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9 - 2026.03.22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한운성(1946-)의 예술 세계는 반세기에 걸친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의 기록이다. 한운성은 현실을 탐구한 예술가이자, 기법을 집요하게 연구한 실험가이며, 동시에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이다. 회화, 판화, 디지털 드로잉 작업으로 나아가며 시대의 기술과 시각 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수용하였다. 그러나 매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예술을 관통하는 질문은 언제나 하나였다 ？ “현실은 어떻게 이미지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한운성에게 이미지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탐구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전시는 2023년 작가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195점의 판화 컬렉션과 미술관 소장품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친 그의 예술적 탐구를 조망하고자 한다.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타일러 미술대학 판화과 유학 시절 한운성은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판화 기법을 습득하며 매체 실험에 몰두하였다. 거리에서 주운 납작하게 눌린 코카콜라 캔을 화면 전면에 내세운 <욕심 많은 거인>(1974)은 작가가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를 정립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후 귀국한 한운성은 〈문 I〉로 제2회 《동아미술제》(1980)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에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립하였다.

1988년에는 문교부 해외파견 교수로 선정되어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에 체류하며 사진판화를 연구하면서 사진, 판화,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 언어를 구축하였다. 1990년대 이후 한운성은 시선을 생명과 자연으로 돌려, 〈과일채집〉과 〈꽃〉 시리즈를 통해 생명의 원형과 순환을 탐구하며, 존재의 덧없음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포착하였다.

한운성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실험을 이어왔다. 1992년에는 ‘페인트 브러쉬(Paint Brush)’ 프로그램을 활용해 컴퓨터 드로잉을 시도했으며, 2021년부터 시작한 아이패드 드로잉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복제성을 지닌 판화 매체에서 디지털 드로잉으로의 전환은 작가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한운성은 또한 교육자로서 한국 판화교육의 토대를 세우는데 일조하였다. 198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국내 최초로 석판화 프레스기를 들여와 석판화 교육의 기반을 마련했고, 1978년 국내 최초의 판화 전문서 『판화세계』를 출간하여 이론과 기법을 정립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 회장 재임 시에는 판화 규정 제정과 제도 정착을 이끌며, 한국 현대판화사의 기틀을 다졌다.

이번 전시는 한운성 예술 세계의 전반을 조망하며, 그가 평생 천착해온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이미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