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람회
근대의 출발과 함께 화려하게 성장했던 박람회의 전성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자본주의 상품경제 사회의 성과를 장엄하게 연출했던 1851년 런던 크리스탈궁 세계박람회 이후 5000만명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한 1900년 파리박람회를 거쳐 1940년 뉴욕박람회까지의 시기를 박람회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박람회는 지금 당대에 이르러 산업전시회라는 이름으로 더욱 빈번해지고 일상화되어 소비자들의 생활 속에 깊이 내면화된 상태이다. 근대자본주의 세계가 발전시키고 당대까지 존치하는 의례적 장치들(박물관, 동-식물원, 박람회, 백화점, 올림픽, 테마파크, 관광여행 등등)중에서 박람회는 가장 핵심적 제도이다. 2차대전이후 텔레비전 중계방송과 결합하여 현대 최고의 스펙터클이 역전되기까지 초기의 근대올림픽들은 세계박람회의 한 부속 행사로서 출발했다. 박람회가 일회적으로 기획된 박물관의 성격을 지닌다면 박물관 또는 백화점은 상설적으로 존재하는 박람회이다. 최초의 백화점들인 19C 중반 파리의 봉 마르세와 루브르는 당시 주기적으로 개최된 파리박람회와 함께 성장했다. 철과 유리 그리고 빛을 사용하여 건축되고 환상적으로 전시된 축제의 전당이라는 점에서 박람회와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동형성을 보여준다. 19c말 일본에서 내국권 박람회를 마친 후 전시된 상품들을 오늘날 일본 근대 백화점의 선구적 형태인 ‘권공장’이라는 장소에 모여져 상설 전시되고 판매되었다. 뉴욕세계박람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전시 프로듀서였던 월트 디즈니는 거대기업의 파빌리온을 연출하기위해 개발된 시설과 기술을 박람회가 끝난 후 그대로 디즈니랜드의 어트랙션으로 도입했다. 디즈니랜드 이후의 테마파크는 세계박람회로부터 변모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적 문화장치로서 자리잡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박람회는 근대적 도시공간의 형성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파리,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빈의 도시공간은 박람회라는 국가적 이벤트를 통해 기획되어 변화하고 개조된 흔적을 지금도 도시 곳곳에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람회장의 광고판은 한층 진화한 모습으로 거리로 나와 항구적 전시의 한 부분으로 사람들에게 지속적 영향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박람회는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성과를 과시하고 보여주어 사람들이 교환가치로 환원된 상품과 처음 만나는 장소로 기능했다. 대중들을 계몽시키고 선전하는 장치로서 작동했다. 박람회는 박물관과 동식물원 등에서 발전되어온 근대적 시선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본주의 상품 경제 속에서 양산된 산업테크놀로지를 기축으로 하는 장대한 스펙터클로 종합된 공간이다. 상품들을 보고 비교하고 서열화하는 훈련을 거쳐 사람들은 결국 욕망하는 소양을 지닌 잠재적 소비자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박람회는 더 많은 대중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흥미 있는 구경거리로서의 유흥적 요소와 이벤트를 끊임없이 도입했으며, 화려한 조명으로 관람객위에 군림하는 파빌리온과 부스들은 강력한 권력을 지닌 스펙터클로 작용하여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지배했던 것이다. 박람회를 하나의 상연되는 문화적 텍스트로 본다면 그 연출의 필자는 근대국가와 다수의 기업 그리고 전시흥행사들과 매스미디어가 될 것이며 관람하는 대중들은 이야기의 주도적 필자로서 참여하지는 않지만 박람회장이라는 상연장의 최종적 연기자로서 함께 얽혀짐으로서 텍스트의 한 층을 부가하는 것이다.
2) COEX
박람회는 그 성격에 따라 exposition, exhibition, fair, show 등으로 달리 불린다. 세계박람회는 2차대전 이후 퇴조한 반면 trade show 또는 consumer show라고 불리는 산업전시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산업으로서 그리고 상품으로서 더욱 빈번해졌다. 규모와 성격 면에서의 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박람회는 동일한 맥락의 자본주의 문화제도로서 서로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다. 산업전시회의 선진국이라는 독일의 경우 2000년 전후를 기준으로 연간 700여회의 산업전시회에 1000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하고 있다. 코엑스의 경우 2004년에 총 200여회의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코엑스에서 늘 열리는 박람회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3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연출되는 세계박람회 또는 엑스포와는 다르다. 코엑스 박람회들은 대체로 1주일 이내의 단기간에 비슷한 업종끼리만 모여서 전시한다는 점에서 무역전시회(trade show)와 유사한 이벤트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반 소비자들의 출입도 자유롭게 허용한다는 점에서 소비자 전시회(consumer show)라고 불리는 박람회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코엑스 박람회 풍경’ 시리즈에서 사용하는 ‘박람회’의 의미는 한국사회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보통 박람회라고 불리는 것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보다 폭넓게 쓰였다.
