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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푸르메와 <일상의 치유> 연작 : 그 미쟝센적 풀이
문태영 아메리칸이미지 저널리스트 / 고신대 교수
화두적인 표현의지홍푸르메는 화폭을 구성할 권리와 자기만의 식별가능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작가이다. 2000년 이후로 <일상속의 치유>라는 모티브는 섭리(攝理, Providence), 모반(母盤, Motherly Matrix), 일상속의 치유(日常속의 治癒, Healing in Daily Life), 빛이 열려(Opening His Light), 섭섭한 치유(攝攝한 治癒, Healing through Sacred Belief) 등과 같은 그의 전시회들에서 지속적인 주제로 나타나며 뚜렷한 연대기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는 표현의지를 화두적으로 설정하고 자신의 작품을 표현도구에서 작가적 날인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일상속의 치유> 모티브는 에덴(Eden)적 원형(原型)에 대한 추구라고 할 수 있다. 신이 창조한 세상의 원형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실체를 구조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 신화적인 세상이 인간의 삶속에서 유전되고 있다. 홍푸르메가 그 원형에 접근하려는 목적은 명쾌하게 분명하다. 그가 추구하는 세상은 왜곡되지 않은, 건강한, 오염되지 않은 원형이다. 현대가 잃어가고 있는 천연의, 고유의, 신뢰의 강건함이 가득한 세상이다. 이런 원형으로의 접근은 회복(回復, recovery)과 복원(復元, restoration)을 추구하는 것이고, 곧 치유(治癒, healing)를 의미한다.
또 그의 표현의지는 영원으로 돌아가 분해되는 환원이 아니라, 고향이고 모반(母盤)인 에덴으로 자아(自我)를 귀향시켜 치유로 인도하는 완성적 환원을 의미한다. 이는 동북아에서는 무위자연으로 제시되기도 하였지만, 그의 경우에 본연의 무위(無爲)는 오히려 치유 가능성을 추구하는 유위(有爲)를 통해 정화된다. 즉, 자연이 인간을 능가하는 것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인간이 포함된 세상 또는 매우 도시적인 관점의 세상 속에서 잔존한 자연성을 강조하며 회복과 치유를 암시한다. 유위를 통해 무위를 생각하게 하는 독특함이 그의 <일상속의 치유>에서 추구되는 것이다.
“주와 함께 실존하는 그 원형의 자연이 나의 그림에서 실재하는 치유로 와 닿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그림들에서 그들이 치유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염된 것, 병든 것,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나의 그림이 일상 속의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각인되길 바란다. 그래서 나처럼 세상이 치유되길 바란다. ” - 홍푸르메, <빛이열려>전, 작가노트, 2005 - 수묵의 시공성과 역동성홍푸르메의 작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일상의 치유>라는 모티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뒤에는, 화폭에 표현된 먹에 대한 시공성(時空性, spatiotemporality)과 역동성(力動性, dynamics)의 함축된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최근 수년 동안 연작적 경향을 보이는 탓에 단일작품에 주목하기 보다는 일련의 작품군을 적절히 배열(配列, ordination)하여 보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그렇게 배열된 그의 작품들은 활동사진적인 미장센(mise en scene)을 이룬다 할 정도로 연속적이다.
공간 구성의 미장센 틀 즉 프레임(frame)은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사각틀로, 화면영역 즉 화폭을 규정하는 물리적 경계이다. 그러나 홍푸르메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상상력과 의지로 인해 화폭의 엄격한 한계는 깨져있다. 그 대신 화폭에 펼쳐진 수묵의 부정형적 운용이 역동성을 지니며 여백 즉 공간에 대한 균형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상상력의 벡터적 확산은 곧 절제를 보인다. 이는 작가의지가 신의 경계를 넘지 않는 즉 구도자적인 경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主) 안에서’라는 믿음이 물리적인 경계와 의지적 경계의 사이에서 작품의 화면영역을 규정해 주는 것이다. 또 과거로부터 현대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의 욕망이 두 경계 사이에서 수묵으로 시각화되어 인간과 신의 사이에서 변화와 절제를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홍푸르메의 작품에서 아이콘(icon)화된 표현은 시각적 모티브와 스타일을 범주화(範疇化, categorization)하고 인지분석을 수월케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여백’이라는 밝은 배경과 ‘먹’이라는 짙은 색채를 정서를 즉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최상의 아이콘적 매체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간혹 등장하는 십자가는 주변의 어둔 색채로부터 작가의 의지를 밝게 집중시키는 아이콘으로서 시선의 분산을 집중시켜 무의식 속에 남겨주고 있다.
