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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적 자연 안에서 반복되는 인간 삶에 대한 원형적 접근과 사색을 보여주는 Lia LaimbÖck 유화 38점
Biennale Nederlandse Figuratieve Kunst 2004(네델란드 구상예술 비엔날레)수상자로 선정된 Lia LaimbÖck(39)은 90년대 초에 시작한 17세기 네델란드 인물화가 연상되는 초상화 작업으로 주목받은 바 있으며, 보르네오,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제 3세계 어린이를 위한 음악과 춤, 마임과 마술로 구성된 공연 여행을 하고, 1990년대 말부터 인간 근원에 대한 호기심, 자연과 기계문명의 관계에 대한 반성을 구상회화작업으로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전력의 작가입니다.
이 개성있는 작가는 정글과 같은 원시의 환경과 그 속에 자생하는 각종 동식물에게서 받은 깊은 인상을 화폭에 담기 위해, 다큐멘터리와 현미경 보기를 즐겨하며 여행 중에도 그곳에 서식하는 새를 스케치할 만큼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사색에 천착합니다. 추상예술이 주도적인 미술계에서 근원적 자연세계에 대한 상상과 환상을 우직하게 표현하는 그의 회화는 Hans Holbein, Gustav Klimt, Ferdinand Hodler와 같은 앞서간 거장들의 치밀한 묘사력과 명확성을 이어받은 동시에 이들 회화에서 보이는 일상의 소재들을 상징화하는 해석방법에도 매료되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생명의 탄생과 삶, 죽음이라는 친숙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생물학적 사건들에 관한 알레고리를 통해 인간 근원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그는 밀도있는 묘사와 풍부한 색채 그리고 투명하고 빛나는 화면 표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순환적 자연 안에서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 더 나아가 생명의 풍경들, 그 창조와 진화 그리고 쇠락을 은유하는 이미지들을 상징적으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인공과 산업, 테크놀로지의 도시 환경에 의존하며, 더위와 추위에 약하고 미미한 바이러스나 조그만 벌레가 끼치는 영향도 두려워하는, 왜소해진 동시대인들에게 그의 회화는 초자연적 정령들,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삶의 형태 그리고 우주의 원리와 생명을 구성하는 미시적 세계에 이르는 다양한 파노라마를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토템적 주술로서 읽혀집니다.
또한 전통적인 신화화나 상징화로 보여 지기 쉬운 그의 작품은 실은 설화의 주인공과 같이 서있는 공허한 인물, 동물원이나 자연재해를 피해 공업단지를 배회하는 동물들, 유전공학의 실패한 실험물처럼 보이는 존재들 그리고 쇠락한 문명의 황량한 풍경 등으로 구현한 현대성의 이면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해석입니다.
밤과 낮, 자연과 진화, 인간과 산업사회와 같은 근원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신선한 상상력을 통해 무대의 한 장면처럼 풀어나가는 작가의 예술세계는 참으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장민│환기미술관 큐레이터
거부할 수 없는 회화의 매력
리아라임뵈크 초대전 7.9-9.26 환기미술관
환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의 젊은 작가 리아 라임뵈크 초대전에서는 오랜만에 그림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라임뵈크의 작품은 인간세계와 자연세계가 긴밀하게 조우하는 초시간적인 공간 속에 작가의 회화적 상상력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의 작품은 탄탄한 회화적 실체로 우리 앞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세계는 꿈결처럼 몽환적이고 신비롭다. 우리는 구체적인 회화적실체로 존재하는 그의 작품 앞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백일몽의 순간을 체험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장 구체적이고 근원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65년 네덜란드에서 출생한 리아 라임뵈크는 헤이그 왕립미술아카데미(Royal Academy of Visual Arts)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1990년대 초 전통적인 초상화 작품으로 화단에 등장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라임뵈크의 작품에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회화의 종말이 선언된 지 오래인 시점에 그는 대형 캔버스를 선택하여 벽화 규모에 가까운 대규모 회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으며 회화에 대한 재해석과 해체작업까지 이미 완료된 시점에 라임뵈크는 가장 회화적인 선택으로 회귀했다.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매체작업에 눈을 돌리는 시점에 라임뵈크는 가장 근원적인 미술의 문제, 인간의 문제에 눈을 돌렸다.
초상화의 상업적인 크기를 포기한 라임뵈크가 대형캔버스위에 과감하게 펼쳐놓는 주제들 역시다분히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인간의 탄생과 성장, 죽음 등 고전적이고 신화적인 문제였다. 회화의 종말이 선언된 시점에 과감하게 회화에 매진하기 시작한 라임뵈크의 선택이 시대착오적이라면, 이러한 주제의 선택역시 그에 못지않게 과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주목을 받을 만하다. 오늘날 구상과 추상의 공방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며, 미술 또는 회화라는 장르 역시 더 이상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라임뵈크가 탄탄한 회화적 기법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펼쳐 보여주는 회화세계는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그 근원적 시원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인 「밤-낮-밤」은 신비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과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눈에 인간의 삶에 대한 알레고리적인 표현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식상하다 못해 자칫 진부하게 보일 수 있는 이 주제가 생생한 감동으로 재현되어 있다. 우리는 라임뵈크의 그림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 자신의 존재, 인간본연의 모습, 생명의 유기체적인 순환과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최근의 연작 작품에서는 현대 산업의 흉물스런 공장이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낯선 아름다움으로 포착되어 있으며, 시공을 초월한 듯한 그 장면에 브라질 밀림에서 볼 수 있음직한 낯선 동물들이 배회하고 있다. 산업화된 현대 사회에 있어 푸른 숲이 더 이상 이상적인 자연이 아니듯이 기계적인 공장설비는 우리를 둘러싼 인공의 자연으로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획득하고 있다. 산업현장은 21세기의 유기체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고, 거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낯선 외계의 생명체처럼 기이하게 보인다.
라임뵈크의 작품이 보여주는 신선한 즐거움은 회화가 여전히 이러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데서 온다.
미술의 종말이 언급된 지 오래인 시점에 회화적 재현에 충실할 수 있는 결단과 그러한 진지함이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즐거움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원론적인 출발점에 충실한 회화, 그리고 회화적 방법이 아니고서는 달리 재현할 수 없는 투명한 색채와 작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붓터치,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의 오랜 회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그것을 현대적 감수성으로 증류해 내는 라임뵈크의 회화적 저력을 통해서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과 그것을 나누는 즐거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권영진 Ph.D│미술사 -
미술세계 2004년 8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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