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갤러리 반디트라소는 오는 11월 6일부터 11월 30일까지 박진흥 개인전 <광기光記: 드리워지다 Archive of the Light : Cast>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박진흥 작가의 작품세계가 전환기에 접어든 시점에 개최하는 첫 번째 전시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작가는 그 동안 ‘쉼’과 ‘명상’을 주제로 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자아를 대변하는 인체 심볼 이미지와 오브제들을 그려왔다. 화면에 그려진 오브제에 항상 함께 그려진 ‘그림자’가 나타내고자 했던 마음의 현상학을 과감하게 확장 시켜 구현한 회화와 설치작품 30여점을 선보이게 될 예정이다.
전시는 약 한 달간 개최되며, 전시기간 중 11월 13일 수요일에는 홍경한 미술평론가와 함께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작가가 작품세계의 전환을 맞이한 계기와 향 후 작업의 방향, 그리고 현재 전업 작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있는 작품 세계의 확장성에 대하여 자유로운 토론과 제언들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러한 기회를 통해 미술계가 한층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드리워진 나날들, 130x162cm, Oil on canvas, 2024
드리워진 그 날, 91x116.7cm, Oil on canvas, 2024
드리워진 나날들, 45.5x53cm, Oil on canvas, 2024
작가 소개
박진흥은 유년시절을 인도의 우드스톡 국제학교에서 보냈고, 델리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호주로 이주하여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인간소외에 대한 자발적 물음과 해답을 ‘명상’과 ‘쉼’에서 찾고 이를 일상의 경험과 기록에 투영한 작품을 구현하고 있는 그는 인도와 호주를 오가며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고, 굵직한 공모전에서 다수 수상한 바 있다.
현재는 강원도 양구 박수근마을에 정착하여 그간 추구해왔던 삶과 작품의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드리워진 그 날, 45.5x53cm, Oil on canvas, 2024
드리워진 그 날, 45.5x53cm, Oil on canvas, 2024
작가노트
누구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지난 날, 나 역시도 때가 되면 따뜻한 빛을 받아 화려한 인생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살아왔다.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빛이 비춰지는 반대쪽의 음지에 더 어울리는 생명체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버섯이나 이끼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그 편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자로서의 삶이 진정한 나의 삶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밝은 빛에 의해 육안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색색의 형체보다는 공간에 드리워진 단순한 색채와 형체의 그림자가 좋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상으로 꽃을 피운 나무보다는 바닥에 혹은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모습에 더 정감이 간다.
좋은 옷과 보석으로 치장을 한 사람을 마주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서있는 공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 편하다.
아무리 높고 곧게 뻗어 있는 나무라도 그 웅장함을 우러러보기 다는 겸손하게 빛의 반대 방향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형상에 시선이 간다.
마치 그림자는 그 사물의 본질이 외치는 ‘쉼’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의 작품세계의 중심은 ‘쉼’과 ‘명상’이다.
몇 년 전까지 나는 쉼을 갈구하는 자아를 대변하듯 화폭에 늘 놓여 있었던 인간 심볼 이미지와 오브제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를 그렸다, 사고가 확장되어 인간 심볼 이미지는 조형물로 입체화 시켜 다양한 오브제들과 함께 설치 작품에 등장시키고 있다.
근간의 나는 나무가 가진 의연함과 초연함에 매료되어 나무 그림자를 즐겨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나무 그림자들을 빈 하늘과 빈 땅, 빈 벽으로 확장하여 그리면서 비움과 채움이 가져오는 쉼과 명상에 대하여 여전히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드리워진 그 날, 45.5x53cm, Oil on canvas, 2024
드리워진 그 날, 73x91cm, Oil on canvas, 2024
평론가의 글
추억의 공간은 시간의 흐름을 이탈하는 순간에 나타나는 공간이다. 현실적인 인식으로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시간이 정체된 이 공간은 순수 서정의 세계로, 방랑과 슬픔으로 점철된 유랑의 삶의 흔적들이 치유되는 근원적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고 ‘박진흥’이 쉼을 추억과 회상의 상념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추억의 공간은 단지 추억의 상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꿈의 소산이자 인간 심리의 근저에 놓여 있는 희망을 함께 가지고 있다. 화면의 그림자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화면의 이곳저곳에서 숨 쉬고 있는데, 그림자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되지 않는 포괄적인 것을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림자는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려는 개인적인 몸부림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고자 하는 소망을 동시에 표현한다. 그래서 그림자는 의식적인 현실의 모든 것들과 조화할 수 있는 상징적 존재로서 ‘추억의 공간’의 원형이 된다.
그림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며,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 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허무와 고독은 벗어나야 되는 굴레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 그림자는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는 한계를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림자에는 ‘세계-내-존재’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각성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기투(企投)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박진흥의 ‘추억의 공간’은 무의식의 심연이라는 망각의 정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정원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를 통해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김진엽, 미술평론가, <추억의 공간에서 사유의 공간으로> 중에서 발췌,
국립현대미술관 작가-전문가 매칭 지원사업, 2021
드리워진 그 날, 45.5x53cm, Oil on canvas, 2024
드리워진 나날들, 45.5x53cm, Oil on canvas,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