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홍승혜는 극소의 단위 '픽셀'을 이용하여 극도로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만들어낸다. 또한 회화, 설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예술행위에 따른 시각적 효과를 공간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색다른 경험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홍승혜가 추구하고 있는 픽셀 이미지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선적 구성이 형성되고 공간을 이루는 기존의 각도에 개입시키면서 원래 상태로 존재했던 공간을 뒤틀어 놓게 되며, 이로써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들 표현을 위하여 작가는 기본적으로 벽화 작업을 구성하는데, 이는 공공미술의 성격을 띠면서 캔버스나 특정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정통적인 방식보다는 대중적인 요소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장소성의 문제와도 결부되며, 다양한 조합과 변화를 보여주는 픽셀의 구성이 공간의 성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생명력 있는 변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작가의 성향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애니메이션도 선보이게 되는데 음악과 함께 시각적 최소 단위인 픽셀의 시각적인 움직임의 조합을 만끽할 수 있다.
홍승혜는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주제 속에서 작업활동을 해 오고 있다. 작가의 초기 작품에서는 자연으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와서 표현해 왔으며 최근 몇년 동안은 직접적인 자연물을 다루기 보다는 픽셀이라는 기하학적 이미지의 최소 단위에 생명력을 불어놓고 이를 유기적으로 다루고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픽셀은 반복되지만 그 정렬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며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확장과 변화 등은 전통적 회화에서 쓰이는 붓과 물감을 이용한 작업과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지닌 이미지를 탄생하게 한다.
유기적 기하학
재 료 : 슬라이드, 4가지 색상의 페인트
에디션 : 5개
벽면을 가로로 이등분하여 왼쪽은 살구색, 오른쪽은 흰색으로 채색한다. 주어진 비례에 맞추어 양쪽 면에 (왼쪽은 중심을 기준으로 상단에, 오른쪽은 하단에) 각각 슬라이드를 투사하여 이미지 안에 하늘색 페인트를 칠한다. 마지막으로 왼쪽 이미지의 선을 따라 검은 페인트로 채색한다. 벽면의 비례가 변경될 경우에는 창문 형태의 위치만 고정시키고 나머지 면은 페인트로 채색한다. 3가지 색상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유기적 기하학, Organic Geometry
'유기적 기하학' 시리즈는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픽셀(pixel)을 근간으로 한 발아하는 생명체로서의 기하학적 형태의 생성방식과 그 형태들이 구축하는 건축적 공간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다. 일견 삭막하고 건조해 보이지만 이제는 제 2의 자연이 되어버린 인공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에 자연의 생명력과 온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 본인의 희망이다. 이는 자연 파괴적 기계문명, 나아가 현대문명을 포용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컴퓨터의 픽셀을 쌓아올려 재현되는 다양한 기존의 기하학적 형태들은 축소와 확대, 미시와 거시, 질서와 파격, 순열과 조합, 논리와 우연 등 가능한 모든 이율배반의 유희를 통해 교란되고 증식되며, 이 형태들은 어느 순간 무한히 발아하고 번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유기체로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철판, 유리, 타일 등 주로 건축적 재료를 통해 구현되어온 이 작업은 최근 빛, 소리, 텍스트 등 인간의 정신적 물리적 환경을 이루는 보다 포괄적인 요소들로 그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이러한 형태들을 움직여 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했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유기적 측면의 극대화라 할 수 있다. 'The Sentimental' 시리즈는 본인의 견해에서 볼 때 '매우 감상적'이라고 느껴지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선정하고, 그 곡들의 흐름에 맞춰 flash animation으로 기하학적 형태들의 안무를 시도하는 작업이다. '픽셀들의 춤'으로도 대변될 수 있는 이 작업은 이전의 정적인 작업에 비해 시간이 개입됨으로써 작가의 감정의 행보를 보다 역동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몹시 흥미롭다.
인간의 근원적 정서인 '감상(感傷)', 그 단어가 지닌 부정적 측면의 긍정적 측면을 '추상(抽象, abstract)'하기 위한 이 작업들은 '유기적 기하학적 모순'의 극복을 시도하는 또하나의 번안(飜案)이기도 하다.
2004. 3
홍승혜의 작가노트에서
86년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첫 개인전을 열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홍승혜는 지난 17년 동안 독자적인 회화의 세계를 구축했다. 글로벌과 로컬의 이슈나 페미니즘적 시각이 주목을 받던 90년대에 그녀가 조용히 실시한 평면과 공간, 형태와 기호, 시각과 인식에 대한 실험은 이제 신선함과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승혜의 작업은 한동안 도외시되었던 회화라는 장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제안들 중 하나로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그녀가 이룬 추상과 구상, 회화와 오브제, 평면과 공간을 넘나드는 세계는 한국 현대 회화 안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부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초기 작품들은 꽃, 집, 구름, 나무 등으로 읽히는 단순한 형태들이 부유하는 서정적인 회화 공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찍부터 패턴을 이용하여 같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등 기계적인 제작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이러한 관심은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예견할 수 없었던 모험과 혁신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초기 컴퓨터의 해상도 낮은 화면은 작가가 그리는 모든 이미지를 단순화, 추상화, 기호화하였다. 픽셀의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그려진 간단한 기호들을 복사하고, 붙이고, 자르는 컴퓨터 기능을 활용하여 새로운 기호나 이미지를 만드는가 하면, 단위의 개념을 창출해냈다. 이때부터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이 시작되었다.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포괄적인 제목은 기하학적 도형이 단위가 되어 유기적으로 결합, 증식하는 자가 생산을 암시한다. 그러나 홍승혜의 작품은 오토마티즘의 우연한 결과물들이라기보다는 면밀하게 계산된, 적어도 명쾌하게 의식된 전체와 부분, 형상과 의미 간의 변증법적 유희이다.
