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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판즈:가면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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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에 5인의 중국 아방가르드 전을 통해 소개된바 있는 작가는 가면을 주제로 인간의 내면과 외부세계 사미의 모순과 결점을 그려온 중국 아방가르드 대표작가인 쩡판즈 전시이다.

이번 Unmask the Mask - Zeng Fanzhi 展은 1994년부터 7년간 지속적으로 그려온 "마스크 시리즈"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쩡판즈의 신작들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전시는 가면시리즈 이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보이는 작품들은 가면을 벗어 던진 인물 초상과 풍경으로 나뉘어 진다. 가면 대신 감정표현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화면 전체를 연속된 동그라미나 곡선의 스크레치를 이용해 중화 시키고 있는 초상 시리즈는 2003년도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미디어와 개념미술에 밀려 구상회화, 특히 인물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물 그리고 풍경을 통해 현대사회의 모순을 그려내고 있는 쩡판즈의 작품은 더욱 가치를 발하게 될 것이다.




쩡판즈 – 가면을 벗다


누구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얼굴을 선택할 자유는 없다. 여기서 비극은 시작된다. 그런데 모두들 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길 꺼려한다. 화가 나도 즐거운 척, 싫어도 좋은 척. 이처럼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진짜 얼굴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담아내는 진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즈음 우리들의 얼굴엔 표정을 상실한 가면이 겹겹이 쌓인다. 매일매일 변하는 사회상황과 문맥 속에서, 서로 다른 가면을 꺼내 들어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기에 바쁘다. 보이지만 않을 뿐, 이미 가면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안전장치가 되어 버렸다.




쩡판즈는 가면을 주제로 인간의 내면과 외부세계 사이의 모순과 결절을 그려 온 작가다. 폭염이 한참이던 여름이면 얼린 고깃덩어리 위에서 낮잠 자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던 우한(武漢)에서 1964년 태어난 작가는, 1993년 베이징으로 오기까지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키는 사람들의 군상을 그려 왔다. 그 뒤 1994년부터 시작된 가면 시리즈는 베이징이라는 거대 도시가 내 뿜고 있는 허영, 기만, 자기만족, 고독, 이질감 속에서 홀로 서야 했던 작가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이 시기의 작품의 주제는 인간 군상에서 단독상으로 바뀌고, 붉은 핏빛의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팔레트 나이프를 이용해 인물을 더욱 두드러지게 유도하는 대신 배경공간의 깊이를 없애고,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추측할 수 없는 기괴한 그림자 처리를 통해 현실과의 개연성 또한 단절시킨다. 그리고 과장된 눈동자와 커다란 얼굴 위에는 어김없이 하얀 가면을 씌운다. 재미있는 것은 가면과 얼굴 피부가 밀착되어 표정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인데, 여기서 우리는 쩡판즈의 가면이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얼굴의 표정과 마음까지 통제해 버리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몇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과장되게 웃고 있는 가면으로 인해 이 역시 거짓된 제스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97년도부터는 파란색과 노란색, 그리고 옅은 장미빛 분홍색이 만들어낸 배경위에 보다 세련된 인물들을 그려낸다. 더욱 안정된 자세와 표정은 물론이고 굵은 핏줄이 보였던 거대한 손 역시 그 혈기왕성함을 다스리며 다소곳해진다. 마스크와 함께하는 삶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이며, 이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 들이고 있는 작가의 변화된 태도가 엿보인다.






2003년 들어서 쩡판즈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그려낸다.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 ‘我(I/Me).’ 눈 코 입 등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최소한의 단서들만 남겨진 얼굴 위로 연속된 동그라미의 붓 터치가 미끄러진다. 덕분에 분명한 윤곽을 보였던 얼굴은 점차 사라지고, 그나마 알 수 있었던 개인의 정체성과 그 흔적은 동그라미 패턴 속으로 묻혀 버린다. 물감이 마르기 전 시작된 동그라미 붓질은 캔버스 구석구석을 점령해 나가며 화면 전체에 ‘해체’, ‘파괴’, ‘부정’의 느낌을 연출해낸다. 이 같은 해체주의적 움직임이 반복되면 될수록 추상성의 정도는 더욱 높아 지고, 특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얼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몰개성의 익명성으로 변해버린다. 가면 대신 추상화된 패턴 드로잉이 개인의 정체성을 지워가고 있는 셈이다. 아니 어쩌면 과거 자신을 규정했던 사회적 아이덴터티를 지워가는 퍼포먼스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점이 흔들린 카메라에 잡힌 얼굴처럼, 왜곡된 홀로그램처럼 그것을 완벽하게 지울 수도 다시 재현할 수 도 없는 듯 하다.





