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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The Point Where Time and Space M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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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시 명 : 제주갤러리 특별기획전 《지금, 여기 : The Point Where Time and Space Meet》 
                           
■ 장    소: 제주갤러리, 인사아트센터 B1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41-1 인사아트센터)
  
■ 일    시: 2024. 9. 7.(토) ~ 9. 30.(월) 

■ 참여 작가 : 김진아·박한나·손유진
           
■ 작가와의 만남(오픈식) : 9. 7.(토) 14:00

■ 출품작품: 약 6점(설치·영상·회화 등)

■ 홍보: 김유민 | 제주갤러리 큐레이터

■ 주관·주최: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사)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






●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예술적 대화, ‘지금, 여기’에서 시작
● 제주 작가 3인의 풀어낸 ‘관계성’의 미학
● 문화와 정체성이 얽힌 공간, 그 중심에서 펼쳐지는 예술적 탐험

■ 인사아트센터 서울 제주갤러리에서는 2024년 9월 7일(토)부터 9월 30일(월)까지 기획전으로 ≪지금, 여기:The Point where Time and Space Meet≫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제주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청년 작가 김진아·박한나·손유진의 작품으로 꾸려진다. 세 명의 작가는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비인간, 과거와 현재 간의 관계를 탐구하여, 관계성을 밝히고 있다.  

■ 전시는 제주도에서 형성된 복합적 관계성에 주목하여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가 ‘관계성’에 주목한 이유는 정체성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지리·역사·문화·경제 요소들이 얽혀 형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제주도는 독특한 생태계와 굴곡진 역사,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관계들이 얽히고설켜 제주만의 고유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한 ‘지금, 여기’, 현재의 시점에서 제주라는 공간이 형성해 온 관계성이 어떻게 연결되고 변화하는지를 담고자 한다.

■ 손유진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결합하여 인간, 역사, 사회의 복합적 관계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물질적 변형과 상징적 의미를 통해, 역사와 현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Explorer-X>는 1917년 영국 식물학자가 제주도 한라산에서 나무를 채취한 역사적 사건과 2023년 제주 출생의 작가가 영국에서 그 나무를 채취하여 목탄 드로잉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가로 11m의 대형 드로잉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두 시점과 공간의 교차점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김진아는 제주 이주민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인’이라는 정체성의 경계와 이방인으로서의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유난히 제주인과 외지인을 구분하는 제주만의 독특한 습성을 드러내면서도,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질문을 제기한다. <뿌리 듣기>의 연장선상으로 출품한 신작 <뿌리 잇기:돌과 귤과 이방인>은 관객 참여형 설치작품으로 관람객이 직접 뿌리 형상을 제작해 설치물에 더하도록 하여, 물리적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 박한나는 인간-비인간 간의 관계와 연결을 고민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생태적 감각과 공존의 가치를 탐색하는 데 주력한다. 그의 작업은 현대의 생태적 위기에 직면하여 인간의 이념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인간-비인간 간의 공생이 단지 인간만의 제안이나 관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의 신작 <잡초와 나>는 인류세에 대해 거시적 관점으로 탐구해 오던 작가가‘잡초’라는 작은 생명체에 미시적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으로부터 공감대를 찾아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작가가 직접 세심하게 채집하여 정교하게 표본한 잡초도 만나볼 수 있다. 

■ 세 명의 작가가 제시하는 질문들은 단순히 관계성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삶의 고민으로 확장된다.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 ‘지금, 여기’ 현재 나의 시선으로 맺어지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관계 다이어그램’과‘관계 잇기’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오픈식은 9월 7일(토) 14:00에 ‘작가와의 만남’ 형식으로 진행된다. 현장 참여가 어려운 관람객을 위한 오픈 채팅방을 진행할 예정으로, 참여는 제주갤러리 인스타그램으로 신청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9월 30일(월) 19:00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제주갤러리(인사아트센터 B1)에서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김진아, <뿌리듣기>, 2채널 비디오, 79분 8초, 2023


