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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의 조각 70여점과 드로잉 90여점 전시
우성 김종영(又誠 金鍾瑛, 1915-82)은 한국 현대조각을 도입하고 정착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작가이다. 그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오랜 사색과 통찰을 통해 서구적인 조형감각을 동양의 정신으로 승화시킨 한국 현대조각의 중추적인 인물이며, 또한 광복 후에 설립된 대학 미술교육의 선도자이자 국전 조각부의 설립과 운영에 기여한 인물로서 많은 후학들의 본보기가 되어왔다. 이러한 김종영은 한국 현대조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비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작가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는 내적인 성찰을 통해 작품활동에만 전념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김종영의 작품 세계 전모全貌를 살펴봄으로써 그를 통해 한국 조각의 형성과정과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초창기인 1930-40년대 인물상들과 1950년대의 철조각 등 추상작품들이다. 1930-40년대 상황은 사실주의적인 인물상들이 주로 제작되며 점토, 석고, 나무, 청동 등의 표현을 익히던 시기였다. 김종영이 제작한 1936년 <소녀상>(석고)은 사실주의적 기법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오늘날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입상立像들은 통나무의 형태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은 정적인 형상으로 점차 작품들이 단순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50년대는 국내에서 추상조각이 제작되던 시기로 이 때 가장 큰 영향은 철이라는 재료의 유입을 들 수 있다. 서양에서 전후에 확산되었던 철 용접조각은 1950년대 후반 일본에서 출판한 서적과 1957년 4월 덕수궁에서 있었던 《미국 현대작가 8인전》을 통해 우리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철작품이 출품되게 되는 배경을 이룬다. 철은 선이나 면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훨씬 추상작업이 용이했다. 그동안에 돌이나 청동, 나무가 볼륨감있는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철조는 이미 만들어진 형태를 자유롭게 덧붙이거나 떼어낼 수 있어 작가의 즉흥적인 의도의 반영이 가능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김종영의 첫 철조작품 <전설>(1958)이 있다. 이것은 50년대 후반 한국에서 추상운동으로 나타났던 앵포르멜 경향의 작품으로 문의 형상을 띠고 있으며 몇 개의 선에 의해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후 제작되는 철조각은 형태의 상징성을 배제한 추상조각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초까지의 작품들이다. 앞의 1950년대의 작품들과의 차이점은 대상이 없는 추상작품이라는 것과, 작품에 제작번호가 붙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변화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면이나 볼륨 등의 조형원리와 재질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은 크게 유기적인 형태들과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두 가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특정의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 그때의 감동과 이미지에 따라 폭넓은 세계를 펼쳐나가고자”(1) 했던 작가의 작업관을 읽을 수 있다.
(1)김종영,「자필원고」중에서
주로 기하학적인 형태에서는 삼각형, 사각형을 기본으로 형태를 환원하여 순수조형형태를 이루고 있고, 유기적인 형태에서는 자연의 구체적인 대상인 꽃, 새순, 나뭇가지 등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러한 형태에서는 살포시 솟아오는 생명력과 기운, 율동감을 느끼게 한다.
원래 한국조각사에서 조각은 주로 불교조각이 중심이었으며 ‘창조’의 개념으로서 조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창조’에 해당하는 조각의 개념이 도입되게 된 때는 일제시대인 1925년, 김복진(1901-40)이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서구적인 조각의 기법을 배우고 돌아오면서부터이다. 김복진은 조각을 하나의 미술로서 인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 시기 일본조각은 로댕Auguste Rodin이나 부르델Antoine Bourdelle 류의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을 통해 소개되는 국내 조각 역시 인물상을 위주로 하여 인체의 비례와 균형을 익히고 재료의 기본적인 기법을 배우는 데에 대부분 관심을 쏟고 있었다.