이전 시기에 보여주었던 뚜렷한 외곽선과 선명한 원색 화면에 대조를 이루며, 경계가 무너져 내린 모호한 추상성으로 향하고 있는 쩡판즈의 새로운 스타일은 결과적으로 구상회화가 담아내고 있는 서사적 구조까지 무너뜨린다. 대신 이미지의 구축과 해체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간섭현상에 주목하면서, 쩡판즈는 ‘구상성’과 ‘추상성’, ‘인위성’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표현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오른손에 두 개의 붓을 들고 동시에 움직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만남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그 것인데, 작가는 이 방법을 통해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도 좀더 설득력 있는 추상적 조형언어를 그려 낸다. 엄지와 검지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첫 번째 붓이 훈련과 습관, 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주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면, 그 옆 네 번째 손가락에 불안하게 자리하고 있는 붓은 보다 자연스러운 우연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성과 감성, 통제와 자유,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등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대변되는 이 두 개의 붓은 서로 충돌한다. 그러나 무의식 또한 의식의 축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고 의식 또한 무의식의 파편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 두 반대 영역을 하나의 화면 속에서 결합시키고 있는 쩡판즈의 시도가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이내 알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을 어떠한 규범이나 논리 속에 한정하길 거부하는 작가의 조형언어가 논리적 이성과 비논리적 감성을 한데 섞으며, 구체적 형상과 추상적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패션잡지와 상업광고 등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쩡판즈의 인물들 또한 변화를 겪는다. 우한 지역 고기 공장에 매달려 있던 고기덩어리와 다를 바 없던 인물 위로 인위적인 색상이 덧칠해 지고, 형상을 견고하게 지지했던 뚜렷한 외곽선은 점차 흐려지며 인물과 배경의 경계선조차 지워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변화된 그림 속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자유를 발견한다. 7여 년 동안 ‘마스크 작가’로 명성을 얻으며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가 가면 속이 아닌, 역동적인 붓질과 침착한 색상의 조화 속에서 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림이란 작가의 내적 충동과 주관적인 해석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이 과정 속에서도 보편적 법칙과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요소들을 반영해야만 설득력을 얻는다. 객관과 주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어서일까? 가면을 벗어 던진 쩡판즈의 인물들이 제법 당당하게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쩡판즈가 실제 그리고자 하는 것은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세계의 표출이었고, 타인과의 소통이었으며, 자기 자신의 반추였다. 1997년 이후 인물의 배경으로 자주 인용되었던 파란색과 분홍색 풍경이 2004년 들어서 주인공 없는 공허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탱탱한 피부는 고기 저미는 기계에 갈린 것처럼 거친 표면으로 변하였다. 검은색 물감과 흰 물감을 묻힌 두 개의 붓을 의도적으로 역방향으로 움직여 시각적 질감을 배가시켰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역방향으로 움직이며 만들어낸 붓의 궤적 뒤로 작가가 남기고 간 여러 감정의 덩어리들을 발견한다. 가면 안에 갇혀 있던 주체할 수 없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현장에서 쩡판즈는 감정의 파편들이 제 자리에 들어설 수 있도록 쉼 없이 붓을 움직인다. 자신의 내면 속에 잠자고 있던 감정의 덩어리들을 일깨우는 붓의 운동 앞에서 초상과 풍경, 구상과 추상이 하나가 된다. 가면을 벗어 던지고 맨 얼굴로 진짜 자기 자신과 대면하려 했던 판단이 옳았음을 시위하듯, 쩡판즈의 그림들은 의욕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대형│큐레이터, 갤러리 아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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