김진아, <뿌리듣기>, 2채널 비디오, 79분 8초, 2023


박한나, <긴 어둠의 터널>, 단채널 비디오,7분 40초, 2023-2024


박한나, <잡초와 나>, 단채널 비디오,11분 50초, 2024


손유진, <대면>, 제주시 와흘 폐목 연소, 가변설치, 2022


손유진, <Explorer-X>, 캔버스에 영국의 한국 구상나무 목탄, 210×1100cm, 2024




지금, 여기 : The Point where Time and Space Meet

제주갤러리 큐레이터 김유민

 제주갤러리 특별기획전 ≪지금, 여기:The Point where Time and Space Meet≫은 제주도에서 형성된 복합적 관계성에 주목하여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가 ‘관계성’에 주목한 이유는 정체성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지리·역사·문화·경제 요소들이 얽혀 형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인간의 경험과 감정,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의미가 부여되는 곳이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김현주·심승희 옮김, 논형(2005)
. 제주도는 독특한 생태계와 굴곡진 역사,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관계들이 얽히고설켜 제주만의 고유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시각은 변하기 마련이다.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한 ‘지금, 여기’는 현재를 의미하지만, 이는 곧 과거가 된다. ‘지금, 여기’, 현재의 시점에서 제주라는 공간이 형성해 온 관계성이 어떻게 연결되고 변화하는지를 담고자 했다. 손유진, 김진아, 박한나는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를 탐구하여, 관계성을 밝히고자 한다. 
 
