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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통과 비전통의 경계에 선 산수
조은정│한남대 대학원 겸임교수
해도 뜨기 전에 나선 어둠 속의 고속도로를 지나 지방국도의 끝에 선 한상호의 작업실은 하나의 점, 그것이었다. 도로가 갈리는 시골길, 사방이 트여 있는 건물은 이 작가의 작업실 말고는 휴게소로밖에 분명 용처가 없을 성 싶다. 사방에 달린 창으로 논이며 도로가 보였지만 통행인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휴게소로 사용하기는 애초에 그른 듯하니 건물이 임자를 잘 만났다고 할 밖에. 그 휑댕그레한 곳에서, 실내임에도 지금이 한겨울임을 잊지 않게 하는 입김이 보이는 그곳에서 작가는 먹고 자고 그리고 있었다.
한상호는 꾸준히 한국화의 ‘파격’을 시도해온 작가이다. 안락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시골에 칩거한 것이나 평생이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낭인과 같은 전업작가의 대열에 들어선 것도 일반적인 생활에서의 파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조형적 실험은 그의 생활보다 더 진취적이며 파격의 미를 추구한 것이다. 불경을 쓰거나 금니로 그림을 그리는 바탕재인 감지를 탈색시키고 다시 여기에 색채를 가한 초기 작업의 외형은 날염과 같은 공예적 미를 지닌 것이었다. 조형적 결과의 조용함과 달리 ‘탈색’은 전통을 해체하는 새로운 시도로서 종이에 먹이나 색채를 입히는 과정을 역으로 시도한 것이었다. 전통에 반하는 정신은 현대성이 구가될 수 있는 바탕인 아방가르드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동시에 또한 오래된 한국화의 정신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전통에 대한 인식과 그에 반하는 정신, 그것을 선택하는 작가의 감성이 드러난 화면이 한상호 작업의 특색이다.
점에서 발원하다전통 한국화의 표현법은 수묵과 담채, 파묵과 발묵 그리고 준(?)이 주조를 이룬다. 먹의 짙고 옅음이나 필선의 힘과 꺾음 그리고 세련된 필치 등을 통해 표현의 우위를 가늠한다. 한국화의 표현에서 먹의 농담과 적절한 선의 사용은 법고창신의 정신이며 전통의 필묵법에서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화포에 넘치는 기운생동은 좋은 그림에서 유효한 개념이다.
전통 한국화의 표현법에 기대온 시각에서 보자면 한상호의 화면은 생경하다. 전통 한국화에서 맛보거나 최근 한국화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화면에 맞닥뜨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 설면서도 눈길을 잡는 것은 이 생경함이 극히 부분적인 요소에 불과하며, 흐드러진 감정의 난만함이 담담하며 명징한 색채 뒤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호의 화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점이다. 물론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회화, 특히 한국화에서 점이 지닌 요소가 무어 그리 생경하랴만은 한상호의 점은 전통의 점과는 사뭇 다르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을 나타내는 짧고 날카로운 점인 단선점준도, 무성한 나뭇잎을 나타낼 때 쓰는 타원형의 대혼점이나 소혼점도, 붓끝이 옆으로 누운 미점이나 세로로 누운 우점준도 아닌 전통의 ‘준’에 포용된 점과는 멀리 있는 그야말로 점 그 자체이다. 점이란 결국 가장 짧은 획이니 점 하나하나는 작가가 나타내는 하나의 획들의 모임이다. 결국 하나의 콕 찍은 점도 화면에서는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길고길게 꺾어나간 선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의 개인전 이후 한상호는 이 점을 더욱 확대, 강화시켰다. 500호가 넘는 산수에서 정작 눈을 두게 되는 것은 그 소(疏)하고 밀(密)한 포치의 한 국면에 불과한 점들의 집합이다. 큰 붓을 휘둘러 산의 뼈를 형성하고 그 뼈가 되는 곳의 깊은 곳이나 전면에 점들이 있다. 동글동글하여 모든 선과 면의 기본 단위가 되는 이 점들은 일정간격을 지니고 있어 내게는 컴퓨터 화상의 기초인 도트로 보인다. 현실계에서 다양한 점들이 일획인 것처럼 가상의 세계에서는 그 동글동글한 망점들이 화면의 기초로 인식된다. 컴퓨터와 결코 친하지 않은 작가가 선택한 전통에 반하기 위한 방식은 현대적인 표현기법의 표상을 취한 셈이 되었다. 결국 “그림이란 것은 인간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의 큰 법이요, 산천의 모습과 정화로운 피어남이요,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지를 창생하는 기의 조화요, 음양의 기상의 큰 흐름이다”라는 석도의 화론이 오늘날도 유용함을 확인하게 된다. 전통을 따르든 반전통을 획책하든이든 결국 진정한 그림은 화면에 인간세상의 돌아가는 흐름을 담고 있다. 한상호가 택한 반전통의 점은 비전통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인간사를 담는 그릇으로서 그림을 성립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노력이 점에 귀결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하고 가장 소박한 상태로 자연을 관하려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이란 공동의 공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계를 지닌 독자적인 공간의 떠도는 형체이다. 소밀하고 객체로서 완벽한 존재인 그 점들이 주변과 고립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가로로 놓여지기를 통해 작가의 심리적, 육체적 고립감이 전달된다. 점은 여전히 점일 수밖에 없는 그 완벽한 둥근 형태는 고립을 초래하여 전통의 준에서 얻게되는 화합과는 결별되는 현대적인 점만의 특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난만함에 깃든 힘의 원천먹으로 이루어진 점이 가장 눈에 띄는 한상호의 화면에서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흐드러진 색채의 난만함이다. 산수의 주요골격은 골산과 토산, 물과 나무이다. 한상호의 산수도 이러한 포치와 형국을 따르고 있다. 산이 있고 구름이 있으며 땅이 있고 물이 있으며, 나무와 풀이 있다. 하지만 이들 산수는 외형적인 것보다는 그곳에 집합된 기(氣)의 결정체를 표현한 듯이 여겨진다. 전체적으로는 구체적인 형상이 와해되어 보이는데 부분을 주목하면 각기 요소에 맞는 곳에 나무와 풀과 물이 있기 때문이다.
