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세종대 회화과 동문전시회
「시각의 다양성」展
여섯 번째 세종동문미술제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이들이 모인다.
100여명의 인원이 모여서 하는 일은 ‘전시(展示)’라고 불리는 것이다.
각자의 그림을 들고 와서 한 데 모여 전시를 한다. 그러고는 다시 거기에 ‘동문(同門)’이라는 타이틀을 건다.
이 타이틀이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하길래 이 땅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타이틀 하나 이상씩 가지는 삶을 당연히 여긴다.
그 중에서도 지금 얘기하려는 (同)門을 소유한 이들은 世宗이라는 門을 공통사항으로 두고 있다. 世宗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우리들(민족)에게 매우 낯익고 보편적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世宗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물론 世宗을 직접적으로 달고 있는 우리들조차 일부러 떠올리기 전에는 世宗의 업적을 의식하지는 않는데 꼭 이런 것처럼 同門들도 그 이름을 걸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전까진 同門들간의 연대감 형성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 이번의 전시도 그런 차원이리라.
世宗이라는 (同)門을 통해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56년도부터이다. 초창기에는
‘수도여자사범대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나 1979년도에 남녀공학으로 변신하여 世宗의 이름을 달게 되었다. 世宗의 門을 통해 ‘美術’이란 것을 배우고 나간 이들은 1,7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초중등학교 교사(초창기에는 사범대학)로 거듭나 예술교육으로서 건강한 시민들을 양성해왔다. 졸업생들은 전국 각지에 고루 퍼져 그들의 소명을 다하는 데 열심이었고, 그 외에도 창작가의 역할로서, 사회인으로서, 미술계와 사회에 이바지해오고 있다. 물론 ‘이바지’만 한 게 아니라 이 땅의 아픔을 같이 해오기도 했다.
설립 초기에 졸업하신 동문님들은 일정시대에 성장기를 보내며 자랐으며 조직의 허리를 맡고 있는 사십대 중후반의 세대들은 어두운 정치현실과 맞서야 했다. 정치현실은 왜곡된 사학(私學)의 면모와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어 한 때 世宗의 모습들이 공중파에 자주 나가곤 했다. 게다가 근래의 졸업생들에겐 사회의 첫 인상이 안긴 어려운 경제현실이 그들의 목을 조이기도 한다. 그래도 예술가라면 당연히 맞닥뜨려야 할 가벼운 장애물이라 여기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물론 ‘묵묵함’만이 해답은 아닐 것이며 선배가 후배들에게 남길 유산으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同門이란 집합은 하나의 유기체가 아닐까! 유기체는 각 단위원소의 작용이 다른 단위에게도 서로 영향을 끼친다. 그 유기체의 매커니즘은 매우 복잡하지만 균일하게 움직인다. 때문에 정작 유기체 본인은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매커니즘의 존재와 가치를 쉬이 깨닫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同門이 유기체의 매커니즘을 닮는다면 매우 다행이다. 왜냐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2월에 世宗의 門을 통해 나온 이들 중 99명을 2월8일에 모았다. 불경기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평상시 제작한 작품들을 가지고 성의들을 모아보기로 한 것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성의가 극복할 수 없는 곤란함들도 얼마 목격되었는데 예술을 전공한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얼마나 큰 짐인가!!)
世宗은 과거 ‘수도여자사범대학’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시절부터 형상성이 매우 확실한 작업 형태를 유지해 왔었다. (서양회화의)고전주의적 사실주의로 불리는 회화양식을 오랜 기간 닦아왔고 이들의 범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동문님들의 작품이 꽤나 많다. 이 동문님들의 그림을 1부에 모아놓았다. 그렇다고 1부에서 개개인의 특별한 감성을 발견 할 수 없을 거라 단정짓지 말기 바란다. 많은 세월이 담긴 술만큼이나 자기 색을 열심히 만들어 온 분들이다.
1부의 세월이 길었던 世宗은 재현능력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현명치 못하다는 점을 짐작했다. 짐작은 고민으로, 혹은 고통으로 발전하였고 이어서 결과물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타 일부대학의 경우처럼 외국의 양식이나 사조가 곧바로 수입되는 부작용이 없었다는 점은 스스로 평가해볼 만하다. 2부의 구성은 크게 형상의 변형을 통해 시각을 전환해보려는 노력과 회화의 원천적인 요소들에 주목하고 이를 가지고 구성해보려는 의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1부와 2부를 꿰뚫고 있는 긴 선이 있는데 화면의 완성도를 대체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봇을 들고 그리는 행위’라는 사항이 1, 2부 간에 공유되고 있는데다 1부의 깊은 그림자가 아닌가싶다.
1부에서 2부로 나아가게 했던 의지와 시각은 3부로 나아갔다.
‘붓으로 그리는 행위’까지 벗어나고자 함은 현시대에서는 더 이상 이슈거리도 되지 못하지만 世宗에서는 야아깐 지체된 듯 싶다. 그러나 좀 지체됐을 뿐이지 결코 늦었다고 할 순 없다. 이미 왕성한 소화력으로 다양한 매체들을 다루는 동문들의 숫자가 충분하게 나오고 있으며 그들 간의 ‘소통’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매체는 소통을 돕기 위한 것이므로 3부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의 본 역할에 접근했다고 하면 좀 과언이 되려나? 어쨌든 더 이상 世宗에게 도구에 대한 고민은 없다. 우리의 고민대상은 ‘무엇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지 ‘무엇을 가지고 할 것인가?’ 는 아니다. 그리고 풀어갈 무엇의 대상도 同門들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고 있다. 5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쌓인 만큼 서로 참고할 거리도 많은데다 인생의 지혜도 얼마든지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배움/가르침보다 빌림/빌려줌이 마음에 든다) 그리곤 미래에 나올 후배들에게도 빌려줄 준비를 다시금 한다.
조형 1부이 견 황정자 김숙일 서양순 박순흔 오순식 박 순 유명애 오옥자 유영옥
박상미 서정완 우혜원 임현자 장송희 김용숙 조경자 홍승욱 장순현 김혜숙
이호임 김은희 김영지 곽정명 한숙희 김혜옥 배현미 임순팔 송명희 조 환
최수현 김성근 김승관 고영인 이희자 신영진 정태영 선호락 이종열 정영진
이관수 권병호 정도용 박제덕 권일순 이정희 정덕원 장 미 정연화 정태균
이정은 황종연 권경엽
조형 2부조영실 김부자 심경자 김창희 이명선 유재숙 최혜숙 박혜숙 권숙자 이문표
김나야 홍은숙 김순희 황인희 양태숙 김인섭 박두리 금동원 김혜순 박인희
김경화 김낙일 안호균 이희현 곽경화 김영종 채주희 최종미 한경원 이보경
오진순 최세경 박지민 정천우 고수정 장석존 오영숙 원세유
조형 3부 김민정 김창겸 정명국 장종오 정재호 김나래 임운규 장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