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전형
그의 작품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이른바 전통적인 사진과는 다르다. 카메라로 찍어서 컴퓨터로 가공해서 만든 화상이다. 그의 작품이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새로운 것이라고 얘기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도 새로운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새로운 것이 출현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누구인가에 의해서 제시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발견하는 것은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것이 아주 친밀하거나 재미있는 것인가, 아니면 색다르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자극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는가? 그런 것들이 의미를 갖는 시대다.
적어도 박 재영은 산 속이나 길거리에서 무언가 결정적인 장면을 잡아내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근처 아무데에서나 볼 수 있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풀이나 보잘 것 없는 작은 꽃들을 카메라로 채집해서 그 식물들에 새로운 무기질의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갖고 있는 깊이와 크기, 형태, 택스쳐, 원근법 같은 현실적인 성징들을 극도로 단순화되어 있다. 색깔을 지우고 엽맥을 지우고 음영을 지우고 입자와 명료한 디테일을 지운 그의 사진은 리얼한 현실을 다룬 기록이라기보다는 상상이나 추상을 다룬 시적 세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느다란 줄기에 물기를 담은 넝쿨식물이나 작고 아름다운 들꽃과 곤충들은 없다. 아무리 회화적인 분위기 속에 그려지고 있을지라도, 그의 식물들은 바짝 메말라 있다.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그들이 화석화된 식물의 형해(形骸)라는 생각을 아무래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디지털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광고사진가다. 어차피 만들어진 세계를 다루는 것이 일이다. 그리고 특히 광고사진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고 있는가는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생명의 원형, - 오랜 조상으로부터의 유전자 정보마저도 디지털로 기록되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주민등록증 대신 신상정보가 기록된 전자 칩을 우리 몸 속 어딘가에 짜 넣고 다녀야 할 날이 올 것이다. 한 세기 반이 넘도록 우리의 눈과 정신을 그토록 풍요롭게 만들어온 사진은 빠르게 디지털로 바뀌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시대다. 박재영의 사진은 그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방법론의 수용과 함께, 표현의 매체나 방법이 바뀐다 할지라도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생기는 충동이야말로 여전히 작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승곤(사진평론) 金 升坤 KIM, Seung-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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