반면에 김종영은 1936년 동경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일본미술계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화집을 통해 일찍부터 서양 현대조각에 관심을 기울였다. 1953년에는 런던에서 열린 국제공모전《무명 정치인을 위한 기념비》에 <나상>을 출품, 국내 최초로 입상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해 제 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3년)에 <새>를 출품하였는데 당시 출품작의 정확한 이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 미루어볼 때 한국추상조각의 시초였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1956년 한국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추억>은 공간에 선을 쌓아올린 형상을 취하고 있어 추상작업에 있어 선구적인 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김종영은 동양사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자연’관을 바탕으로 서구의 조형의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연’의 본질적 형태 즉 순수 추상조각을 제작하였다. 그는 예술가란 ‘자연의 전체상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절대적인 미를 부정하고 ‘자연의 질서에 대한 관찰과 이해’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김종영은 이것을 불각不刻의 미에서 찾고 있다. 잘라낸 돌을 흐르는 물에 넣어 자연스럽게 닳도록 함으로써 인위성을 배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무기교의 기교’라 하여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분수를 지키는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절제된 미를 만들어 내려던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도 일치한다. 김종영에게 ‘불각의 미’란 형태보다는 뜻을 중히 여기는 것이며, 형태의 정확한 묘사보다는 작가의 정신적 태도를 중시하는 현대조형이념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보다 쉽게 얘기한다면 ‘조형의 단순화’라고 할 수 있으며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던 서양의 레디메이드와도 맥이 통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토대 위에 김종영은 서구의 조형의식을 받아들였다. 그의 작품의 일부는 아르프Jean Arp의 유기적인 형상,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의 <공간 속의 새>나 <무한주>와 형식상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러한 영향에서 출발, 자연에 기반한 형태를 추구해나갔다. 즉 반복과 비례를 보여주기보다 비대칭을 이루면서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볼륨감을 인식하게 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는 돌이나 나무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여 공간 속의 아름다움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김종영은 많은 드로잉을 제작했다. 펜이나 파스텔, 수묵으로 주변을 스케치함으로써,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상과 산, 나무 등의 풍경, 요약화를 거친 추상화, 제발을 적어놓은 산수 등 그의 자연에 대한 탐구는 끊이질 않았다. 그에게 드로잉이란 사물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며 자연에 내재된 질서를 찾아가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밑그림으로서의 드로잉과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드로잉을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자연은 그의 눈과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나고 성장해왔으며, 이러한 드로잉에는 작가의 성품처럼 단아하고 강인한 선의 기백이 느껴진다.
이렇게 제작된 조각작품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전달한다. 또한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재질의 자유로운 표현효과를 얻고 있다. 그의 작품이 작지만 크게 보이는 이유는 다양한 면의 구사와 볼륨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조화로움이다. 살며시 솟은 돌의 볼륨감은 손으로 감싸쥐고 싶을 정도이며 서너 방향으로 뻗은 형상들은 무한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그의 작품이 작지만 큰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친근감의 결정체라 감히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성 김종영은 사색과 통찰을 통해 자연의 본질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조형세계를 구축해 낸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다. 이것은 그가 단지 현대조각의 시작을 열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작품의 조형성과 높은 정신성으로 인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작가의 인격과 작품의 격을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해왔던 김종영의 삶과 예술은 오늘날에도 후학들의 훌륭한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학술발표회 일시 : 2005년 3월 26일 (토) 오후 2시-6시
장소 : 덕수궁미술관 시청각실
발표주제 : ‘한국현대조각과 김종영’
- 한국 근현대조각에 있어서의 모더니즘 : 최태만(국민대교수)
- 김종영의 조각-서구 및 다른 작가들과의 영향관계 : 김정희(서울대교수)
- 김종영 조각 및 드로잉에 나타난 동양성 : 김현숙(홍익대강사) - 김종영의 드로잉연구 : 마순자(서울대강사)
작품설명회 : 금 11시․2시, 토 1시․3시, 일 2시․3시
어린이미술교실 일시 : 4, 5월 중 매주 화요일
설명자 : 국립현대미술관 전문 도슨트
多 . 景 . 多 . 感 : 조각가 김종영의 풍경展 2005년 2월 25일(금) ~ 5월 15일(일)
김종영미술관 (02-3217-6484)
김종영의 정물드로잉展2005년 2월 25일~ 3월 27일
갤러리원(02-514-3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