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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藝林)을 걷다:시대와 함께, 작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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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藝林)을 걷다
- 시대와 함께, 작가와 함께




예림을 걷다 : 예술계 - 이상향

예림(藝林)이란 '예술(藝術)을 창조(創造)하고 연구(硏究)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사회(社會)' 를 뜻한다. 한마디로 '예술계(藝術界)’다. 이렇게 풀이하고 보면 맥이 빠진다. 좀더 그럴듯한 의미부여로의 욕구가 발동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언뜻 무림(武林)을 떠올릴 수도 있다. 최고가 되기를 꿈꾸는 무예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적자생존의 살벌한(?) 세계. 살짝 구미가 당기지만 예림에 대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예림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예술의 숲’이다. 비슷하게는 ‘예원(藝園)’이란 말도 있다. 이쯤 되면 상상의 날개를 달고서 예림의 의미는 예술의 향기 가득한 숲 속, 혹은 아늑한 정원이라는 공간적 개념에서 더 나아가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향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백제의 문화가 숨쉬는 몽촌토성을 배경으로 자연과 조각이 어우러진 서울올림픽미술관의 아름다운 공간, 그 속에서 예술을 통해 이상향(理想鄕)을 그려보는 것, 이번 전시의 궁극적 컨셉이다.
그럼 이제부터 예림을 걸어보자. 예술계에 몸담아 지내온 세월, 예술을 통한 이상향 추구…이러한 진행 과정은 ‘걷다’라는 말로 함축된다. 작가들의 작품은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인 셈이다. 주목할 점은 세월 따라 ‘변하는 것’과 그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일러 역(易)에서는 ‘변역(變易)’과 ‘불역(不易)’이라 했던가. 하여, 전자를 작가의 표현양식에 비유(譬喩)한다면, 후자는 작가의 예술관에 다름 아닐 터이다. 이것이 한 작가가 평생 쏟아 내는 예술개념의 형식적 외연(外延)이며 정신적 내포(內包)이다.




시대와 함께 : 80년대를 중심으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가의 작풍은 변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80년대를 중심으로 전 시대와 후 시대의 작품들을 비교해 본다. 1980년대 비(非) 1980년대라는 구분이 생길만큼 1980년대는 사회적 격변기였다고 할 수 있다. 80년 민주화 운동(5.18)과 87년 민주 항쟁(6.10),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 게임,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일련의 국제적 문화행사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술계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 변화에 합류하였다.
요컨대 80년대 변화의 바람은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인 작가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어 그들의 작풍을 뒤흔들어 놓았다. 특히 8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난 국제적 문화교류와 한국미술의 세계무대 진출은 작가 자신은 물론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심화ㆍ확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탐구의 결과로 미술계는 한층 더 풍성해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양화의 박노수, 오태학, 이종상, 천경자, 서양화의 김형대, 이만익, 전혁림, 황용엽, 하영식, 조각의 강태성, 민복진, 백문기, 전뢰진, 최종태 등, 80년대를 관통하며 치열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온 14명의 작가들을 통해 작풍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설령 작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부 작가들은 시대의 한 토막만을 옮겨올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말이다.




작가와 함께 : 한국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작가들

그렇다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작가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감히 말하건대, 그들은 끊임없이 한국성에 대해서 고민했고 한국성을 표현하는데 일생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라는 구태의연한 말을 굳이 덧붙이는 것은 입이 닳도록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성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그때그때 해석을 달리해 왔다. ?한국성?이란, 그 용어 자체가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와 민족을 지시하는 것에서 말해 주듯이, 한국과 한국인의 집단적 특성을 설명하는 용어이자 한국인이 그것을 위해 만든 집단적 정체성의 개념이다. 따라서 한국성은 민족주의적 경향을 지닌 정체성 개념이다. 이러한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은 색채, 재료, 소재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작가로서 예술을 통한 이상향 추구란 결국 얼마만큼 독창적으로 한국성을 표현했느냐에 있지 않을까. 이는 어쩌면 끝끝내 정답을 찾지 못함으로 해서 미완의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술사에 하나의 획을 자신 있게 긋고서 느긋한 노후를 보내고 있으려니 하겠지만, 아직도 붓을 놓지 못하는 원로화가에 대한 소식은 창작에 대한 끝없는 갈증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예림으로의 초대

시대적 고민, 작가적 고민, 한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고민…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작품에 들어있다고 말한다면 억지일까. 무림처럼 살벌하진 않지만 예림도 험난한 세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작품을 대하고 보면 그들의 번뇌와 고독의 날카로운 흔적은 보이지 않고 마치 눈 내린 아침 풍경처럼 고요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미 날카로움은 그들의 연륜과 예술혼에 녹아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리라. 아스라이 안개 낀 숲 속과 같은, 그 신비롭고 경계를 알 수 없는 예술의 정원을 거닐면 알 수 없는 좋은 향기에 취할 것만 같다.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작가의 인내와 열정이 승화되어 풍기는 예술의 향기. 여기 서울올림픽미술관의 맑고 청아한 겨울 정취 속에서 평생토록 예도에 몸담아온 그들의 원숙한 예술혼을 만끽하면서 한해를 되짚어 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예림으로 여러분을 정중히 초대하는 바이다.


정나영│서울올림픽미술관 큐레이터



참여작가
강태성, 김형대, 민복진, 박노수, 백문기, 오태학, 이만익,
이종상, 전뢰진, 전혁림, 천경자, 최종태, 하영식, 황용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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