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24-10-31 ~ 2024-11-13
우희경
무료
070-8095-3899
우희경 : 근화아파트
Only Yesterday
2024. 10.31 - 11. 17
Over there와 Far away 사이 어딘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하다. 미간에 힘을 주고 잠깐만 애를 쓰면 떠오르는 순간들, 혀에 닿는 알사탕처럼 실재로 느껴지는 그 기억들은 정말 실제일까?
꿈과 현실이 뒤엉켜있는 어린 시절은 마치 백일몽과 같다.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이러한 공상과 망각, 백일몽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현실적인 배경에 비현실적이고 환유적인 요소를 배치하여 비이성적 혼란을 체계화하고, 예술의 창의성을 해방시키려 했다. 이번 우희경 작가의 개인전 ‘근화아파트(ONLY YESTERDAY)’에서 내가 주목한 지점은 환상과 실재의 혼재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이다.
우희경 작가의 그림은 따뜻한 색감을 지닌다. 손목의 힘을 빼고 가볍게 덧칠하며 색을 쌓아 올리는 방식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우리 마음의 빗장을 풀어준다. 캔버스에는 그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근화아파트’, ‘비디오테이프’, ‘카메라’, ‘탁상시계’, ‘연필깎이’, ‘울트라맨 장난감’ 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물건들은 동시대를 살아온 관객들에게 “이거 뭔지 알지!”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비현실적 배경인 환유적 불빛 위에 배치된다. 아파트의 불투명한 창에 비쳐 번진 불빛은 희미하면서도 강렬하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백일몽>(2024) 시리즈는 붉은 빛과 푸른 빛을 띤다. 어머니가 숫자를 적어 그리는 법을 알려주던 별,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보던 불꽃과는 다르게 그 형태는 불완전하고 색도 단순하다. 작가는 꿈과 현실이 뒤섞인 백일몽의 비형태적인 성질을 이 불빛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백일몽>은 작품 전반에 걸쳐 도드라지게 나타나며, 깜박깜박 신호를 보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건 내가 겪은 진짜 신기한 이야기야.”라며 속삭인다. 처음 집을 보던 날 창밖에 비쳤던 마녀의 실루엣, 몸이 떠오를 것만 같아 식탁을 붙잡았던 일, 어머니가 욕조에서 이불 빨래를 하던 날 거품 속에서 아끼던 장난감을 구조한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틈 사이로 보이던 입술이 빨갛던 삐에로, 까만 비닐봉지가 검은 고양이로 변해 달려들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 역시 백일몽에 빠지는 순간이다.
<미놀타>(2024), <나의 우주>(2024), <엄마에게 가는 길>(2024), <버블보블>(2024) 작품들은 우리에게 ‘실존’에 대해 질문한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이 ‘내던져진 존재’로서 실존의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유년 시절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이해와 안정감을 형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불안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유아들은 탯줄로 이어진 엄마, 그리고 가족, 애착하는 물건들을 통해 ‘실존’을 느끼며 안정적인 토대를 구축하게 된다. 현실의 삶이 불안정할수록 우리는 어린 시절 즉, 구축된 세계에 향수를 느끼며 그것은 ‘근화아파트’로 상징된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말하는 ‘yonder’가 그곳이다. 6살의 카야는 피투성이로 습지에 내던져진 존재였다. 카야의 오빠가 떠나면서 카야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습지 깊은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숨으라고 말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인 ‘yonder’는 ‘over there’와 ‘far away’ 사이 어딘가로, ‘여기’와 ‘저기’ 중간 어디쯤, 나와 타인 사이의 어딘가로 특정되지 않은, 생물이 여전히 야성을 가진 장소를 의미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yonder’이 있다. 우희경 작가에게는 ‘근화아파트’가 그러하다. 당신에게는 어디인가? 당신에게 위로를 주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는 그곳은 어디인가?
작가가 말하는 ‘근화아파트’는 단순한 추억 속 공간으로서 만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2000년대 철거되어 이제는 ‘오직 기억 속에서’, ‘ONLY YESTERDAY’로 존재하는 향수이다. ‘어제만’ 갖고 있는 향수와 동시에 그저 ‘어제일 뿐’이라는 현실 사이에 선다. 실존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4) 작품 속에서 묻는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기 존재를 책임지고 형성해야 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over there와 far away 사이에서 이유(離乳)를 고한다. 이제 백일몽에서 깨어나, 각자 자기의 삶을 구축하며 한 걸음 내딛기를 독려하고 있다. 우리가 이 여정을 함께 나아가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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