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하: 사랑 죽음 그리고 노스탤지어
2024. 11. 7 - 11. 17
금호미술관
인간의 본질, 나는 그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인류사를 고찰하며 사색을 통해 얻은 나의 결론이며 작품을 통해서도 이야기해온 작업의 주제이기도 하다,인간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들 중에 특별히 그의 영광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축복받은 존재였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아마도 우리는 지금쯤 에덴동산을 거닐며, 이 세상에서는 알 수 없는 천상의 평안함을 누리며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용서를 구하기는 커녕 신에게 비겁한 변명과 원망만을 늘어놓고 서로를 배신하는 어리석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 났다기 보다는 그 영광을 누릴 자격을 스스로 상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러한 사랑의 배신과 아픔을 경험하고 이 세상에서 고달픈 삶을 살게 된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의 자손인 우리는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저주스러운 운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들의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느꼈던 완전한 사랑, 천상에서 누렸던 영광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신은 아담과 이브를 쫓아낼 때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중 누군가는 여전히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고 죽을 때는 천상의 영광을 회상하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이러한 천상에 대한 기억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노스탤지어라고 말하고 싶다. 노스탤지어, 그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미디어는 지금 현재는 기록매체인 사진 영상일 것이다. 그 이미지 속에는 과거와 현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 공존하며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을 끊임없이 기억의 블랙홀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나는 이 매혹적인 매체의 셔터를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수없이 눌러 댔다. 그것은 신중하게 목표물을 조준하여 수확물을 얻는 사냥꾼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향해 무작위로 난사하며 우연히 얻게 될 기억의 파편들을 즐기려는 통제불능한 자의 모습에 가까왔다. 이렇게 얻게 된 일상의 조각들, 나는 이것들을 모아 의식의 흐름에 따라 다시 엮어서 또 하나의 세상 이미지로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이 또 하나의 보여지는 세상속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본질을 우리가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노정하
노정하는 그동안 자화상과 핀홀카메라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에 주목하고 있는 사진 작업들을 보여줬는데, 이번 전시 또한 영상 작품들이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공간속 에너지, 이는 인류가 쌓아온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들의 축척물로 인류 공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되며, 이것은 인간의 운명적 본질과 연결지어 볼 수 있는 충분한 재료가 될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형식에서 노정하가 중점을 둔 것은 영상을 사진 미학적 관점에서 풀어 나가려고 한 점과 기록매체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시도함에 있어서 시각적 유희를 무엇보다 중요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정하는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과 뉴욕의 Pratt Institute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비디오를 공부하였다. 국내외 여러 공모전과 재단의 지원을 받아 전시를 하였으며,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성곡미술관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