 손유진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결합하여 인간, 역사, 사회의 복합적 관계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재료의 물질적 변형과 상징적 의미를 통해, 역사와 현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면>은 작가의 본가(제주시 조천읍 와흘)에서 채취한 폐나무를 가공하여 제작한 소녀상이다. 작가는 제주 4·3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다. 그는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건을 현재의 관점에서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제주시 와흘에는 4·3 사건 희생자 134명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탑이 있다. 그는 자신의 마을에서 폐목을 주워 연소 가공하여 소녀상을 형상화하였다. 소녀상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연약한 이미지를 지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게 거친 나무뿌리 형태의 가면을 씌워 몸체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처음 마주했던 감정이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사건의 진실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사건에 대한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을, 가면을 쓴 소녀의 얼굴 형태로 형상화하였다. 소녀상의 머리와 몸체가 이루는 대조는 개인의 감정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동체의 기억이 서로 대면하는 듯 보인다. 소녀상의 발밑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여러 개의 작은 판이 펼쳐져 있다. 그는 “와흘의 땀이 모인, 마르지 않는 넓은 못에는 보이지 않는 134개의 붉은 꽃이 핀다”는 구전에서 모티브를 받아, 제주 4·3 사건 희생자의 수만큼 동백꽃을 그려놓았다. 작가는 폐목을 그 지역의 기억과 사건을 간직하고 있는 목격자로 설정하였으며, 나무를 연소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했다. 그는 사건을 단순히 과거의 비극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Explorer-X>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역사적 사건과 개인적 경험을 재구성한 대형 드로잉 작품이다.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 어니스트 월슨(Ernest Henry Wilson, 1876~1930)은 1917년 제주도 한라산에서 직접 채집한 구상나무 표본을 정기준 표본으로 삼아 아널드식물원(Arnold Arboretum) 연구보고서(1920년)에 ‘Abies Koreana(Korean Fir)’라는 학명으로 신종 발표하였다. 당시 그는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 표본과 함께 종자를 식물원에 육종하여 등록하였다. 현재 영국에서 ‘Korean Fir’라는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용 구상나무는 바로 한라산 구상나무가 원조다. 작가는 영국의 대표적 나무 시장인 ‘Sussex Christmas Trees’에 직접 가서 채집한 나무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나무를 목탄으로 만들어 드로잉 작업을 하였다. 월슨이 찍은 풍경, 자신이 ‘Korean Fir’를 채집하러 가면서 마주한 풍경과 상상한 풍경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펼쳐져 있다. 1917년 영국 식물학자가 제주도 한라산에서 나무를 채취한 역사적 사건과 2023년 제주 출생의 작가가 영국에서 그 나무를 채취하여 목탄 드로잉으로 작업한 과정은, 시공간을 초월한 두 시점과 공간의 교차에서 상상력과 탐험의 산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소’를 기반으로 작업 주제를 정하고 재료를 수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두 작품의 재료는 ‘나무’이며, 나무를 연소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변형하였다. 나무의 연소 과정은 그 자체로 기억과 흔적을 새기며, 이는 작가가 시각적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장소, 개인,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진아 작가는 제주 이주민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인’이라는 정체성의 경계와 이방인으로서의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유난히 제주인과 외지인을 구분하는 제주만의 독특한 습성을 드러내면서도,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질문을 제기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 이외의 다른 모든 지역을 ‘육지’라고 부른다. 제주 외의 지역을 ‘육지’라 부르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자신들을 스스로 다른 지역인들과 구별하는 사고이다. <뿌리 듣기>는 제주 이주민으로서 작가가 겪은 정체성의 혼란에서 출발한다. “제주 사람이세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이주민과 제주인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드러낸다. 작품은 79분간 이주 예술인(공영선, 여다함, 차해랑)과 제주인, 외국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당신이 생각할 때 저는 제주 사람입니까?’, ‘본인을 어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운전하다가 렌터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와 같은 질문은 제주인과 외지인을 구분하는 제주인만의 사고가 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이주민과 제주인의 내용을 2채널로 편집하여 설치하였다. 작가는 이들 사이의 차이나 동일성을 인식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차이 속에서 동일성을 확인하는 관점을 드러내며 이주민과 제주인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그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과 감정을 드러낸다. 문화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현재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포착할 수 있다. 지역 공동체는 제주의 현재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작가는 “나는 제주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스스로 혹은 상대에게 제주인으로 인정할/받을 수 있는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러한 질문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서 지역 사회 내에서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 사회적 인정에 대한 문제로 확장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이동 이상의 정체성의 문제로 연결되며, 제주도 주민과 관광객, 이주민과 제주도 주민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연결고리가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대한 섬처럼 떠 있는 <뿌리 잇기: 돌과 귤과 이방인>은 제주 섬의 상징인 ‘돌’과 ‘귤’을 통해 정체성의 유동성을 담은 관객 참여형 설치작품이다. <뿌리 듣기>에서 시작된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명확한 답을 요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오는 혼란과 모호함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관람객이 직접 뿌리 형상을 제작해 설치물에 더하도록 하여, 물리적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화산석은 제주의 물성을 상징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제주 문화의 근본이라 말한다. 귤은 본래 제주의 토착 작물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외부에서 유입된 작물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제주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으며, 이주민과 제주도 주민 모두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된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반투명한 종이에 출력된 돌과 귤의 이미지로 뒤덮인 설치물은 그 형상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공중에서 부유한 형태로 설치된 작품은 정체성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로는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정체성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 형태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 형태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본질적인 힘과 같은 차원에서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작업은 명확한 답을 할 수 없는 그러나 무의미하지도 않은 질문들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깊이 자리한 보이지 않는 ‘뿌리’를 탐구하며, 그 뿌리가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 혹은 그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문화 형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의 다양한 이주와 적응 문제로 보편적일 수 있으나, 타지역과는 상대적으로 다른 집합적 정체성으로 작가가 주목한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다. 

