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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소박미에 대한 예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1992년 부터 지금껏 주로 인물초상조각에 매진 해온 최진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은 단순성과 소박함이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형태를 통해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점은 그가 모델로 활동할 만큼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극적인 대조를 보여준다. 그는 주로 돌을 재료로 사람의 초상을 표현하여 왔으나 재현과 묘사에 충실하기 보다 어떤 '전형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그가 만든 형태는 특정인물의 외양(外樣)이 아니라 장승이나 벅수 등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인간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것을 연상하게 만든다. 특히 동세를 억제하고 정면성을 강조한 조각작품은 고대 오리엔트 조상(彫像)이 지닌 엄숙성이나 초월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최진호의 작품에는 기념비성이 없다. 작품의 크기는 작고 형태 또한 고졸(古拙)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보는 사람을 위압하는 거상의 풍모보다 화순에 있는 운주사(雲舟寺)의 여기저기에 마치 무심한 듯 놓여진 불상이나 혹은 강진 무위사(無爲寺)와 같은 사찰에 있는 이른바 민불(民佛)의 수더분하고 정겨운 형상에 더 가깝다. 실제로 그가 이런 형태를 추구한 것도 대학시절에 운주사 답사를 통해 보았던 불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고 한다.
운주사의 불상 중에서 특히 미래세계의 부처인 미륵이 많은점도 특이한데 그 형태가 한결같이 형태의 세련이나 기술의 숙련성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운주사의 석불들은 그야말로 천연덕스럽고 소탈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이 석불들은 속세의 번뇌나 민중을 제도하기 위한 위엄어린 표정, 그리고 장인의 뛰어난 솜씨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는데 최진호가 석불들로부터 발견한 것은 이러한 꾸밈없는 소박성일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여행하였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본 조각상이나 칠레령의 이스터 섬에 서 있는 석상들과의 만남은 자신의 작업이 한국의 토속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고갱(Paul Gauguin)이 타이티 섬에서 제작하였던 일련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것 과도 같은 나이브(naive)조각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최진호가 표현한 인물들에서 공격성, 분노, 절망과도 같은 파토스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 그것은 그가 지닌 천성적인 낙천성에 기인한 탓일 것이다. 이렇듯 우아한 선과 볼륨, 안정된 비례의 아름다움을 지닌 인체보다 주로 하나의 덩어리로 구현된 반신상의 인물초상에 주력해오던 그가 이번에는 해태란 상상의 동물을 소재로, 그것도 복제의 형식을 통해 표현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해태란 상상에 의해 가공된 동물인데 시비(是菲)와 선악(善堊)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지며 달리 '해치'라고도 불린다. 그 형태를 보면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어서 서양전설 속에 등장하면서 법과 정의(正義)를 상징하는 유니콘(Unicorn)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한대의 양부(揚孚)가 지은 『이물지(異物志)』란 책에는 해태에 대해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으로서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그 중에서 품행이 옳지 못한 사람을 뿔로 공격한다" 라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봉황, 기린 등의 동물처럼 상스러운 상상의 동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의로운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동물이므로 조선시대 관직 중에서 관원의 비리를 조사하고 탄핵했던 사헌부 고위관직 중에서 대사헌의 흉배 장식에 해태의 형상을 수놓기도 했다. 그러나 해태는 무엇보다 건축조각이나 왕릉조각으로 등장한다. 즉, 해태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과 길운을 가져오는 신수(神獸)로 간주되 광화문 앞이나 경복궁 근정전 월대(越臺)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건축에 부속된 장식물로 설치되거나 혹은 행정구역의 경계선에 놓였던 것이다.
그 중 광화문에 놓여진 해태는 그 털이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장식되어 있어서 이 상상의 동물에게 맡겨진 소임이 화재진압에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반면 근정전 월대에 놓여진 해태상은 대부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정전(正殿) 앞으로 흐르던 냇물에 놓여진 다리 난간에 새겨진 해태상은 그 물길을 무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창덕궁 금천교(錦川僑)밑 흥예에 설치된 해태상을 들 수 있다. 이 해태상은 기능적으로 물길을 타고 궁으로 침입하려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그 형태가 틀에 박힌 규범으로 부터 벗어난 것이어서 흥미를 끈다.
아무튼 해태는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의 명칭이자 엠블렘으로 사용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동물임에 분명하여 비단 궁궐이나 행정구역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 뿐만 아니라 가게나 저택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 사랑을 받고 있다. 궁궐을 수호하는 신수로 제작될 경우 당대의 뛰어난 장인들에게 제작을 의뢰하였을 것이므로 그 조각솜씨는 일품(逸品)이었겠으나 민간사회에서 사용된 도상은 거의 유형화된 것인데 최진호는 이러한 해태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복제성을 도입하여 민속미술의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에서 볼 수 있는 건강미를 되살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보여주고 있는 복제란 방법은 키치와도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수공의 능력이 작품의 우열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이의제기이자 복수성(Multiplicity)은 유일성(Uniqueness)의 신화에 대한 반란으로 볼 수있다. 그가 만든 해태는 그가 예전에 표현한 인물상이 사납다거나 어딘지 위험한 인간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던 것처럼 차라리 우둔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위풍당당하고 위압적인 맹수가 아니라 엉거주춤하고 다소 의기소침해 보이기조차한 이 해태상들은 민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간과 친숙한 범의 모습과 어딘지 닮아 있다. 이런 점들은 그의 평범하지 않는 외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세련됨에의 예측을 빗나가게 만드는 한편 그의 미적 관심이 소박성에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그는 작은 크기로 재현된 해태상들을 바닥에 늘어 놓음으써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윤리를 일깨우려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느면에서 다소 멍청해 보이지만 척사(斥邪)와 수호의 본분에 충실한 이 상상의 동물을 통해 우리의 심층무의식에 잠재된 보편적 믿음이자 삶의 지표인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수신(修身), 선량함의 가치를 되짚어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만들어 내는 온갖 재앙 앞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우리 스스로에게 해태는 잃어버린 순수이기도 하다. 그는 그 순수의 실마리라도 잡기 위해 이 무수하게 많은 해태상 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태만│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