코엑스는 지리적으로 강남의 영동대로와 테헤란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같은 블록의 반경 500m 이내에 2호선 전철역 삼성역, 9호선 무역센터역, 코엑스몰, 현대백화점, 인터콘티넨탈호텔, 무역센터, 아셈타워 그리고 도심공항터미널이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탈근대 소비문화공간중 하나인 코엑스몰은 삼성역에서 지하통로를 통해 직통으로 연결되는 복합쇼핑몰로 그 통로를 통해 지상의 코엑스 전시장으로 바로 연결되어있다. 코엑스 메인전시장은 3개로 구성되어있는데 1층에 태평양홀, 인도양홀이 위치하고 2층에 대서양홀이 있다. 코엑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전시공간인 한국종합전시장(KOEX)으로 건립되었다. 박정희정권 말기인 1976년 정부주도로 한국무역협회 산하에 ‘종합전시장 건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고 1979년 7월 개장했지만 그 규모가 작았고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개막에 맞추어 오늘의 거대한 규모로 증축되었다. 2000년 ASEM회의에 맞추어 전시장 지하공간 연결통로를 코엑스몰로 만들어 오픈하였으며 회사명칭을 (주)코엑스(COEX, Convention & Exhibition Center)로 변경하였다. 영동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몇 블록 아래 학여울역에 위치한 서울무역전시장은 전시장 공간만으로 고려해 볼 때 제2의 코엑스라 할 수 있다. 서울무역전시장(SETEC)은 1999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설립하고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2004년에 약 50회의 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이 곳과 코엑스는 전시 횟수와 규모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박람회의 내용에서 서로 유사하여 반복성을 보여주고 있다. 코엑스는 해방직후 미군정하에 있던 1946년 7월 조직된 민간기업조직인 한국무역협회의 자회사 공간이지만 설립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으며, 서울무역전시장을 운영하는 코트라는 1962년 6월 정부가 전액 출자하여 출범한 조직이다. 이상 두개의 전시장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대전무역전시관(KOTREX), 대구전시컨벤션센터, 부산전시컨벤션센터 그리고 일산에 위치한 동북아 최대규모의 한국국제전시장(KINTEX)이 있다. KINTEX는 1999년 코트라, 경기도, 고양시가 공동투자하여 만든 기업인 (주)한국국제전시장의 전시장으로 2005년 4월 1차 개장한다. 이번 작품 시리즈는 COEX, SETEC, KOTREX를 대상으로 했지만 그중에 COEX공간의 박람회를 위주로 작업했다.