 박한나는 인간-비인간 간의 관계와 연결을 고민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생태적 감각과 공존의 가치를 탐색하는 데 주력한다. 그의 작업은 현대의 생태적 위기에 직면하여 인간의 이념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인간-비인간 간의 공생이 단지 인간만의 제안이나 관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긴 어둠의 터널>(2023)은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들의 존재를 조명하며, 그들의 흔적을 섬세하게 관찰한 에세이 형식의 영상 작품이다. 작품은 ‘자연의 순환과 변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간과 비인간 생물 간의 관계를 재고한다. 작가는 동시대 생태 흐름을 ‘긴 어둠의 터널’이라는 은유로 표현하였다. 작품 속 내레이션은 생태적 순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말한다. “시들고 사라지지만, 그 위에 새로움이 피어났던” 순환이 “추락의 경로를” 따를 수 있다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생태적 순환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임을 드러내며 불안을 극대화한다. 그러면서도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기 위해서는 서로를 붙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영상은 클로즈업한 자연 풍경과 벌목된 숲의 노루, 공사 현장 등이 교차하면서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몽환적인 듯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운드스케이프에는 자연의 미세한 숨결과 진동이 담겨 있어, 분명히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자연의 ‘존재’를 일깨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지지하며 생존을 위한 연대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인간의 고유한 감수성을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이 검은 밤의 끝에 우리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인가” 
 <잡초와 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연결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인간과 잡초의 생존 전략은 서로 양극을 이루면서도 상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로 반복해서 언급되는 ‘뱀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라는 내레이션은 잡초 제거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정당한 과정으로 해석됨을 보여준다. 이는 잡초가 방치되었을 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요소임을 나타낸다. 작가는 편향된 감각에 길들어져 있는 인간의 자연을 구별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와 자연의 자유로운 변화 사이의 관계성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서식지 감각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한다. 그는 단순히 생태계 복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만든 인공 환경 속에서도 자연의 회복력과 생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생물체의 구조와 기능의 기본단위인 세포 단위로 내려가 인간과 비인간 생물 간의 근본적인 연결성을 강조하며, “너와 나는 본질적으로 우리”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간결한 이미지 전환과 3인칭 관점에서의 내레이션을 통해 메시지를 단정하게 표현하였다. 지금까지 작가는 기후위기/재개발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관련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담거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지구 시스템과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을 재고하는 작품을 다루면서 인류세에 대해 거시적 관점으로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잡초와 나>는 ‘잡초’라는 작은 생명체에 미시적 관점으로 접근하여, 모든 생명은 공생하며 교란과 오염이 오히려 삶을 확장할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으로부터 공감대를 찾아가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는 일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하고 재배열하여,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는 시도를 한다. 전시장에는 작가가 세심하게 채집하여 정교하게 표본화한 잡초들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계의 다양한 생물들이 각자 환경에서 공존하는 것처럼, 인간과 비인간도 각자의 영역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공존한다. 

 어떠한 존재도 그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람과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는 맥락이 늘 흐르고 있다. 세 명의 작가가 제시하는 질문들은 단순히 관계성의 관점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삶의 고민으로 확장된다. 관계성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연결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 시간, 그리고 우리 자신과 맺는 모든 연결고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모든 관계가 얽히고설켜 정체성이 형성되며, 과거와의 관계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존던(John Donne, 1572~1631)의 시구처럼, “모든 인간은 섬이 아니며, 모든 섬은 그 자체로 우주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는 깊은 성찰은 우리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드는 본질적 요소가 된다. 이것이 우리가 관계성을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여기: 제주를 담는 세 가지 예술

글: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장소에 묶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교환, 이동, 소통의 공간적 장애가 줄어들고 있는 세계에서 덜 중요하기보다는 더욱 더 중요하게 되었다. _ 데이비드 하비

