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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피해자 & 가해자 기관 없는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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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 이용한 오브제작업과 사진작업을 병행한 작품전시
정혜진의 신작들 : 기관 없는 신체(Le Corps sans Organes)


정혜진의 작업은 변화중이다. 종래의 작업들로부터 좀더 영역과 기법을 넓혀 새로운 세계로의 개화를 꿈꾼다. 갖가지 원색의 천을 잘라 바느질로 잇고, 오려붙여 여성적 감성으로 전통적 소재를 표현하던 종래의 작업으로부터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한 다소 이질적 작업으로 경도되어 가고 있다. 파리 체류기간 동안 배우고 익힌 사진기법을 통해 좀더 새로운 감각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사진매체의 매력을 깊이 탐닉하고 있다.

그녀의 사진에서 연출된 오브제들을 다루되, 특별히 생물학적 소재들로 일관되어 있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생명체들은 기록을 위한 정물적 개념이나 심미적 관조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소는 기괴하기도 하며 유쾌하기도 하지만 침묵 속에 심상치 않은 전조들을 드러내고 있다. 선인장과 인형의 팔다리가 엉클어진 화면, 손가락 끝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골무, 물고기의 입에서 토해내는 실타래, 비너스로 명명된 털이 벗겨진 식용 닭의 뒤쪽으로 쏟아져 나온 붉은 색과 흰색의 실타래. 썩어가는 과일에서 돋아나는 세라믹 재질의 싹, 혹은 인형의 팔뚝, 화초의 줄기를 동여맨 꽃보다 화려한 색실 등등... 그녀의 작업에서 보여주는 예기치 않은 오브제들의 병치는 한편으론 “수술대 위에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상봉이라는 로트레아몽의 유명한 싯귀처럼 초현실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보면 오브제들의 우연한 만남이라기보다는 대상들을 서로 묶고, 꿰매고, 엮는 그녀의 태도에서 무언가 만남의 필연성을 설정하려는 그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사진작업을 시작하기 전 지속적으로 추구해오던 천작업에서의 기법과 같은 문맥을 가진다.

또한 작품전체를 관통하는 생체공학적 사고는 이러한 설정에 또 다른 요소를 제공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생물학적 형태는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 썩은 모과의 표면에서 공학적 소재의 싹이 난다든지, 식물의 줄기나 열매에 컴퓨터 칩이나 실리콘이 접합되어 있다든지..생물체가 정상적으로 가진 ‘기관organ’으로 보기엔 어려운 변형된 기관으로서의 형상들을 보게 된다. 그녀의 이러한 작업은 대상에 대한 인습적 사고의 틀을 깨며, 인간적 능력의 한계들을 뛰어 넘도록 이끌며, 소위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의 경계를 넘어 무한대로 발전하게 만들고자하는 의도가 조심스럽게 숨겨져 있다.




유기체에 있어 ‘기관器官 ’이란 손,발,머리,배,입,혀, 등과 같이 다세포 생물의 체내에 있으며, 몇 종류의 조직이 모여서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일정한 기능을 하며 형태적으로 독립성이 있는 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제시하는 유기체들은 돌연변이이거나 잡종, 아니 자연과학적 상식으로는 존재가 불가능한 유기체처럼 보인다. 또한 기능을 상실한 유기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의 신체로 존재하지만 각각의 기관들이 혼재하거나 유동적인, 이른바 들뢰즈(G.Deleuze)와 가타리(F.Guattari)가 말하는 ‘기관 없는 신체’의 개념과 닿아있다.

하나의 수정란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계속분할하며, 각각의 표면은 거기에 주어지는 조건이나 자극에 따라 특정부위가 독립된 기관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수정란이나 알은 ‘기관 없는 신체’로, 하나의 잠재성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잠재성은 현실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란 점에서 현실과 대립되는 개념인 가능성과 구별된다. 가능성이 현실이 아닌 것이라면 잠재성은 현실적인 것이며, 다만 지금 현재화되어있는 현재성과 대립되는 것이다. 잠재성은 어떤 현실적인 것도 고정될 수 없고 확고부동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변화 상태에 있음을 보이는 것이며, 현재적이고 지배적인 것의 확고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되고 생성되는 새로운 힘을 보는 것이다.




그녀 작업은 모든 낡은 습속에서 벗어난 유기체(신체), 모든 기관화된 사용으로부터 벗어난 유기체(신체)를 지향한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아르토의 ‘잔혹극’의 개념이 연상되어진다. 아르토(A.Artaud) 는 잔혹극이라는 새로운 연극개념을 통해서 연극을 전에 없던 새로운 것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인간의 습관화된 한계들, 인간적 능력의 한계들을 뛰어 넘도록 이끌며, 소위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의 경계를 넘어 무한대로 발전하게 만들기를 원했다. 그에게 있어 연극이란 낡은 습속에 길든 사람들의 감각을 바꾸고, 신체적 리듬을 바꾸고, 삶 자체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 있어 잔혹성이란 “잔인하게 칼로 자른 코나 귀를 주머니에 담아 우편으로 부치는 행위를 실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사물이 우리를 향해 끼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며 필연적인 것”이다. 그의 잔혹연극이 신체를 겨냥하는 바는 기관 자체를 다른 기관으로, 혹은 다른 신체, 다른 ’나‘의 신체로 바꾸어 놓으려는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벗어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새로운 삶의 양상을 지배하기를 꿈꾼다.




