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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배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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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배의 조각

신화적이고 우화적인 상상력으로서의 삶


고충환│미술평론



김근배의 조각에는 정장을 차려 입은 사내의 몸통 위로 마치 달팽이와도 같은, 나선형으로 돌돌 말린 고깔과도 같은 기묘하게 생긴 머리를 이고 있는 특이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목구비가 생략된 그 머리는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병인 집단무의식과 맹목적 주체 그리고 익명적 주체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그 생긴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 일상 속에서 마주칠 법한 보통 사내의 모습을 닮은 그는 아마도 작가 자신의 자소상일 것이다. 작가는 조각 속에서 작가 자신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사회 속에서의 소외된 삶을 사는 보통사람들의 초상을 대변하고 있다.

그의 삶은 비록 비극적이지만, 작가는 이를 희극적으로 각색한다. 마치 웃음 속에 삶에 대한 풍자를 숨기고 있는 블랙코미디처럼 비극적인 삶을 희화화한 것이다. 여기서 비극은 삶의 실제로서 나타나고, 희극은 그 삶에 대한 작가의 해석으로 나타난다. 이로부터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나 신뢰가 전해져 온다. 비판보다는 풍자에, 풍자보다는 해학에 가까운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그대로 삶을 긍정하고자 하는 웃음의 형태로 현상한다. 이로써 캐릭터의 익명적인 머리는 몽상적인 머리로 전이되고, 보통사람의 초상은 그 속에 웃음과 유머 그리고 여유가 배여 있는 꿈꾸는 자의 초상으로 변화된다. 달팽이처럼 생긴 그 머리는 사실 이처럼 지난한 삶을 견디게 해주는 꿈의 계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한다. 그는 주어진 삶에 정박하지 못한 채 삶의 궤도인 길 위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그는 뭔가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같고, 그저 막연하게 서성거리고 있는 것도 같다. 보기에 따라서 그는 인명인지 지명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장차 도래할 어떤 날인지도 모를 고도를 막연하게 기다리는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속 주인공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에게서는 일방적으로 주어진 삶을 낯설어 하며 대면해야 하는 존재의 당혹스러움과 부조리한 삶에 대한 인식이 느껴진다.

그는 이처럼 길 위에 서성거리고 서 있거나, 어딘가를 향해 이동 중이다. 즉 그는 자동차나 비행기 그리고 배를 타고 여행 중이며, 때로는 낙하산을 타고 이제 막 하늘로부터 땅 위로 착륙하려 하고 있다. 이 이동수단들은 말할 것도 없이 삶의 메타포에 해당하는 것들로서, 그 가운데 특히 배는 망망대해의 바다 위에 저 홀로 떠 있는 부표와도 같은 고독한 존재를 상징한다. 작가의 조각 속에서 이 이동수단들은 그 자체가 목적 지향적이기보다는, 이동이라는 과정 자체, 이동이 갖는 의미 자체를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재차 삶의 속성을 목적보다는 과정으로 보는 삶의 메타포를 강화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실제로 작가는 이사와 이주, 여행과 여정과 같은 이동을 암시하는 개념들로써 자신의 작업을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근작에서는 대장정이라는 개념으로써 그 주제에다가 일관성을 부여하고 강화한다. 이 주제와 더불어 작가는 삶의 속성을 정주보다는 끊임없는 이동과 유목에 바쳐진 것으로 보고, 이를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주체, 길 위의 주체, 여정 중인 주체에 내장돼 있는 유목적인 삶은 작가의 작업으로 하여금 자기정체성을 찾아서 방황하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한편의 로드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특히 질 들뢰즈의 노매디즘 즉 유목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들뢰즈가 비록 유목주의를 주창했지만, 정작 자신은 평생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거의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목주의란 말로써 들뢰즈가 의미한 것이 단순한 현상적인 차원에서의 유목을 넘어서는, 정신적이고 의식적인 차원에서의 유목이었음을 말해준다.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부정의 철학, 통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회의와 의심의 철학을 위한 실천논리로서의 기능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삶의 실천논리로서의 유목에 얼마나 철저했던가에 대해서는 상식과 합리, 정론과 통설에 지배되는 지식인의 삶에 끝내 안주하지 못한 채 마침내는 노년의 삶을 자살로서 마감한 것에서도 극명해진다. 의미론적인 유목, 의식적인 유목을 위해 정론에 안주하지 않는 비평적이고 비판적인 삶을 실천해 보인 것이다. 이처럼 유목은 단순한 현상적인 차원을 넘어 삶의 실천논리로서 작동할 때에야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얻게 된다.



김근배의 조각에 나타난 주체는 이처럼 꿈꾸는 듯한 몽상적 주체, 부조리한 삶을 대면한 실존적 주체, 그리고 의식의 자유로운 경계에 그 맥이 닿아 있는 유목적 주체로 나타난다. 이 모든 주체가 다중적으로 중첩돼 있는 것이다. 그 주체의 유목적인 삶에는 어김없이 동반자가 있다. 전작에서는 물고기가 그리고 근작에서는 코끼리가 있다.

여기서 물고기와 코끼리는 구원이나 해탈과 같은 종교적인 도상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또 다른 인격체, 분신, 그림자, 타자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 자체 작가의 무의식적 욕망 혹은 이상을 반영하고 있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코끼리는 때때로 그 크기가 사람보다도 작고 심지어는 나뭇잎을 타고 여행하는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상황이 유아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 심지어는 사람과 사물이 어떠한 위계도 없이 서로 어우러진 것에서는 우화적이고 신화적인 상상력마저 느껴진다. 이로써 작가는 아마도 상식과 합리에 바탕을 둔 통설을 벗어나서 타자간의 연대와 조화를 이상적인 삶의 한 형태로서 꿈꾸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조각에는 자동차, 비행기, 배와 같은 이동수단과 함께 길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길은 대개는 순환하는 고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시작도 끝도 없이 연이어진 길 위에서 사람과 동물, 자동차와 사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그 길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려진 삶의 속성을 말해준다. 즉 작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해 떠나가고 있지만, 그 길은 언제나 그를 출발점에로 되돌려 놓는다. 말하자면 그 길은 자기 반성적인 계기와, 자기 존재에 대한 간단없는 물음의 과정을 암시하는 은유처럼 읽힌다.




이외에도 김근배의 조각에는 가방과 집이 자주 등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가방과 집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방이 마치 빌라나 거실과 같은 구조물로 짜여져 있는가 하면, 집 또한 가방처럼 이동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속에는 사람과 동물, 가구와 사물, 자동차와 배, 그리고 심지어는 길마저 들어 있다. 이는 그대로 세상의 풍경을, 삶의 풍경을 축약해 놓은 것 같다. 이렇듯 작가의 작업에서는 집마저도 정주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가방과 마찬가지로 유목적인 삶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조각 속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달팽이관처럼 생긴 머리로서 몽상가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이 코끼리와 함께 길을 떠나고 있다. 배와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가 운동수단으로서 동원되는가 하면, 때로는 나뭇잎과 체스 판이 그들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길 위에는 주인공과 함께 코끼리, 자동차, 비행기, 집, 가구, 가방, TV가 어딘가를 향해 종종걸음치고 있다. 신화적이고 우화적인 삶, 작가의 욕망과 이상이 투사된 삶, 작가의 상상력이 복원해낸 삶 속에서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져 서로 화해한다. 그 정경이 마치 유아의 눈에 비친 삶의 우의, 삶의 축소판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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