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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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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곳을 바라본다
-꿈-

고향으로 돌아온 것인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의 작업실에는 모든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음에도 켜켜이 쌓아둔 작품들에서 매캐한 먹 냄새가 흘러나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거칠어만 보이던 평상시의 모습과는 달리 약간은 수줍어하며 긴장하는 듯한 모습으로 필자를 맞이하며, 작업실에 배어있을 먹 냄새를 의식해서 인지 묵(墨) 작업은 학교를 졸업한 지 처음이라고 약간은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20여회 가량의 개인전을 하여 전시에는 이력이 나 있을 법한 작가에게 이토록 긴장감과 설레임을 주고 있는 정체는 무엇일까. 실로 오랜만에 하는 묵 작업이 작가에게 객지 생활의 고달픔과 외로움을 벗어나 그리운 벗들이 기다리는 포근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설레임을 주어서 일까. 이러한 의구심 속에 시선을 끄는 것은 이번 전시에 보여질 작품들이었다.
묵 작업이라고 작가에게 먼저 이야기로 들어 작품은 전통적인 수묵화의 작업을 현대적인 양식으로 변형시킨 것이겠거니 하고 온 것과는 달리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 작업이었다. 작품은 농담(濃淡)을 달리한 여러크기의 사각형의 한지나 짧은 폭에 길고 가느다란 한지를 연속으로 붙여 100호에서 200여호의 대형의 크기로 제작한 것으로 그것은 멀리서 보면 마치 체스 판의 모양이나, 글라인더로 갈아놓은 빌딩의 바닥 문양처럼 보였다. 얼핏 보기에 그 문양들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일지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전체의 배열이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도록 상하좌우의 농담의 대비에 세심하게 고려하여 완성한 것이었다.




작업들은 호박색이 나는 황토 빛의 자연 염료를 물에 타 안방의 장판지의 느낌이 나게 하는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묵을 사용한 작품들이었다. 단일한 색채에 모듈적 방식(modularity, 같은 크기의 단위적 형태들을 반복하는 형식)과 연속적 방식(seriality, 크기나 위치 등을 일정한 규칙으로 바꾸는 방식)을 택한 미니멀리즘의 작가인 칼 안드류(Carl Andre)의 작업이나 솔 르윗의 조각 작업을 상기시키는 이번 작업에서 특히 묵 작업들은 세밀히 관찰하면 서로 사뭇 다른 성질을 보이고 있다.
작품들이 미니멀리즘의 회화 형식을 띤다할지라도 색채의 질감은 보는 이와 유리되어 물리적인 대상의 느낌을 주는 작품, 담백한 느낌이 묻어나는 작품, 그리고 색채의 질감을 통한 어린 시절의 흔적과 물질 자체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작품들로 확연히 구분되었다. 앞선 작품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에서 색채 질감들의 진행은 미니멀리즘의 회화 형식에 내재한 백지와 같은 대상의 느낌을 점차 벗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평면에서의 묘사적인 느낌과 시각적인 정감이 느껴졌다. 이러한 질감들의 차이는 어째서 일어나는 것일까.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질감의 차이는 먹의 농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업 기법상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의 물리적인 대상이 느껴지는 작품은 한지를 붓으로 칠하여 그 조각들을 붙여 완성한 것에 반해서 질감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작품은 종이를 먹물에 담그고 그것을 말려서 붙여 완성한 것이다. 종이를 먹물에 담그고 그 적신 종이를 꺼내어 말리는 과정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와인을 숙성시키는 과정과 같이 종이의 질감과 먹물의 차이, 작업하는 이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붓으로 칠한 작품이 작가의 의도를 의식한 것을 배제할 수 없기에 인위적인 느낌이 난다면 종이를 담그고 말리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 농담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을 적당한 시기에 꺼내어 말리기에 자연의 숨결이 그 안에 배어나 자연적인 요소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업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인가. 그동안의 작가의 작업은 자신의 이력에서 보여지듯이 동양화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서구의 회화 형식을 표현하여 의식의 흐름을 찾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상의 현상들에서 의식의 흐름을 찾아가는 팦아트적인 작업(93), 자동기법을 통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추상 표현적인 작업(95), 우리의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환기시켜 사물의 본성과 우리의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오브제를 차용한 평면의 작업(97), 사진 이미지를 이용한 설치적 성격의 작업(98), 작품의 구성요소들간의 리듬적인 조화를 찾아내고 표현하여 내재적인 자아의 정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구성적인 작업(2000)등의 일련의 과정을 읽을 수가 있다.




이번 작업은 이전의 작업들과 같이 자신 안에 내재한 의식의 흐름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 표현 양식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태도는 전혀 다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의 작업들이 다양한 색채와 작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개입한 양식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번 작업은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작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닌 사물의 흐름을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된 형식을 채택하는 수용적인 방식의 표현 양식을 택하고 있다. 색채를 거의 없애고 묵 작업을 통해서 색채가 지닌 질감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표현해내고 있는 모습에서 “묵만 운영하여서도 색채를 구비한 것과 같으며, 이를 일러 득의라 한다. 마음이 색채에 있게 되면 물상은 어그러지고 만다”라는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의 글귀를 상기시키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이번 작업은 하나 하나 농담에서 차이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대비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작가의 예전의 성격상 그것은 마치 수행자가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과 같았을 것이다. 작업의 설명 과정에서 그러한 심정을 잠깐 내비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인내심을 갖고 사물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역으로 차츰 감정들이 침잠해 가는 모습을 보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찾아 헤매던 의식의 흐름을 어렴풋이 감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니멀리즘의 미술은 미술의 자율성에서 벗어나, 즉 미술의 중심에서 벗어나 타 분야와의 교류에서, 그리고 자신의 중심에서 벗어나 타인의 배려하는 마음에서 삶의 모습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할 포스터의 주장한 의미를 작가는 발견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가. 이전과는 달리 조금은 차분해 보이면서도 작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추어진 약간은 상기된 모습에서 나르시스적인 의식의 흐름을 벗어나 선(禪)의 십우도에서 그토록 애를 태우던 소의 흔적을 발견하고 다른 대상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끝날 지도 모르는 그 발자국을 따라 시선을 이리 저리 응시하는 동자의 상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 조관용(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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