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05-05-18 ~ 2005-05-24
김성은,김소연,김옥순,노현정,문수성,박수진,박정원,신영미,신지선,오상열,오진선,우성종,전은숙,최수임,하주영
02-737-0057
골목을 따라 걸어가는데 10미터 거리쯤 떨어진 저편으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림이 망막에 펼쳐지는 거야. 어쩌면 저들이 숙명의 인연이 아닐까. 순간 서 있는 이곳이 괴기스러운 공공의 무대로 느껴지고 말았지. 고개를 들어 일상에서 벗어난 달콤한 환타지를 꿈꾸는데, 귓속에서 아파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조립식 벽 너머로 숨은 꿈의 소리가 말이야. 물고기야! 너는 알고 있었구나. 히키코모리가 된 물고기를 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미끄러지듯이. 뿌리가 있기는 한거니?(피식, 웃더니) 풍덩!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같아지기는 힘겹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화두로 나오게 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것이다. 우리는 주변곳곳에서 단체를 통하여 단체, 혹은 개인의 목적을 이루어 내려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웃사이더의 지존구역인 미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미술계에서 끊임없이 맥을 이어오고 있는 동문전이 그렇고 교류전이 그렇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는 낯간지러운 행사들이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속력에 집착하는 원인을 찾자면, 유교사상이외에도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얽혀있어서 쉽사리 파헤쳐내기는 힘들겠지만, 결과적으로나마 내용, 또는 형식에 어떠한 가치변화가 있었는지,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매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교류전에서 교류가 이루어 졌는가. 공통의 꿈은 이루어졌는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같은 세대라고 여기고, 이 시대가 요구하며 갈증을 느끼는 중요한 컨텍스트를 찾고자, 나아가 적당한 라인을 형성하고자, 그야말로 부푼 꿈을 안고 있지 않았나. 나는 이러한 부푼 꿈으로 그려지는 전시, 기획을 거품전시, 거품기획이라 정의해 본다.
거품기획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서 기획에 관하여 알고자 몇 명의 기획자들과 만남을 갖게 되었다.
미술에 갇혀버린 거품기획자들의 속내란 애인을 꼬시는 선수씨 같았다. 길거리에서 상행위를 하는 장사꾼의 지조가 섞인 목소리처럼.
전시를 만드는 기획자, 작가에게 있어서 지조는 무엇일까. 지조는 필요한가.
현실의 꿈을 꾸기도 전에 꿈을 위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짱 박혀온 미술교육의 강박일까.
전시 기회가 간절한 무명씨에게 고마운 제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시점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미술이 컨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점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작가의 진정성은 어디로 숨은 것일까.
작품이나 작가의 어떠한 성향으로도 추출되지 않은, 학연에 의해 모여진 작가들의 작품과 글에 통일된, 또는 새로운 컨텍스트를 입힌다는 것은 곤욕이 아닐수 없다. 게다가 뻥을 친다고 해도 들킬 뻥이라 재미가 없다.
'10미터 인연들-골목그림-괴기스러운-공공-길-일상-달콤한 환타지-아파트관광-조립식-벽-숨은꿈-물고기-히키코모리-미끄덩-뿌리찾기'라는 제목은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텍스트화 된 작가들의 작품의 아이콘들 사이에 다리만 걸쳐놓은 것이다.
곧, 서로의 작업에 불완전한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들은 다른 전시참여자의 작품 속 그 무엇인가를 엿보고 타인의 소재를 제약없이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차용과 모방은 작가 개인들이 지닌 작업뿌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다른 생명체의 가지를 이식하는 접붙히기처럼 예상치 못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할 것이다.
참여작가15인은 맞춤식 전시와 굳어진 미술현상에 거리를 두면서, 그들 내부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기획을 맡은 본인 역시 커뮤니티의 최소한의 통로를 만드는 일 이외에, 거품기획의 위상을 허물고 참여를 통한 열린 기획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전시공간에는 서로에게 스며드는 작품의 진행과정, 만남의 기록물과, 각자의 꿈을 거세당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꿈속을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지형도가 그려지게 된다.
이로서 그들은 서로에게 현실적이며, 이상적인 꿈이 된다. 비몽사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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