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강유진 개인전 <환상의 파편: 풍경의 새로운 시각>
기간: 2024년 8월 13일(화) - 9월 14일(토)
장소: 선화랑 1-3F,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5길 8
작품: 회화 38점
시간: 월-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휴관)
문의: 선화랑 02-734-0458, sungallery@hanmail.net
선화랑에서는 2024년 8월 13일부터 9월 14일까지 강유진 작가의 개인전 <환상의 파편: 풍경의 새로운 시각>展 이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Oak Spring Garde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얻은 시각적 체험과 영감을 바탕으로 한 신작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강유진은 인상 깊게 본 주변 풍경과 공간, 그 공간의 구조 그리고 연상이 되었던 일상 속 소재를 한 화면에 병치시키고 융합해내며 작가의 방식대로 화면 안에 기억과 경험을 소유하고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영감을 독특한 풍경으로 표현해 낸다. 이러한 새로운 풍경의 탄생은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과도 연관 지을 수 있겠다. 과거 영국 유학과 결혼 후 여러 지역을 정기적으로 이주하며 생활해야 했던 가족의 삶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때마다 낯섦과 수용이라는 반복되는 과정 속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자신이 던져진 상황에 긴밀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쏟아 부었고 이것은 오히려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을 도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업에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도심, 공항, 수영장 등 인공적인 공간을 주로 그렸던 작가는 최근 거주지의 변화들을 겪으며 자연물을 소재로 한 작업을 주 화면으로 삼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D.C와 가까운 지역에 정착했지만 그전 거주했던 유타주(Utha)는 바람, 물,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협곡과 지각 변동으로 형성된 단층 지대, 솔트레이크 시티의 설경처럼 뚜렷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어 그 자체가 캔버스가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의 영감은 작품 <Crepe cake canyon>, <Mountain with Crepe cake>, <Mountain with Meat>시리즈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길을 따라 마주한 대자연의 독특한 지형과 유사성을 가진 일상 속의 대상을 화면에 끌어들여 융합해낸 화면은 소재의 평범성을 뒤흔들며 또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이것은 ‘풍경과 정물’,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시각적인 몰입과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Mountain with Crepe cake, 106.7x152.4cm,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2021 / 단층과 케잌 단면의 형태적 유사성
Mountain with Meat, 106.7x152.4cm,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2020 / 설산과 지방 낀 고깃덩이의 형태적 유사성
작년에 참여했던 Oak Spring Garden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과 정원, 자연 속에 서있는 조각작품들은 강유진에게 새로운 작업의 영감과 소재가 되어 주었다. Oak Spring Garden은 원예가, 정원 디자이너, 자선가이자 콜렉터였던 Rachel Lambert Mellon이 설립한 공간으로, 예술가, 인류학자, 식물학자, 생태학자, 환경학자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유진은 이곳에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탐구하며 자신의 작품 안에 반영하였다. 정원은 자연으로 이루어진 곳이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이 가꾸어 낸 인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Oak Spring Garden, 130x162cm,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2023
여기에 레지던시 기간 동안 방문했던Glenstone Museum과 St. Bride’s farm필드투어에서 마주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제프 쿤스(Jeff Koons) 등의 조각작품에서도 큰 영감을 받았다. 그녀는 이러한 입체 조각 작품들을 자신의 캔버스 위에 평면화 하고 철, 돌 등과 같이 견고한 조각의 재료적 특성을 유동적이고 유연한 에나멜 안료로 대체되는 상반된 상황으로 존재 시켰다. 이렇듯 강유진 작품의 특징을 들여다보면 상반된 성질, 상황, 대비되는 두 요소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풍경처럼 재구성되어 진다.
Camouflage, 121.9 x 91.4xcm,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2024 / 제프쿤스 조각으로부터의 영감
Sculpture in glenstone, 89.4x145.5cm,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2024 / 리처드 세라 조각으로부터의 영감
●재료와 기법, 표현의 특징 - ‘에나멜’
강유진의 작품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요소는 화면을 이루는 주재료인 에나멜 페인트이다. 에나멜은 안료의 물성을 강조하기에 매우 효과적이기도 하고 뿌리고 흘리는 기법(*Dripping:붓을 사용하지 않고 안료를 캔버스위에 떨어뜨리거나 붓는 회화기법)을 통해 에나멜 페인트가 저절로 섞이며 우연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우연적인 효과는 구체적인 형상의 묘사를 제한하며 추상적인 요소를 적극 드러낸다. 또한 화면에 매끄럽게 발린 에나멜 표면의 광택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려진 이미지의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시선을 화면 밖으로 반사시키기도 한다. 관객의 시선이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가 화면 밖으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며 그 시선의 흐름이 유동적이기를 작가는 바랬다. 에나멜의 유동적인 특성과 우연적인 효과를 활용하여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이루며, 관객에게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에나멜의 성질을 이용하여 표현하기에 가장 효과적이며 즐겨 그리는 작업은 ‘Pool(수영장)’ 시리즈이다. 강유진의 그림에는 수영장이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가 어린시절부터 자주 찾던 장소 중 하나였다. 본인도 수영을 즐기고 잘하여 물 안에서의 안정감과 흥미를 많이 느꼈고 현재도 자신의 아이들과 가족들이 자주 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수영장은 수직, 수평의 직선 구조로 질서 있게 만들어진 인공적인 공간인 것에 반해 그 공간 안에 담긴 물은 자연적 요소이자 매우 유동적이고, 시시각각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투명한 수면은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비춘다. 흔들리는 수면은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직선으로 구성된 사각 수영장에 비해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수면의 수평이 드러내는 편안함과 물결의 움직임은 정적인 느낌과 동적인 느낌을 동시에 가지는데 이러한 두가지 상반된 느낌이 작업의 모티브가 된다. 특히 이번 신작 중 수영장주변의 배경으로 타오르는 ‘Fire(불)’ 또는 설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뜨거운 용암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작년 Oak Spring Garden 레지던시에 참여했을 무렵이 단풍이 물든 가을이었고 가든내 나무의 울긋불긋한 컬러와 형태감이 붉은 불로 연상되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불과 용암은 물과 대비되는 요소이지만 어떻게 보면 수영장의 물처럼 형태적으로 정형화되지 않고 유동적이며 추상적인 대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겠다. 이 상반된 요소들이 교묘하게 뒤섞여 시각적인 불편함과 조화로움을 동시에 갖는다. 한편으로는 화면내 ‘물의 차가움’을 완화시키면서 화면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에너지를 ‘불의 뜨거움’을 빌어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pool with fire, 2024,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91.4x121.9 cm
pool with mountain, 2024,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91.4x121.9 cm
이처럼 강유진의 화면은 이질적이고 상반된 소재를 조합하고 재구성하여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곤 한다. 추상적 요소와 구상적 요소, 2차원과 3차원적인 공간, 곡선과 직선, 디테일과 전체, 뜨거움과 차가움, 불편함과 안락함, 우연과 의도, 현실과 비현실 등의 대립항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교차하거나 중첩되고 병치되기도 하면서 마치 하나의 풍경처럼 조화롭게 섞여있다. 작가 강유진은 이번 전시타이틀인 <환상의 파편> 처럼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화면에 공존하고 있는 제3의 풍경 속에서 관객이 여러 층위를 경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