이것은 과도한 외침보다 의식되지 못하는 가운데 순간적인 각인을 남기고 종교적인 구원을 암시하면서 치유의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과거 서구적인 성화들에서 아이콘은 성물 또는 그리스 신화의 모티브가 채용되어 공인된 함축성을 갖곤 하였는데, 홍푸르메는 기독교적이면서도 한국적 특히 근대 한국적인 모티브를 지닌 아이콘을 개발하는 실험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앵글(angle)은 작가가 대상물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결국 자신의 작품에 대한 총평(總評)이라고 할 수 있다. 홍푸르메의 작품군을 영화적 표현으로 하여 쇼트라고 하면, 이 쇼트들은 눈높이 앵글 즉 아이 레벨(eye level)이라는 정형을 이미 초기 작품부터 넘어서 버렸다. 이로 인해 혹자는 그를 큐비스트라고 평한 바도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큐비스트는 아닌 듯하다. 다만 부정형적인 역동성의 흔적을 입체의 다중성으로 해석한 견해일 것이다. 홍푸르메와의 대화에서 뚜렷한 선형적(線形的, linear) 작가의지의 고민을 들은 적은 있으나, 이론이나 관점에서 큐비즘에 대한 친근감은 포착된 바가 없다. 그러나 그가 각각의 구성요소들에 대한 주체적인 시각을 강조하며 비례와 평면에 대해 타협하는 친절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홍푸르메의 앵글은 형용사적인 측면보다는 목적어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의 작품은 가감 없이 여러 번의 눈 새김을 하도록 한다. 그동안에 둔탁한 충격이나 무게감, 여백에 대한 상상력, 십자가의 포커스로 이어지며 작가의 의도에 동화되게끔 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것은 고정 집중된 앵글을 해체하고 가상의 공간을 소화해낸 결과일 것이다.
작가가 안정과 조화된 화면을 원할 때 대체로 균형 잡힌 구도(composition)가 채택된다. 그러나 홍푸르메는 물리적 혹은 심리적 손상을 암시하기 위해서 여백의 인색함을 보이거나 꽉 찬 비대칭적인 구도를 자주 응용한다. 이런 작품들은 수묵과 붓이 넓고 거칠게 운용되어 화폭을 채우는 구도 속에서 막연한 클로즈업 효과를 가진 원경이 상처와 치유를 은유하는 쇼트를 구성한다.
시간과 움직임 구성의 미장센 쇼트(shot)란 카메라가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멈출 때까지의 연속된 영상을 의미하는데, 영화적 표현의 최소 시간단위이다. 쇼트에서 기록되는 정보는 어떤 형태 로 어떤 각도에 의해 얼마나 지속시간이 허락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일상의 치유>라는 하나의 원형적 모티브에서 발전한 홍푸르메의 작품과 전시는 하나의 쇼트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감정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탈을 자재하고, 다만 한발자국 정도의 움직임으로 쇼트를 이끌어 가고 있다. 결국 외과적인 수술이 아닌 정신적인 영적인 치유라는 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가급적 유사하게 변형된 쇼트의 반복을 통해 쇼트의 시간을 길게 하여 심리적 치유의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흔히 한두 번의 시도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자칫 진부한 쇼트를 미세한 차이로 차별화시키고 연속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작가의 끈기 있는 움직임이 바로 작가의 생각이며, 작품에 대한 감독된 입장에서의 선택이며, 바로 그의 연작이 갖는 효과적인 미장센이라고 할 수 있다.
홍푸르메의 작품세계가 추구하는 목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다만 그가 추구하는 원형이 기예적으로 완성되면 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미학적으로나 철학적 관점의 정립에 대한 설명이 요구될 것이다. 또 에덴적 원형(原型)에 대한 접근은 작가의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되지만, 동시에 우리의 정신 내부에 존재하는 조상이 경험한 흔적적인 원형(元型)일 수도 있다는 점은 추후 흥미로운 시너지적 접근을 가능하게 할 듯하다. 그것은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에 대한 해석과 기록에 대한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과 열정이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나타나고 그래서 많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전시 기간
-1부/2005년10월26일(수)-11월9(수)
-2부/2005년11월11일(금)-11월20(주일)
■ 작가
홍푸르메
Purume Hong
■ 전시 장소
1부/빛갤러리
2부/몽마르트르갤러리
■ 문의처
Tel)051)990-2120
-1부/02)720-2250
-2부/051)746-4202
■ 전시구성
1부) “빛이열려 " "Opening His Light "/ 빛갤러리 이전기념 기획초대전
2부) “섭섭한치유” "Healing through Sacred Belief" /몽마르트르갤러리 초대전
■ 후원: 駐韓國臺北代表部
■ 홈페이지
www.hongpurume.wo.to www.hongpurume.com이메일:hp0747@kos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