제한된 요소들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운용하면서 우연이나 재기로서 전혀 새로운 도형이나 상황을 만드는 행위를 '유희'라 할 때, 유희야 말로 홍승혜 작업의 키워드라 하겠다. 유희에 의해서 단순한 십자가와 사각형은 창과 집과 도시가 되기도 하고, 도표와 건축 사이에 묘한 조응이 생겨나기도 한다. 인습적인 규칙과 의도적인 어긋남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인식적 유희는 홍승혜의 지극히 얇은 평면에(일찍이 깊이의 일루젼을 거부한 작가는 실크 스크린, 폴리우레탄 페인팅, 알루미늄판, 세라믹 타일을 사용한다.) 새로운 깊이를 준다.
홍승혜의 인공적, 기계적 회화는 그 구체성과 장식성으로 현실 공간에 쉽게 접속하고 그와의 유희를 모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동어반복적인 자기 확대의 결과가 아니다. 홍승혜의 세계는 규율과 법칙을 의식하되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동시에 자기 한정적이며 유희와 반성이 있는, 민첩하고 쾌활한 정신의 공간이다.
김애령,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 2003 아트선재
배리 슈왑스키 < Vitamin P > Phaidon Press 2002한국은 아쉽게도 국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깜짝 놀랄 만큼 풍부한 후기 모던 추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늘 궁금한 점은 이러한 추상 작품들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깊이 근본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환기의 훌륭한 1970년대 작품에서 보이는 지루할 만큼 반복되는 색으로 이루어진 셀(cell)의 축적이 이루는 광대한 벌판은 김환기 세대의 작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연결 고리인 논으로 해석될 수 있다. 금세기 초에 태어난 그는 그가 자란 풍경의 기억으로부터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아직까지도 김환기류의 작품들이 오늘날 한국 작가들에게 사용 가능한 모델이 되기도 하나, 1959년 생인 홍승혜의 작품들은 광대하게 다른 기억을 가진 - 대부분 도시적 기억인 - 매우 다른 세대의 범주에 속한다. 홍승혜의 세대에는 서울의 인구가 600퍼센트 이상 증가했고, 지역의 크기는 두 배 이상 확장됐다. 도시화는 전쟁 후 한국 삶에서 가장 주요한 경험중의 하나이다. 김환기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홍승혜의 작품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셀(cell)같은 모듈의 축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전원적이거나 탁 트인 전망을 제시하지 않고 가족적, 건축적, 그리고 도시적인 풍경을 구축한다. 이러한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단위들은 예를 들어 사각형의 격자판과 같이 완벽히 추상적일 수도 있고, 4개나 9개의 작은 사각형들로 만들어진 사각형이 창문으로 보여질 때와 같이 추상과 묘사 사이에서 완벽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집이란 개념을 위한 로고와 같은 도식적인 표현이 되기도 한다. 홍승혜는 오래 전부터 비전통적인 매체를 통한 회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1990년대 초ㆍ중반, 그녀의 작품들은 기하화된 나무, 꽃, 집 등, 고도로 정제된 이미지들을 형성하고 있는 채색된 종이들의 꼴라주였다. 미국 관람객의 눈에는 1970년대 후반의 Jennifer Bartlett의 이미지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이 작품들은 크기는 대단치 않으나 최대의 회화적 무게를 싣고 있다. 이 작품들이 그저 취미생의 소일거리라고 고의적으로 환기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후로 홍승혜는 타일에 실크스크린이나 알루미늄 판 위에 자동차 도료를 사용하며, 주로 공업적 방식으로 작품들이 제작되도록 컴퓨터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비록 작가의 손길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 보여지지는 않지만, 결합된 단위의 연속 안에서의 변주는 또렷하고 그래픽하기만 할 작품에 생생한 유기적 예측 불허감과 촉감을 부여한다.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은 분명 일상생활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또한 다시 그리로 돌아갈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재령이 말한대로 이 모듈식 배열들은 건축적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 적용되기를 부르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밝고 반짝이고 순수하나 명쾌한 작품 속에서 무엇보다 날카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점은, 정확히 말해 이 작품이 장소 없는 가정, 집 없는 건축, 부재적 주거를 일깨운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개인의 객관적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 미묘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