우리의 신체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유기적 통일성야 말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장점이라는 통일적 생각은 우리의 상식이며 지배적 관념이다. 이는 19세기 생물학에서‘ 생명’이라는 개념이 기관들을 하나로 통합된 유기체로 만들면서 나타났던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푸코(M.Foucault)가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퀴비에(G.Cuvier)이후 생물학은 형태적 동일성과 차이에 따른 분류대신 ‘생명’이란 하나의 중심개념을 통해, 그것에 봉사하고 복무하는 기능에 따라 기관들을 정의하고 분류하였다. 유기체란 각각의 부분들이 생명을 목적으로 하여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 되게 만드는 그런 통합된 신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유기화는 하나의 로고스를 중심으로 부분들을 통합하고 통일하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특정한 하나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고정하는 것이다.




‘기관없는 신체’는 우리의 삶 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모든 인습적 사유 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깨어있는 인식으로 인습적 사유의 해체를 통해 기관 없는 신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데 의미가 있다. 기관 없는 신체를 추구하는 일은 모든 기관을 제거하는 것이나 모든 인습적 사유를 파괴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쉬운데, 이럴 경우 어둡고 음울한 파괴의 이미지로, 죽음으로 귀착될 실패의 이미지로 채색될 수 있다. 기관 없는 신체의 목표가 설정될 때, 자칫하면 생성과 창조,순수잠재성의 확장이 아니라, 반대로 죽음과 공허함으로 귀착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몸과 신체에 대한 담론이 근자에 들어 미술영역에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 이유역시 ‘기관 없는 신체’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 인습적인 관념으로서의 신체를 해체하고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신체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온전한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는 태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는 편집증적 신체나 분열적 신체, 약물중독적 신체, 마조히스트의 신체 등 매우 부정적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기관 없는 신체를 만드는 목적은 기관이 제거된 신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관들을 제거하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새로운 흐름으로 채우는 것, 그것을 통해 새로운 신체로, 새로운 ‘나’로 재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혜진은 그녀의 작품을 통해, 인습적 신체를 해체하는 시도를 꾀하고 있다. 이는 관습적으로 이해되어지는 유기체적 사고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서로 무관한 요소들의 상관성을 찾고 탐구한다. 그녀의 방식은 주로 무기물과 유기물의 결합을 통해 제3의 신체를 만드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생체공학적 사고를 통한 긍정적 상상력의 구현으로 이해되어진다. 특히 시들어 있거나 썩어가는 또는 생명이 끊긴 유기체에 싹이라든가, 꽃을 연결시킨다. 아니면 그러한 오브제에 새로운 미적가치의 회복을 꿈꾸는 명제들을 부여함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일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관 없는 신체’를 제안한다. 그의 새로운 신체는 새로운 생명의 소생과 관련되어 있다. 그녀는 관습적 사유인 유기체적 사유를 조심스럽게 해체하려하며 유기체적 지층을 벗어나고자 한다. 유기체의 해체는 결코 자살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언제나 어떤 새로운 배치를 전제로 하는 접속에, 그 회로들에, 그 수준과 경계들에 신체를 개방하는 것이다.

그녀의 신작에서 보여주는 시도는 요가를 하는 인도의 요기처럼, 단순히 생명을 보존하는 것과는 다른 배치 안에서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활동을 통해 다른 종류의 신체, 다른 종류의 기관을 가지려는 노력이며, 기존의 신체적 지층을 탈피하여 다른 지층으로 만들려는 태도이다. 그녀의 작업은 이렇듯 기관 없는 신체를 향한 노정의 출발점에 막 첫발을 내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쁨과 희열, 설레임으로 새로운 영토를 향해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선택한 여행인 '기관 없는 신체'의 구현은 관념이나 개념이 아니라 실천, 실천의 집합이다. 기관 없는 신체는 우리가 결코 도달하지 못하며, 도달할 수도 없지만, 거기에 접근하려는 것을 끝내버릴 수도 없다. 그것은 극한이기 때문이다.


김찬동│전시기획자, 문예진흥원 미술전문위원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는 천을 이용한 오브제작업과 사진작업을 병행하는 정혜진의 개인전 「피해자&가해자: 기관 없는 신체」을 개최한다. 정혜진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에꼴 데 보자르 베르사이유에서 사진을 전공하였다. 한국에서는 5년 만에 갖는 전시이다.

정혜진은 여성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이질적인 대상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무기물과 유기물의 결합을 통하여 제3의 신체,「기관 없는 신체」를 창조하고 여기에 새로운 미적 가치를 회복하여,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며 사진과 회화의 영역과 기법을 확장하고 있는 정혜진의 이번 작품은 근본적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찾기를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을 꼬집는다.

이번「피해자&가해자: 기관 없는 신체」전시에서는 천을 이용한 오브제와 사진영역으로 확장된 작품세계를 만난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절단과 교접 등 생물학적 실험에 의해 제 3의 신체로 거듭난다. 결핍과 욕망의 재단과 바느질이 이들 신체에 깊게 새겨진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데, 다소 기괴하고 유쾌한 듯 심상치 않은 전조를 드러낸다. 선인장과 인형의 팔다리가 엉클어진 화면, 손가락 끝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골무 등은 “수술대 위에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상봉”이라는 로트레아몽의 싯귀처럼 초현실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이라기보다는 대상들을 서로 묶고, 꿰매고, 엮는 그의 태도에서 만남의 필연성을 설정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사진작업을 시작하기 전 지속적으로 추구해오던 천 작업에서의 기법과 동일한 문맥을 갖는다.

또한 작품전체에서 보여지는 생체공학적 사고는 이러한 설정에 다른 요소를 제공한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형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 썩어 가는 과일에서 돋아나는 세라믹 싹, 혹은 인형의 팔뚝 등 생물체의 정상적인 ‘기관 organ'으로 보기엔 어려운 변형된 기관의 형상이다. 이러한 작업은 대상에 대한 인습적 사고의 틀을 깨며, 인간적 능력의 한계들을 뛰어넘도록 이끄는데 그 속에는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의 경계를 넘어 무한대로 발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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