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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e Bourgeoi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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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작품 제작과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는 20세기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다. 1982년 뉴욕 MoMA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국제적인 작가로 떠오른 그녀는 어떤 양식이나 사조로도 설명할 수 없는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예술세계를 이룩했다. 자전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 면에서 파격을 이룬 그녀의 작품 세계는 많은 찬사를 받았으며 현재 활동하는 다양한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국제 갤러리가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하는 이번 루이스 부르주아 전시회에는 작가가 지난 2년간 작업한 최근 작업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100점이 넘는 드로잉을 위주로 하여 천 조각에 석판화를 찍어 만든 책 형식의 작품, 그리고 공간과 사물의 상징성을 이용한 조각 작품도 아울러 출품되는 이번 전시는 20세기 미술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가의 최신작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타피스트리(tapestry; 융단) 사업을 해온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8살 때부터 드로잉을 하면서 사업에 참여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포용력 있는 성격인데 반해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 시절에 경험한 배신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은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는 수학의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부르주아는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꼴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는 부르주아에게 삼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그녀는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의 조각은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가 과감해진 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는 급속도로 부상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정점에 이른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70년대 말부터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한 루이스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여성 회고전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는 이후로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수 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 세계 유수 미술관들과 주요 컬렉션들에 소장되어 있다. 학계(예일대학과 메사츄세츠 미술대학)로부터는 명예 학위를,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문화훈장과 일본문화협회로부터는 세계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 페르낭 레제(1881-1955): 프랑스 화가로 기계적이고 단순화된 형태를 많이 사용했다. 튜브 형태를 많이 사용해서 튜비스트(Tubist)라고 불리기도 했던 그는 입체주의와 구조주의 및 광고 포스터 등 응용미술에 영향을 끼쳤다.







루이스 부르주아가 1980년대 이전에 오랫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어떤 양식이나 범주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은 강한 독자성 때문이다. 거의 한 세기를 걸친 그녀의 작품세계는 고정된 양식이나 재료, 특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와 뉴욕에 살았으며 항상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덕분에 부르주아는 원시미술,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실존주의 등 20세기에 나타난 중요한 미술사조들과 그 대표적인 미술가들을 가까이서 접했고, 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전통과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성향 때문에 그녀는 기존의 어떠한 원칙도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갔다.



부르주아는 재료와 양식,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그녀에게 작품제작은 언제나 감정의 정화작용을 의미했으며, 따라서 형식 자체는 어떤 제한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무의식과 내면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여 욕망,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와 고립 등 과거의 경험을 표출하고자 했고 이는 주로 신체, 성적인 이미지와 에로틱하거나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아버지의 외도, 그리고 그것을 방관하는 어머니의 무력함을 지켜보면서 성장한 그녀에게 배신감의 고통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앙금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에게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는 과거의 기억과 무의식적인 고통을 물리적인 형태로 만들어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함으로써 해소하는 심리적 치료와 같은 것이었다. 남성중심적인 예술계에서 활동하면서 그녀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고, 이는 성을 초월하여 인간의 존재 자체가 지니는 고통과 고독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확대되었다.



그녀의 작업은 추상에 가까운 기둥 형태의 인물상에서, 신체의 부분이나 성적인 이미지를 에로틱한 형상으로 표현한 조각, 대형 거미 형상을 띤 압도적인 브론즈 작업, 손바느질한 천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국제 갤러리의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지난 2년 동안 주력해 온 드로잉 작업들이 다수 출품되는데, 부르주아에게 드로잉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드로잉은 예술에 입문하기 훨씬 전, 집안 사업을 돕기 위해 융단 무늬의 도안을 그리던 어린 시절부터 익혀 왔던 것으로 그녀는 언제나 손에 닿는 대로 모든 도구와 화면을 이용하여 드로잉을 했다. 이러한 드로잉은 두려움을 없애주었으며 특히 잠 안아오는 밤에 그녀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그녀는 “예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정복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격자무늬와 원, 평행선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그녀의 드로잉들을 보면 무의식에 잠재된 과거의 기억과 두려움을 손끝으로 끄집어 내어 종이에 옮기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이러한 드로잉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의 리듬을 기록하는 새로운 형태의 일기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제 갤러리의 이번 전시에는 드로잉 작품들뿐만 아니라 천 조각에 석판으로 이미지 찍고 손바느질을 곁들여서 만든 책 형식의 작품도 출품된다. 총 36 페이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바느질을 치유와 용서의 행위로 여겼던 작가의 인식을 드러내며 조각과 평면의 경계를 허문다. 이외에 공간과 사물의 독특한 구성을 통해 강한 상징성을 드러내는 조각 작품도 한 점 선보일 예정이다. 드로잉으로 표현될 때나 조각의 형식을 사용할 때나 그녀의 작품은 항상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사랑과 고통, 고독의 드라마를 담고 있다.




  •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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