문화재단 입주작가전) 행촌 미술관, 해남
2015 봄 in KB, 국민은행 신관지점, 공주
2012 HERStory in Gongju, 공주문화원 (공주시지역작가 창작지원전), 공주
봄을 다시 봄, 공주시청 열린공간, 공주
2011 안혜경 전, 공주시청 열린공간, 공주
2010 자연읽기, 오픈스튜디오, 공주
2004 송은갤러리 기획초대전 (몽유夢流), 서울
2003 몽유, 롯데화랑 안양점, 안양
2002 쿠리오소스, 조흥갤러리, 서울
2000 내마음의 풍경, 서호갤러리, 서울
1995 판화전, 관훈갤러리, 서울
1990 도올갤러리, 서울
레지던시, 워크숍
2019 멀구슬오동나무다방 (수윤아트스페이스, 행촌문화재단, 해남 7.22-8.30)
해남 국제수묵워크숍 (해남문화예술회관, 해남 7.10-19)
RMUTL 국제 아트워크숍, 전시 (라자망갈라대학교, 이산, 태국 2.4-7)
14회 국제 시각예술워크숍, 전시 (포창예술대학, 방콕, 태국 1.28-31)
2018 라자망갈라 대학교 (탄야부리, 태국 2018.11.20.-2019.2.17.)
국제적 수묵 수다방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국제 레지던시, 목포 8.10-9.9)
거인의 정원 레지던시프로그램 입주작가 (행촌미술관, 해남 2018.7)
RMUTL 국제 아트워크숍, 전시 (라자망갈라대학교, 라나, 치앙마이, 태국 2.14-17)
13회 국제 시각예술 워크숍, 전시 (포창예술대학, 방콕, 태국 2.7-13)
2016-7 임하도 레지던시프로그램 입주작가 (행촌미술가, 해남)
2012 공주시 창작지원 작가
2004 송은문화재단, 전시지원 작가
2003 롯데화랑, 창작지원 작가
2002 신한갤러리, 전시지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