3) ‘박람회 풍경’ series
박람회장은 카메라와 사진가를 특별히 환영했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근대의 제도라는 면에서 동일했지만 통제와 억압적 규율이 강하게 존재하는 박물관이나 백화점과는 달리 촬영을 금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권장되었다. 박람회가 보기와 유희의 공간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한동안 왜 박람회장은 촬영의 해방구인가가 이해가지 않았었다. 광고와 조명 그리고 현란한 유혹의 장치들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보다 자연스럽게 포착하려 시도했다. 박람회는 당대의 산업 지형도를 보여주며 경제사회적 이슈와 유행들에 대한 반응도 보여준다(#6). 국가는 박람회장의 설립과 운영, 군수박람회와 같은 직접 개최 및 후원 그리고 심지어 정부부처와 지방조직 자체가 박람회의 부스에 나타나 상품으로 전시됨으로서 박람회에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개입했다(#2,#3). 2004년 코엑스 박람회는 무엇이든지 상품화될 수 있다는 자본주의 논리의 종교적 경지를 보였으며 지금 한국사회가 되돌려질 수 없는 전면적 상품경제사회로 몰입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정부조직과 무기 뿐 아니라 결혼, 교육, 이민, IT, 게임, 환경, 문화와 미술이 상품으로 박람회장에 자리 잡았고 심지어 갓 포획된 자연 그리고 인간마저 취업의 이름으로 부스에 올려졌다. 부스에 존엄하게 놓여진 상품들은 대개의 경우 관람객에게 스스로 직접적으로만 말하지 않으며 그 존재를 홀로 알리지도 않는다. 일단 부스 외곽에 다가오는 관람객을 유혹하는 다수의 부수적 장치들을 매개한다. 박람회는 광고 선전과 마케팅이 고밀도로 집적된 공간이다. 디자인된 부스의 장식과 조명, 안내원과 도우미, 광고카피와 선전문구, 음악과 공연, 경품이 있는 게임과 놀이, 기타 간접적 선전의 도구들을 3차원적으로 다양하게 설치하여 분주한 관람객의 발걸음을 세우고 부스의 경계선 안으로 끌어들인다(#7). 참가업체의 전시자들은 관람객에게 미소를 머금고 다가와 공손하게 말을 건다. 그리고 관람객의 시선을 유도하여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을 친절하게 보여준다(#1). 그것은 상품이다. 관람객인 나와 전시자인 너의 관계는 상품소비를 매개로 했을 때에만 일시적으로 성립하는 자본주의적 인간관계의 연장선상인 것이다. 이리하여 박람회에 참여하는 최종적 연기자로서의 관람객은 그 연극 속에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잠재적 소비자인 그들의 행동 속에서 근대의 제도와 어우러진 박람회 문화의 풍속도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약한 단계의 참여인 단순한 보기의 단계(#2,#4,#10,#11)를 거쳐 탐색과 체험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부스에 직접 들어가 상품을 테스트하고 상품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게임을 하고 즐거워하면서 그 효용가치를 확인한다(#12,#14,#15). 상품에 대한 설명과 문구를 통한 건조한 선전(#1,#6,#8,#9)을 넘어서는 쾌락적 요소가 도입되고 박람회는 이제 오락공간으로 나타난다. 특히 대기업들이 설치한 거대한 부스에서 그러했다(현악4중주단 공연을 바라보는 모녀, #10). 자본은 관람객들에게 보다 부드럽고 감정적인 선전을 시도하는데 여기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역할이 증대한다. 퀴즈게임과 공연이벤트의 진행자로서,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의 연주자로서, 패션모델로서(#11), 상품을 직접 설명하고 안내하는 도우미로서 등장한다. 박람회장에서 감정노동자로서 기능하는 그들은 기업과 상품 이미지의 대리인이며 보조수단이다. 이 시대의 감각은 상품과 소비의 중간지대에 위치한다. 그들은 자신의 감각적 속성을 불어넣어 상품을 의인화하고 대신 스스로는 상품의 촉수로 사물화된다. 그들은 화장과 유니폼으로 단장된 외모와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성적 매력으로 무장하여 상품과 관람객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소멸시킨다. 그리하여 낯선 상품이미지에 대한 저항감을 해체당한 관람객들이 디카를 들고 다가올 때 그들은 기념촬영이라는 찰나적 동거를 관대하게 허용한다(#16). 잠재적 소비자와 상품 대리인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다중의 관람객들에게 반복 재현되어 상품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조응하는 강력한 광고 효과를 실현한다(#18). 상품과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반복의 패턴은 군사문화의 유제인 도열로 재현되기도 한다(#17 애견미용사 콘테스트,#18 퇴장하는 관람객 앞에 도열한 LG 삼성 부스 도우미들). 내가 본 2004년 코엑스 박람회의 절정은 취업박람회였다. 유학박람회와 이민박람회에서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다가(#21) 드디어 사람이 그대로 상품이 된 것이다. 청년실업과 노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하는 현실에서 상품이 들어설 자리에 인간 자체가 노동력이라는 교환가치로 환원되어 전시되는 상황이다(#19,#20,#22). 나는 구직자와 기업의 채용담당자가 면접을 하는 상황이 과연 박람회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곳이 상품이 전시되는 장소였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고 우리사회에서 그것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박람회라 불리고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박람회는 끝났다. 전시자와 관람객이 퇴장하여 해체되는 박람회장의 풍경은 축제의 흔적을 거둬가며 명백히 사물로서 죽어가지만 아직도 잔존하는 광고 선전의 메시지를 통해 나에게 너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다(#23,#24,#25). 조명이 꺼지고 폐허로 바뀌지만 박람회는 내일도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다(#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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