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전 3.11 - 4.30 서울시립미술관
우치다 시게루 디자인전 3.3 - 3.22 가나아트센터
어떤 문화에는 있지만 다른 문화에는 없는 것이 있다. 옛적 동양에는 침을 뱉는 타구라는 것이 있었지만 서양에는 없었다. 옛적 서양에는 정조대가 있었지만 동양에는 없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의 존재 여부는 기본적으로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 여러 문화에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의미나 위상이 전혀 다른 경우도 더러 있다. 예컨대 붓(筆)은 동서양에 공히 존재했지만 그 용도와 의미는 같지 않았다. 서양에서 붓은 그저 화구(畵具)의 하나일 뿐이지만 동양에서 그것은 화구이기 이전에 먼저 필기구였으며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로 매우 귀하게 여겨졌다.
이처럼 특정한 문화 속에서 특정한 사물은 특정한 의미를 띤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문명이 점차 동일화되어가면서 과거 한 문화 속에서 특정한 의미를 지녔던 사물이 다른 문화로 전이되고 보편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문명에의 요구와 그에 대한 반응이다. 토인비식으로 거창하게 말하면 문명의 도전과 응전이다.
의자가 바로 그렇다. 과거 동양에는 의자가 거의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서양 문명에서와 같은 중요성을 갖지 못했다. 동양에서는 드물게 입식문화를 가졌던 중국만 하더라도 의자의 상징성과 다양성은 서양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입식문화를 발전시킨 서양의 경우에 의자는 그 문화의 상징이며 핵심에 자리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서구 현대 디자인의 역사는 곧 의자 디자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서양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은 모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의자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마르셀 브로이어, 헤리트 리트벨트, 알바 알토, 찰즈 임즈, 아르네 야콥센, 로버트 벤추리는 모두 디자인사에 남을 의자를 디자인한 사람들이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이 너나없이 성모자상을 그렸듯이 현대의 유명 디자이너들은 모두 의자를 디자인했다. 그런 점에서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서양 디자인의 출발점이자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봄에 두 개의 의자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하나는 비트라 디자인박물관의 소장품 100점을 선보이는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이며, 다른 하나는 <우치다 시게루 디자인>전이다. 하나는 일종의 서구 현대 디자인 컬렉션전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전이다. 이 두 전시가 동시에 열리게 된 것은 우연이겠지만 그러나 이 전시들이 합성되어 보여주는 그림은 의외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앞서 언급한대로 어떤 문명에 대한 제시와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의자>전이 의자라는 형식을 통해 서구 현대 문명의 아카이브를 배열한 것이라면, 우치다의 전시는 일본 또한 그러한 문명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비교적 익숙한 서구 디자인보다도 오히려 우치다의 작업이다. 베개나 쌀자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하다 프리 폼 의자는 일본 디자이너가 서구 문화를 독자적으로 해석해내었을 뿐 아니라, 거기에 자신들의 버내큘러한 취향을 결합시키는 데도 성공했음을 증명하는 아이콘인 셈이다.
그렇다면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 두 전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말이다. 적어도 의자라는 아이템에서 고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라는 디자인 선진국의 반열에 들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문명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 세계 문명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낙오할 것인가. 그들은 슬그머니 의자를 내밀며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오만한 과시, 세련된 제안, 은근한 협박, 교양 넘치는 문명의 충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이제 우리의 과제이다.
서울아트가이드 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