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장두건미술상 수상작가 이정
《Big Spider Is Watching You! 왕거미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
전시기간 2025-05-27 ~ 2025-09-14
전시장소 포항시립미술관 2전시실
전시작품 회화 13점, 영상 1점, 설치 2점
참여작가 이정
관람시간 10시 ~ 19시 * 매주 월요일 휴관(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에는 정상 개관)
관람료 무료
Big Spider Is Watching You!
왕거미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
포항시립미술관은 제20회 장두건미술상 수상작가 이정의 《Big Spider Is Watching You!》를 연다. 장두건미술상은 포항 미술문화의 초석을 다지고 한국 구상회화에 뚜렷한 성과를 남긴 초헌 장두건(草軒 張斗健, 1918-2015) 화백의 예술 업적을 기리며, 차세대 미술가들의 등용문으로 지역 미술문화 발전을 위해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정(1977-)은 이번 전시에서 포항과 서울을 오가는 차창에서 마주한 시골 풍경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상과 그것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는 오늘날 움직이는 차창 밖을 무심히 비껴가는 시골 풍경에 적극적인 관찰자로서 관람객을 유도한다. 그는 공허하고 꽉 찬 사물, 너르게 왜곡한 풍경, 그리고 나란하게 일어나는 경관의 이동과 시선을 연속적으로 재조합한 이미지를 구성하여, 오직 출발과 도착, 입장과 퇴장만이 있는 장소 사이, 그가 경험했던 ‘공허한 괄호’의 모습을 선보인다.
작가가 경험한 공허한 괄호는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 1935-2023)가 고안한 개념인 ‘비장소(Non-Place)’와 닮아있다. 비장소는 고도로 발전한 현대사회에 어떠한 목적을 위해 스쳐 지나치는 공간을 말하며, 오제는 특정한 관계와 의미 없이 지나치는 이곳에서 생겨나는 현대인의 특별하고도 근대적인 고독을 지적한다. 멈출 기색 없이 발전하는 도시와 무성하게 생겨나는 비장소, 그리고 그곳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오제의 지적은 단지 발전하는 도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공존하는 두 세계에 대한 성찰이자 지금, 여기에 관한 질문이다. 이처럼 작가 이정이 마주한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 또한 그러하다. 작가는 이동하는 주체와 멀어지는 풍경이라는 움직이는 시공간 속에서 결코 접점이 없을 것 같은 평행한 관계 속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그 시공간을 넘나들며 스스로 경험한 극단적 단절과 연속적인 이어짐, 그로 인해 겪은 심리적 동요를 넘어, 그곳의 숨은 에너지와 다른 차원의 역동성을 감지한다.
전시명《Big Spider Is Watching You!》는 이렇듯 공존하는 두 세계의 나란한 시선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의 작품에서 가져왔다. 아버지의 축사에 설치된 CCTV 스틸컷을 그려낸 이 작품은 화면을 바라보는 내부자인 작가 자신이 오히려 외부자인 거미에게 주시당하고 있다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가 자신과 거미의 시선을 교차한 그의 엉뚱한 상상은, 이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자인 우리가 내부자이면서도 곧 외부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이러한 시선은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인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으며, 역으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깨닫게 한다. 그 깨달음은 곧 오제가 그러했듯, 공존하는 두 세계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다시 이정이 경험했던 공허한 괄호를 상기하며, 그는 무심하게 지나치는 이 세계가 사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전시는 그가 감지한 정황들을 이어내며, 그저 지나치기만 했던, 단지 ‘시골’이라고만 불렸던,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오늘날 이 장소의 의미와 그곳에 있는 대상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의 이미지와 도상들은 개별적으로 땅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거나 지나치는 대상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연결된 물질이자 공간이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의 감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그만의 이미지로써 볼 수 있게 기능한다. 속절없이 지나치는 시공간을 지연시킨 이미지는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존재를 발견하게 하고, 그 안에서 팽창한 사물에 비친 모습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또, 매 순간 가깝고도 먼, 끊어지고 이어진 풍경은 우리의 공존을 말하고 있다. 전시는 획일화된 무감각을 직시하고 현 세계를 숙고하는 예술가의 태도와 함께 공허한 이 세계를 인식하는 사유의 방식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