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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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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아나키스트” 데비 한 

깊은 우물 안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은 과연 둥근 하늘뿐일까? 인간이 갈망하는 이상향은 집착이 만들어낸 신기루는 아닐까? 잡히지 않는 이상세계를 상상하며 인간은 꿈을 꾼다. 그러나 몇몇은 이 꿈에서 깨어나려 한다.  그 가운데 데비한이 서있다. 어떤 편견이나 사전 지식 따위는 한 꺼풀 걷어버리고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현상 자체에 주목하며 그것을 부정하고 재해석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당연시되었던 가치관이 데비한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이상화된 이상함에서 보여졌던 지우개 드로잉, 남고교의 아그리파 단체사진, 미의 조건의 일그러진 비너스 청자로 유명한 작가 데비한이 한국에서의 3번째 개인전을 통해 새로운 美의 지평을 연다.  


미(美)에 대한 낯선 제안

재미교포 1.5세대라는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살아온 이력을 넘어 작가 데비한은 일상에서의 낯설음을 시작으로 문화, 사회전반까지 뿌리깊은 편견을 대중적이되 가볍지 않고, 진지하되 무겁지 않은 조형언어로 풀어낸다. 


- ‘일상의 비너스’ 와 ‘적자생존’

‘일상의 비너스’. 벌거벗은 일상 속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몸에 딱딱한 대리석 비너스의 머리가 결합되었다. 빈틈 없이 결합된 정교함으로 피부와 대리석 사이의 경계선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몸 전체의 땀구멍과 털은 이미 제거되어 대리석 같은 인공적인 차가움으로 변해버렸다. 서구미의 상징의 비너스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한국 여성의 몸은 왠지 모를 어색함과 억지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적자생존’. 코만 조금 더 예쁘다면…턱 선만 조금 더 가늘다면…눈만 조금 더 예쁘다면…당신은 “미인”이 될 수 있을까? 미에 대한 갈망은 적자생존처럼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언제부턴가 서구 지향적인 美의 잣대로 여성의 외모를 판단하는 웃지 못할 현실을 만들었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성형외과와 거리의 성형미인은 “얼굴은 서양인처럼 작게 몸은 바비인형처럼 가늘게”를 신앙처럼 떠받든다. 현실세계와 잘못된 이상세계 사이에 떠다니는 현대인의 모순된 이미지가 파편화된 성형자국 짙은 얼굴처럼 흉측하다. 


-‘식(食) & 색(色)

 식욕과 성욕은 비례한다고 했던가? 미적 쾌감은 마치 음식과 같아서 한 가지 맛으로는 사람들을 매료 시키지 못한다. 서로 다른 맛과 향의 조화가 필요하다. 데비한의 감각적 연출로 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등의 식 재료가 미적 쾌감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양념이 된다. 화장품 광고를 재현하여 촬영한 각자 개성 있고 트랜디한 메이크업 그리고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매력적인 립스틱, 미끈한 다리를 한층 배가시켜줄 스타킹 등을 파, 고춧가루, 참기름인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소재가 대신한다. 작품을 보는 사이에 군침이 도는 당신은 식(食)에 의해 반응하는가? 아님 색(色)에 의해 반응하는가? 

 

-‘미인시리즈’

15초안에 승부가 결정되는 TV 광고, 잡지 전면을 도배하고 있는 패션화보, 디지털 카메라판매 홈쇼핑 등 젊은 8 등신 모델들의 각축전과 같은 소비대중문화의 한 가운데서있는 데비한의 ‘미인 시리즈’는 당당히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을 ‘미인’으로 정의한다. 팔순이 넘은 시골 노인정 할머니들을 모델로 캐스팅하여 美의 또 다른 측면, 즉 보이지 않는 부분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는 표피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경박함을 지적한다. 주름진 이마와 볼 살이 늘어진 얼굴이지만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의 두 눈은 아름다움이란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곱게 화장한 할머니와 형광색의 배경이 팝적인 느낌마저 든다.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간직한 할머니의 모습이 진정 미인의 모습이며. 다음 세대를 풍미할 아이콘은 아닐까?

 

데비한, 우리에게 되묻는다

이렇게 전시 공간별로 컨셉을 달리하여 총 28점의 작품으로 이 중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백자작품도 볼 수 있다. 팝 아티스트 제스퍼 존스가 청동으로 된 맥주깡통 두 개로 이것이 진짜 깡통인지, 미술품인지 물었다면 “美의 아나키스트” 데비한은 보다 근원적으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美란 인간의 의식의 지평을 넘어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정의되고 왜곡되고 변질되고 있음을 풍자한다. 그러나 미에 대한 데비한의 낯선 제안은 대안을 낳지 않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잠깐이나마 사고의 전환에 대한 계기를 마련해주고 위트를 던질 뿐이다. 또 다른 대안 역시 획일화된 결과물을 낳을 것이라는 것을 데비한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ssay by 박정원, Assistant Curator, Gallery SUN Contemporary

Edited by 이대형, Director, Gallery SUN Contempo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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