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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번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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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운명을 너머
김미진(세오갤러리 디렉터, 조형예술학 박사)

송번수는 섬유, 판화에서 대표되는 작가로 이 장르가 생활에 접목되는 것임에도 순수한 형식과 논리를 고수하는 실험정신으로 발전시켜왔다. 그의 나이 예순넷, "귀로 듣는 것이 그대로 도리에 순응하다(耳順)"라는 이순이 실감나지 않는 실험적이며 열정적인 예술 행보는 그를 항상 젊은 작가로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그가 살아왔던 시대가 순탄치 않았던 것처럼 삶 또한 드라마틱하였고 그의 모든 경험이 작품 속에 녹녹히 스며들어가 송번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구축되어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순으로서의 경지를 보여준다.
조정권 시인이 쓴 글에서 보면 송번수는 홍대 재학시절 4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고 다닌 고무장화로 청년시절을 정신무장 해왔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아내와 가족을 뒤로 하고 30대 후반 늙은 학생으로 파리 화단에 도전해 포도밭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작업에 대한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가 파리로 간 1년 동안, 그의 아내는 근근이 장사를 하며 어렵게 가족들을 뒷바라지하였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장기간 도불 계획을 세웠던 송번수는 그 아내를 보며 자신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뉴욕이나 파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평생 다루고 있는 작업의 테마인 장미 가시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그는 꽃이 아닌 가시에 그의 삶을 투영해 보이고자 했다. 작품에 대한 완벽함을 추구한 투철한 작가정신은 그의 열정과 내재된 아픔을 머금고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테크닉으로 표현된다. 필연적으로 그는 대형의 판화와 타피스트리를 택한 것이다.
섬유작업을 위해 계획된 스케치는 날실과 씨실을 올올이 짜 올리는 장시간의 작업으로 제작되었고, 판화 역시 목판을 선택해 가시의 섬세한 부분까지 표현해내며 줄기와 잔가시를 깊이 파내고, 열세번 배접해 만든 두터운 종이로 강하고 세밀한 엠보싱을 돌출 시켜 냈다.





다시 돌아와 그의 삶 여정에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면, 개발 이전의 동림리 산골짜기 저수지 옆 땅에 직접 진두지휘하며 건립한 마가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개인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이며 일년에 두번 정도 공공을 위해 기획전시를 하는 전시공간이고, 작가의 작업실인 동시에 생활 공간이다. 개인으로 설립하기엔 그 규모와 크기가 만만치 않아 투입된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극적인 상황 모두를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안정적이며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과 훗날 남게 될 소장 미술관을 갖게 된 것이지만, 마가미술관은 송번수만의 불도저 같은 저력과 힘이 투입된 과정을 온전히 느끼게 되는 작가적 정체성의 모태의 장소이다.
송번수는 뇌종양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며 끝내 죽음을 맞은 사랑하는 아들과 미술관 일을 내일처럼 도와주던 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의 과정을 겪으며 결국 죽음으로 치닫는 것을 보게 되는 뼈를 깎는 가족사의 아픔을 겪게 된다.
존재론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정신과 그가 겪은 비극적인 삶의 경험은 작업에 있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숨 막히는 고행과 고통을 안고 시간 잎에 절제해야만 되는 숙명으로 표현된다.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그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송번수의 작품 이미지는 대부분 수직과 수평, 크로스 된 대각선, 원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화면의 중앙에 우주의 존재물처럼 놓여 있다.「그날 이후」1997년作는 가시가 대각선 십자가의 형태처럼 비스듬히 놓여있으며 밑에서 조명을 비춘 것처럼 그 위에 그림자가 짙고 길게 드려져 있는 사실적 표현의 대형 타피스트리 작품이다. 화면의 3분의 1 아래 부분은 밝은 순백의 표면으로 처리되었고 바로 그 지점에 등장한 가시 십자가는 원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듯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십자가는 희생이란 특징을 강조하듯 그림자에서 떨어져 뚜렷하게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작업에서는 십자가의 희생이라는 상징으로 앞쪽 순백의 화면을 통해 선의 세계로 들어올 수도 있고, 어둠 즉 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송번수는 우리가 항상 갈등해야 되는 두 가지 세계를 한 화면에서 보여준다.
「절망과 가능성」2001년作 역시 푸른 심해에서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물방울에 비치는 빛처럼 가시와 그 부분을 비추며 어둠과 빛을 대비해 내고 있다. 예술 작품을 창조해 내기 위해 삶을 희생양으로 쓰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만 인간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수해내야 하는 작가의 운명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1(하나)라는 단위의 수인 날실과 씨실이 짜낸 무수한 수의 집합인 타피스트리 작품은 존재와 운명의 단일성이지만 무수한 사연과 희생양을 가지게 된 존재의 씨실과 날실이기도 하다.
현재의 순간은 사죄 되며 또 다른 죄 사함을 받지만 육체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한 또 다른 죄가 첨가되며 끝없는 죄 사함의 순간 속에 놓이게 된다. 이 순간들은 공간을 통과하면서 지속적인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온전히 순백의「가시의 관」2002作과 가시 작업들로 영생 혹은 순결한 예수의 상태까지 도달한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라 여김을 받은 것을 믿지 못하거나 자녀로 약속한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인간적 판단에 의해 죄를 짓게 되는 과정을 죽을 때까지 경계하며 속죄해 나가야 된다.
이것은「십계명」2002作과 연결되며 끝없는 구도의 길로 가는 작가의 길을 제시한다. 흰색이나 청색의 모노톤으로 컬러링된 목판화 작품들은 죄를 대신해 돌아가신 예수의 사랑을 새기며 전체가 같은 색채로 동화된 결과다. 예전 작품에 비해 안정되며 편안해진 느낌이다. 폭풍을 겪고 난 후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처럼 그의 인생과 작업은 순수하게 관조 되며 육체와 정신의 불행스러운 분리가 극복된 물리적 작업의 본질로 돌아온 것이다.
2004년도「가시」작업들과 2006년도「미완의 면류관」외 작은 소품들은 오브제들이 직접 화면에 올라가 일상에서 순간을 속죄하며 털어버리게 된 우리의 경험의 모든 요소를 편안하게 해석하게 되는 형이상학적 세계의 진입이다. 이것은 마치 긴 터널이란 암흑을 뚫고 나왔을 때 빛으로만 보이는 세계가 점차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보이며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강한 진폭의 삶과 예술을 경험해온 이순의 송번수 작업은 마치 강렬한 욕망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잃게 만들며, 희망과 꿈은 미래 자체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매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진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 전시장소 : 세오갤러리 (꿈을 꾸는 세오빌딩 2층)
❚ 전시기간 : 2006년 5월 4일(목) ~ 6월 22일(목)
❚ 초대일시 : 2006년 5월 4일(목) 오후 5시
❚ 취재문의 : 큐레이터 김선아 ☎ 522‐5618(내선번호 204)
❚ 기사 자료 : 고해상도 작품 이미지는 세오갤러리 웹하드에서 다운로드하여 활용
www.webhard.co.kr / ID:seogallery PW:1111 / 5월전시-세오3주년기념 송번수전 폴더
❚ 관람시간 안내 : 월요일~토요일 _ am 10~pm 7
목요일 _ am 10~pm 9 (일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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