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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기의
'말하는 나무(The Talking Tree) '
갤러리 아트사이드 큐레이터 | 이진명
마치 자이언트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540㎝의 거대한 사람의
형상은 나무 형상의 조각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사람의 형상은 비대하게 커져버린 우리 문명에 대한 메타포이다. 반면 나무 형상은 우리가 모르는
순간에도 우리와 늘 함께 했던 자연의 자애와 경이의 상징이다. 이 두 작품이 전해주는 영상 이미지의 메시지와 함께 전시는
시작한다.
폴 오스터(Paul Auster)는 그의 소설 ‘달의 궁전(Moon Palace)’ 에서 한
예술가가 어떻게 세계에 자기를 맞추어가며 또 자기본성을 알아가는지에 대한 투쟁을 잘 보여준다. 그가 사막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면서 홀연히 예술적
영감을 얻어내는 결정적 장면을 폴 오스터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아름다운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하는
방식이자 세계를 관통하는 방법이며 이 세계에서 자기가 처한 곳을 발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캔버스가 지닐 수 있는 미적 속성이 무엇이라도
그것은 이러한 투쟁 속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노력의 우연한 부산물인 것이다.”
김무기 역시, 폴 오스터가 그려낸 예술가처럼, 자신만의 예술적 영감(artistic
epiphany)을 찾기 위해 갖은 노고를 마지 않은 조각가이다. 그는 1990년에 우연히 들린 운주사의 거목을 보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이 계기야말로 그가 세계를 이해하며 관통한 시작이다. 바로 발견의 의미이다. 그는 세계가 합리주의의 선로를 따라 진행해 왔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선로는 무한의 신기원과도 같았지만, 거꾸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부메랑으로 다가오고 만다. 맹목의 이성은 잔혹사를
연출한 것이 사실이다. 물질만능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또 인간특례주의(human exceptionalism)는 너무도 이기적인 것이어서 이
땅이 사람(man)만이 유용하는 곳으로 오염시켰다.
김무기는 마을 한 켠에 우둑 서있는 커다란 나무는 단순한 미적 대상이나 향유적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혜와 신실의 안정감을 던져주는 숭고 자체였음을 아련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 숭고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부단히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내의 모든 존재는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가 인과의 끈에 의해 유기적으로 이어져있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김무기는 사람이 자기가
처한 곳을 피폐시키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외부세계의 모든 것이 어떻게든지 자기자신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우치며 살아가는 바로 그런 삶을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