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이 기획한 국제교류전 “새로운 과거”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되는 발칸반도의 현대미술전시이다. 과거 구 유고슬라비아가 있던 중앙 발칸 지역 출신의 작가(그룹) 열 넷, 그리고 한국 작가(그룹) 셋이 참여하는 이 전시회는 우리에게 낯선 발칸지역에서 그동안 전개되고 있었던 활기 있고 흥미진진한 현대미술 활동들을 소개해 주는 전시이다.
■ 전시의 발단
이번 국제교류전 “새로운 과거”는 지난 200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인사미술공간이 기획했던 국제 대안공간 심포지엄 “도시의 기억, 공간의 역사”에서 확인한 문제 의식을 풀어가는 첫 프로젝트이다. 당시, 바르샤바, 베오그라드, 베이루트, 족자카르트 등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장소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문화적 교류는, 우리에게 어떤 답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의문과 질문을 남겼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억압되거나 회피되어왔던 지역들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시대의 활동상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 나아가 이것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비교적 장기적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벨그레이드를 기점으로 한 중앙 발칸반도 지역과의 국제교류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왜 발칸인가
초대작가들이 속해있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코소보 그리고 마케도니아는 과거 유고연방에 속해있던 나라들로, 20세기 후반 들어 독립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칸반도의 화약고 또는 인종청소의 현장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은 서구 언론과 미디어 혹은 서구 중심의 현대예술 언어에서 쉽사리 타자화 되면서 마치 문화의 불모지와 같이 여겨져 왔고, 기껏해야 바바리아니즘과 오리엔탈리즘, 야만과 광기, 또는 피와 꿀이 뒤범벅되어 있는 장소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서구문화 영향 아래 있는 한국 관객들 역시 이러한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관객과 발칸미술 간의 공감대가 형성될 이유는 충분히 있다.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상황 때문에 발칸반도국가들이 겪어온 외침과 견제의 역사는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은 한국에게 경제상황 악화로 급속한 해체 과정을 밟은 구 유고연방의 예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역사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국의 관객들이 정치학과 미학, 혹은 예술과 사회의 실천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발칸의 현대미술을 보다 긴밀하고 유연한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아가 적어도 한국의 경우에는-지리적으로도 멀고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문화권의 ‘지역’이지만- 발칸지역미술과 비판적 미술 활동들을 네트워킹하는 연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 왜 “새로운 과거”인가
이번 전시의 제목은 “새로운 과거”이다. 여기서 과거는 직설적인 동시에 비유적인 의미에서 이른바 혁명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20세기, 즉 국가와 민족, 종교와 인종이라는 거대 담론이 주도했던 가까운 과거를 말한다. ‘새로운 과거’ 는 ‘오래된 미래’라는 개념에 비교해 볼 때, 끊임없는 호출과 해체, 재구성의 과정 속에서 살아 생동하는 과거를 말한다. 여기서 예술은 미래보다도 과거를 반추하는 강력한 무기로 등장한다. 호미 바바가 말했듯이 예술은 과거를 단순히 사회적 원인이나 미적 선례로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에게 과거는 ‘사이 공간 in-between space’에 놓여 끊임없이 현재 활동에 개입하고 혁신하는 공간으로서 새롭게 탈바꿈하는 공간이다.
■ 혁명의 아이들 Kids of Revolution
20세기는 또한 유고슬라비아의 세기이기도 하다.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의 운명은 20세기 전체를 압축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는 20세기를 불화, 분단, 적대의 시기로밖에 볼 수 없게 하는 분명한 예가 된다. 동시에 6개의 연방공화국이 한 울타리 안에서 묶였던 유고슬라비아 체제는 20세기의 낙관적인 출발, 곧 유럽에서 한 국가(nation)의 이름이 반드시 개별국가(state)의 이름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개념 자체를 의미했다. 물론 극단적인 폭력과 파괴로 끝난 불길한 결말의 전조가 되는 이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제 유고슬라비아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반면에 20세기는 상실의 시기이기도 하다. 만약 애도와 멜랑콜리라는 프로이트의 이론들이 역사적 상황을 분석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면, 한국과 한국인들은 심정적으로 전체성을 잃은 큰 슬픔에 빠져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의 건국신화는 분단에 의해 파괴되었고, 이러한 갈등은 프로이트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그칠 줄 모르고 대체도 불가능한 멜랑콜리한 상황을 야기시킨다. 나아가 그러한 멜랑콜리는 지속적인 주기를 만들어 상실감을 심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에도 한국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 초대된 발칸반도와 한반도의 작가들은 모두 ‘혁명의 아이들, kids of revolution’이라 할 만하다. 특정한 정치적인 입장을 신봉해서가 아니라 20세기라는 거대한 시대 자체를 혁명처럼 살아온, 모범생 적자(嫡子)가 아닌 다소 삐딱하고 종종 난봉꾼적인 서자(庶子)적 기질을 지닌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렬한 시각적 언어로, 혹은 매우 겸손하고도 근본적인 제안으로, 예술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치학의 시작을 알린다. 그런가 하면 상상과 초현실이 뒤범벅되어 있는 텍스트로, 또 때로는 통계수치와 경제적 개입으로, 정치가 무능해지는 지점에서 예술의 부활을 알리기도 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회화부터 웹아트까지, 독자적인 작품 제작으로부터 학제 간 협업프로젝트까지, 하이아트에서 서브컬처까지 자유롭게 넘나는다.
개막 : 2004년 12월 3일(금) 오후 5시
개막 : 퍼포먼스 12월 3일(금) 오후 5시 이고르 그루비취
기간 : 2004년 12월 4일 - 2005년 2월 3일
장소 : 마로니에미술관, 인사미술공간 전관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8시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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