외형으로 인지되는 자연보다는 그 내재한 힘의 원천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상호의 산수화는 명당도나 옛지도와 같은 원칙을 보인다. 하늘 아래는 땅이 있고 산그늘에는 계곡이 있다. 산 주름에는 소나무가 있고 바위들이 있다. 야생화가 흐드러진 산주름 아래는 화사한 분홍과 보라, 남빛과 노랑빛이 어우러져 있다. 그 곱고 고운 색은 인간 감정이 끌리는 예쁜 것을 추구하는 소박한 심성의 발원과 세련됨에 대한 원초적 욕구가 어우러진 결과이다. 도시를 떠난 작가가 찾은 자연이 오히려 세련됨의 추구로 나타난 것은 앞서 주목한 그의 점에 의해 형상화된 고립감과 연계되어 있다. 점으로 둘러싸인 세계 안에 포근히 자리한 이름모를 야생화와 나무들의 그 안온한 평화야말로 혼자 누릴 수 있는 자기 세계, 자연의 한 부분인 것이다.
한상호의 화면은 이러한 색채의 난만함과 크게 차지하는 여백, 담담한 먹빛으로 인해 명징하다. 그 명징하고 깔끔함에 대해 작가는 천성이라 하였다. 하지만 화면의 깔끔함과 달리 정리되지 않은 작업실의 도구들은 작가가 추구하는 현실계와 이상계의 괴리를 확인하게 하였다. 정리되지 않은 현실계와 지극히 깔끔하여 오히려 벽이 된 이상계인 그림 속 세계는 꿈을 찾는 현대인이 위치한 그곳과 그림을 위하여 작가가 선택한 위치가 결코 크게 다르지 않음을 또한 보여준다.
한상호의 산수에는 가끔 구름이 등장한다. 산꼭대기를 지나치듯 무심히 떠 있기도 하고 산중턱에 맞닥뜨려지기도 한다. 이 구름은 촘촘한 점과 화사한 색채로 이루어져 있다. 고분벽화의 구름을 연상시키지만 실상 고구려 고분벽화의 구름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백제고분의 구름은 흰 연꽃처럼 휘몰아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벽화에서 차용한 이미지가 아닌 단청과 같은 색층으로 나타낸 작가 특유의 도상인 것이다. 이 무거운 구름이 걸려 있는 산을 보노라면 분명 조형적 완성보다는 작가가 심상에 호소하는 감각적인 세계에 탐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게를 갖지 않는 구름이 정작 무거운 이유에 대해 고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구름만큼 변화무쌍하고 상대를 변화시키는 존재도 없을 성 싶다. 구름의 외적인 형상이 아니라 그에 포함된 기의 흐름 그 엄청난 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물을 에너지로 인식할 때 우리가 갖는 자연의 무게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결국 명징한 산수는 그 힘의 무게 배분에 의해 재해석된 자연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통의 점과 다른 도트의 점, 전통의 먹빛과 다른 난만함 등 한상호는 전통을 거부한 반전통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화면에서 포치와 국면이 존중되고, 조화를 거부하지 못하는 요소가 오히려 그의 화면이 비전통의 나락으로 이끄는 듯도 하다. 시간은 변화하고 인간사도 변화한다. 천지만물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감상자는 유독 한국화에서만은 그 변화가 더디기를 바라는 듯 하다. 한국화가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면서도 평가의 중심에는 기존 질서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는 것이다.
점을 찍은 산수는 분명 새로운 시도이기에 구태의연함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한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를 찾는 감상자의 눈에 익기까지 이 작가가 거쳐야 할 많은 난곡이 있다. 특히 반전통의 의지가 비전통으로 비쳐질 때 야기될 상황은 작가 스스로 알고 있을 터이다. 그 전통과 반전통, 반전통과 비전통의 경계에 선 점과 같은 상황, 이것이 또한 현대 한국화가 봉착한 위기와도 직결된다. 그 단순한 점들이 도트로 자리잡느냐 준으로 이해되느냐의 종잇장같은 차를 보며 그림이 인간 삶의 기록이며 사회현상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전 시 명 : 한상호 한국화전
전시일정 : 2006. 2. 15 - 2. 21
전시장소 : 인사아트센터 2층 Tel. 73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