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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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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단색조 회화(monochrome painting)로 한국미술계를 풍미했던 이동엽이 오는 11월 2일부터 14일까지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자신의 열 번째 개인전을 선보인다. 한국 단색화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진 이동엽은 지난 30여 년간 줄곧 극도로 절제된 화면묘사를 통해 동양적 감수성과 우주의 조화로움을 표현하여 지나온 세월 만큼 무수하고 다양한 사색의 세계를 그려냈다. 이번 전시는 동양적 공간 개념과 한국적 백색 미감을 추구해온 이동엽의 대표작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제공한다. 


흰색 바탕 위에 어렴풋한 윤곽과 색채만으로 표현된 이동엽의 그림은 감상자로 하여금 갖가지 다른 종류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백색의 공간 안에 무엇을 담으려 한 것일까? 붓질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직접적인 사물 묘사를 거부하는 것일까? 미완성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지워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추상화 앞에서 더 이상 닮은 꼴의 사물을 떠올리려 애쓰지 않을 만큼 우리는 추상회화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동엽의 추상화 앞에서 무한한 심상을 읽어내는 자유를 누리는 만큼의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1970년대 20대의 젊은 화가 이동엽은 당시 암울했던 사회와 혼란스러웠던 현실 속에서 모두에게 주어진 버거웠던 삶의 무게, 모순된 인간사회를 비판하였고 이를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인간의 존재감을 새삼스레 되새겼고 인간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마침내 존재의 근원지로서의 자연을 떠올렸다. 폭력과 전쟁과 이념으로 얼룩진 사회로부터 벗어나 평화로움을 추구하던 이동엽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듯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백색을 찾아냈다. 그때부터 작가에게 백색은 생명의 근원지이자 무의지대요, 명상의 바다이며 의식의 여백으로서 묘사되었다. 백색의 화면을 통해 자유를 확보한 그는 형태와 색감의 구속과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선과 울림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백색 공간 속에 스며들어 사라지는 듯 하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반복, 시각적 환영을 전하며 모호한 경계를 보이는 붓질의 흔적들은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하는 존재의 순환 원리를 표상한 것이다. 긴장감 속에서 거듭된 붓질은 공명의 공간을 형성하는 동시에 작가와 세계와의 일체화, 유기적 관계를 이루며, 이를 통해 탄생한 명상적이고 암시적인 그림은 사유의 무한한 여지를 생성한다. 결국 비움의 행위는 생명을 채워넣기 위한 준비과정, 즉 생명의 근원지를 제공하며, 나아가 생명의 기가 흐를 수 있도록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크릴과 유화물감, 캔버스를 사용하는 ‘서양화가’ 이동엽은 화면에 칠해진 안료 층이 채 마르기 전에 반복하여 덧칠함으로써 먹이 화선지에 스며들어 화면 안에서 대등한 하나의 층위를 형성하는 동양화의 화법을 따른다. 이로써 사고의 장으로서, 즉 명상의 공간으로서의 화면을 구성한 동양의 전통 산수 또는 문인화에서 볼 수 있는 여백 묘사를 통해 공간을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공간을 넘어서는 무차원의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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