2024년 제주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지금, 여기>전시는 3명의 여성 예술가와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자 한다. 제주의 역사를 제 예술 실천안에 담아내는 손유진의 작업, 땅, 식물, 뿌리에 관한 설치 작업을 진행하는 김진아의 생태 작업, 자연과 인간 사이 연결고리,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는 박한나의 영상작업이 그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유민 큐레이터는 제주가 지정학적으로는 해양도서, 역사적으로는 변방이라는 고립된 위치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들어왔다 나갔기를 반복하는 열린 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2019년부터 4·3 기획전에 참여하며 손유진은 제주 4·3 사건과 관한 리서치를 진행해 왔다. ‘4·3을 어떻게 표현해야 진정성 있는 것일까’와 ‘동시대의 4·3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서 비롯하여, 작가는 자신이 거주한 와흘에서 4·3 사건이 있던 지역의 나무를 사건의 증거로 수집한다. 이곳에는 134개의 동백꽃이 핀다는 이야기가 있어왔는데, 4·3사건 당시 이곳에서 134명이 죽었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대면>은 와흘에서 수합한 폐목을 연소시켜 가면을 쓴 소녀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물메의 땅>에서 제2공항이 생기면 사라지는 수산리에 있는 오름들에서 수집한 나무들을 사용해 반인반오상을 만들었다. 이 오름들이 4·3 당시 제주 도민들이 숨어 있던 공간이었음을 알린다. 

한국화를 전공으로 한 작가는 자연 상태의 것을 불로 태워서 자신만의 안료, 목탄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태우는 행위는 대상을 기리고 위로하는 중요한 의례가 되어왔다. 작가는 변이의 과정을 거친 예술의 재료가 된 목탄과 이를 사용해 제작한 결과물인 예술 작업을 나란히 전시한다. 런던에서 제작한 첫 작업 <New Malden (코리아 타운)>은 런던에서 수합한 뉴 몰든 신문을 끓여서 만든 잉크로 그린 작업이다. 잉크를 가지고 뉴 몰든의 풍경, 신문 속 텍스트, 상징을 모아 만든 그림을 그렸다. <Flagship M>은 광주 무등산 흙을 수집해서 흰색 안료로 만들어, 수달과 가시나무를 그렸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작품은 사회를 연결하는 상징적 다리이다. 아카이브에서부터 수집, 재료 제작, 그리고 최종 작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작업 과정은 마치 다리처럼 새로운 지평과 시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과거의 정보와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의 이슈와 이야기를 연결하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사회와 긴밀히 연결된 자아의 표현이자 시각적 소통의 방식이다.”

<Explorer-X>는 작가가 거주하고 있는 ‘큰 섬’ ‘영국과 작가의 고향인 ‘작은 섬’ 제주 사이의 연결을 시도한 작업이다. 1920년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 어니스트 헨리 윌슨(Ernest Henry Wilson)은 제주의 한라산에서 수집한 나무를 ‘구상나무Abies Koreana(Korean Fir)’라는 학명으로 발표했다. 2024년 작가는 서섹스 크리스마스트리 마켓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하고 이를 불태워 목탄으로 만들었다. 이 목탄을 사용해 소년의 얼굴, 흰 모자를 쓴 탐험가, 두 발로 서있는 북극곰, 구상나무가 어우러진 대형 드로잉을 제작했다. 손유진의 그림은 과거/현재/미래가 섞여서 초현실적인 내러티브를 엮어낸다. 지역에 있었던 역사적 순간이라는 과거, 내가 바라본 현재의 풍경, 실존하지 않지만 초현실적인 이미지라는 미래를 병치한다. 

박한나는 2012년 제주도로 처음 이주했다.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서울에서 일상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제주로 이주했지만, 이곳에서 또한 숲을 없애는 개발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이후 작가는 기후 위기 관련한 불안한 감정과 불확실함에 관한 인터뷰 영상 작업을 진행한다. 그의 작업은 기후 위기라는 행성적 위기 상황에서 예술가의 실천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한다.

생물다양성 관련 다양한 지역의 학자, 연구자, 활동가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적인 이미지와 수집한 이미지를 함께 몽타주 하는 영상을 제작한다. <코끼리는 여기에만 있다>에서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둘러싸고 생물다양성 관련한 변호사, 토목공학 교수, 고생물학자, 새 전문가, 버섯 연구자, 양치식물 전문가 외 9인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다. 인터뷰에서 어떤 이들은 인간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한다면, 비인간의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비자림로 개발에 찬성한다. 다큐멘터리적 영상 이미지와 마인크래프트 게임 이미지를 몽타주한 영상 작업이다.

