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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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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환상 (보이지 않는 손의 작업)


미술이 근원적인 자유가 아니라, 규율과 실체감을 가져오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또는 그것의 절대화와 실체화를 통하여 군림하면서, 정신적인 예속을 가져오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늘 마음속을 떠다닌다. 미술이 현실에 의미를 가져오고, 그 의미 속에 사람들을 감금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미술이 과연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과 회의도 든다. 근본적으로 미술은 예속이 아니라 자유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고, 그래서 더 이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라지만 그러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인간세계가 표면적으로 급격하게 변화한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하여 있는 권력이나, 이념들은 시대를 달리하며, 예속과 구속을 강요하고, 그러한 강요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늘 앉는 의자 하나에도 권력과 의미를 끌어들여 예속의 세계를 펼쳐 놓는다. 크기가 정해지고, 앉을 순서가 정해지고, 의미가 부여된다. 의자는 의자가 아니라, 규범이 되고, 규율이 되고, 관념이 되고, 질서가 된다.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에 있어서 인위적인 선택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가급적이면 내 안에 있는 자연적인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고자 한다.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미셀 푸코가 말했듯이 거부하기 위하여 정교한 체계 속에 스며들어 갈 경우, 그것을 거부하기보다는 그것에 예속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전제가 잘못된 논리의 미로 속에 들어간다면 오류의 늪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애초부터 그 잘못된 전제를 거부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실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위적인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낯선 공간 속에서 사물과 조명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부단히 바꾸어 보고, 오브제를 붙였다가 떼기도 하고, 색채를 이렇게 저렇게 칠하다보면 마치 어둠 속에서 어느 순간 불빛이 환하게 켜지듯이 선명한 감흥이 마음속에 찾아올 때가 있다. 인위적인 계산과 판단을 버리면 버릴수록 자연적인 흐름이 그 모든 작업을 이끄는 것을 느낀다. 마치 마음속의 또 다른 눈과 손이 그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의자는 그 어떤 기존의 관념으로 해석되는 것을 거부하는 독자적인 생명체가 된다. 하지만 하나의 시선만으로 보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사실 어떻게 읽혀진다 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강요하는 것이지, 의자 위에 수북히 쌓인 의미들은 공감들이고, 그것들이 자신을 기만과 권위로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자유의 빛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억 년의 세월을 스쳐 부는 바람은 인위적인 모든 것을 하나의 기만과 환상으로 치환시키면서 불어온다. 그러한 바람이 내가 만든 의자 위에 가득하기를 바랄 뿐이다.

2004. 10. 13. 정 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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