박한나는 말한다. “오늘날 이미지는 현대인의 주요한 소통 수단이며 인간과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작동 방식에 윤활유가 되곤 한다. 최첨단 스크린을 매개한 이미지와의 빈번한 접촉은 현대인에게 물질적 현실과 단절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오늘날 인간에게 비인간은 자원 혹은 배경 이미지로 소비되곤 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작동은 인류세의 파급력이 개인에게 경험적으로 인식되기 어려운 구조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이미지를 다루는 시(청)각 예술은 이러한 동시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시각에 특화되어 있는 인간에 비해 동물은 후각 촉각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관객이 인간인 경우, 어떤 시청각 작업으로 비인간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예술적 답변이 <긴 어둠의 터널> 작업인 듯하다. 밤 시간 제주의 곤충들, 나뭇잎, 초록색 뱀과 같은 작은 존재들을 기록한 시적 형식의 에세이 영상이다. 영상 속 한 여성은 제주의 작은 생명체를 램프 빛으로 비추며 걸어가며, 포크레인이 파낸 공사 현장과 자그마한 생명체들을 나란히 비춘다. ‘뜨겁고 캄캄한 밤에 너의 안부를 묻는다’는 문장이 말하듯, 작업은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을 더듬는 듯하다. 작가는 '잡초와 나', '작은 존재들과 터널을 통과하기'와 같은 관계와 연결에 집중한다. 

김진아는 ‘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작업을 제작해 왔다. 지역의 고유한 정신문화의 바탕인 장소성과 역사성을 통해 땅은 형성되지만, 그 실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유기적인 속성을 갖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관계, 적응, 구분,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개념들이 어떻게 땅에 대한 문화를 형성하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프로젝트 밭_ Deep Life Logbook>은 2023년 김진아가 예술공간 이아 입주 작가로 활동하며 스튜디오 아래층 카페에서 6조각의 바퀴 달린 부직포 화분에 식물을 키우며 시작되었다. ‘이동식 밭’은 자급자족적 태도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울산에서 진행한 <부유하는 밭>은 기후난민이 되었다는 전제하에 삶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며 시작한다. 정이십면체 구조의 밭을 만들고 보리 새싹을 심어 바다 위에 띄우고 경작할 것을 시도한다. 하지만 부유하는 밭은 이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낚시하던 시민이 밭을 건져 올려준다. 작가는 건져 올린 밭을 물로 씻고 다시 보리 새싹을 심는 과정을 거쳐 모든 사건을 전시한다.

작가는 말한다. “내가 어디를 가든 함께 움직이는 작은 밭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상상하는 나의 땅에는 의, 식, 주의 안정감, 공동체, 자유, 배려, 시간, 공존 같은 것들이 풍요롭고, 마치 달처럼 어디에나 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땅이다. 부유하는 밭은 새로운 대지에 닿으면 둥글게 말았던 몸을 펴 나의 땅이 되어주는, 작게나마 작물을 길러 나누며 주변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작가는 움직이는 밭을 만들어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관계성,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서 말하다, 

<뿌리듣기> 영상 작업에서 ‘제주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나눈다. 작가는 ‘제주 사람이세요?’라는 질문에서 이주민으로서의 날 선 감각을 느낀다. 제주로 이주한 두 명의 작가 공영선, 여다함, 차해랑과 함께 ‘제주 사람은 누구일까?’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영상 작업이다. 이주와 적응, 생존, 정착과 제주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열린 질문을 나눈다. 

비평가 제프 켈리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에 대한 글에서 ‘사이트site’와 ‘플레이스place’를 개념적으로 구별한 바 있다. 사이트는 추상적인 입지를 뜻하는 대신, 플레이스는 지리적 지역에 묶여 있는 친밀하며 개별화된 문화를 뜻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전시는 플레이스로서 제주를 전체론적 문화 안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담는다. 외부인과 내부인, 인간과 비인간의 흔들리는 경계 속에서 상실된 문화적 플레이스를 회복하고 새로운 제주에 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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